공식부터 알아야 창의성을 실현할 수 있다

대화도 마찬가지

by 이다한

1.

창의성은 무(無)에서 갑자기 솟아나는 게 아니다. 오히려 기본적인 ‘공식’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야 그 위에서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다. 그림을 그릴 때도 해부학을 알아야 인체를 자유롭게 왜곡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나 대화도 마찬가지다. 공식을 모른 채 제멋대로 하는 건 자유가 아니라 방종이고, 결국 상대를 불편하게 만든다.(빠른 변화로 웬만한 공식이 다 깨져서 시대가 혼란스럽잖아요, 그럼에도 지켜야하는 공식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기인듯) 반대로 공식에만 집착하면 대화가 기계적으로 느껴지고 재미가 없다. 중요한 건 이해한 뒤에 유연하게 활용하는 능력이다.

2.

대화에는 A와 B 사이의 흐름이라는 명확한 구조가 있다. 가장 기본적인 구조는 이렇다:

A – 발화

B – 호응(공감 및 이해), 그리고 새로운 이야기 또는 본인의 이야기

A – 다시 호응(공감 및 이해), 그리고 새로운 이야기 또는 본인의 이야기

이런 방식으로 대화는 감정과 정보를 주고받으며 점차 깊어지고 확장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구조를 무시하거나 생략한 채 말하기만 하거나 듣기만 한다. 공감 없이 화제를 꺼내면 단절이 생기고, 아무런 새로운 이야기 없이 고개만 끄덕이면 맥이 끊긴다. 더 나쁜 경우는, 대화를 통해 자기 기분을 맞춰달라거나 흐름을 통제하려 드는 태도다. 나이 들수록 그런 방식에 익숙해지는 사람도 많은데, 사실 그건 유연하지 못한 어린 태도에 가깝다.

3.

대화는 열려 있어야 한다. 특정한 자아에 갇힌 채 ‘나답게 말해야 한다’, ‘내가 하는 말이 곧 나다’라고 고집하면 대화는 점점 경직된다. 나는 그냥 어떤 대화 안에서 잘 반응하고 자연스럽게 말했을 뿐인데, 그 대화 하나만으로 나를 평가하고 단정 짓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과는 애초에 잘 맞을 수 없다. 대화는 자아와는 분리된 공간이고, 그 안에서 자유롭게 표현하고, 실수도 하고, 때론 새롭게 발견해가는 과정이다. 그걸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대화가 아닌 통제와 감정 소비를 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4.

결국 대화의 깊이는 그 사람이 어떤 경험을 했고, 무엇을 알고 있으며, 어디까지 느낄 수 있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말을 주고받는 행위 자체보다, 그 말 속에 담긴 자아와 맥락을 읽어내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겉은 멀쩡해 보여도 내면이 비어 있거나 감정의 깊이가 얕은 사람들과는 대화가 겉돌고, 오해가 생기기 쉽다. 그들은 그게 전부인 줄 알지만, 사실은 감정이 연결되었던 순간만 잠시 통했던 거다. 감정이 식으면 더는 이어지지 않고, 관계도 지속되지 않는다. 결국 ‘결이 맞는 사람’이 중요하고, 그 결에는 자아의 크기, 지능, 공감 능력, 그리고 개인적인 지향점까지 모두 포함된다. 나는 특히 대화의 방향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대화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궁극적으로 어떤 감정이나 의미에 닿고자 하는지. 그걸 서로 감지하고 맞출 수 있는 사람끼리야말로 진짜 통하는 관계다. 요즘은 그런 걸 직관적으로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아예 처음부터 의도를 밝히고 대화를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출제자의 의도를 먼저 제시하는 식이다. 그런 방식이 차라리 낫더라. 물론, 아무런 설명 없이도 말이 통하는 사람은 정말 드물지만 분명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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