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수가 좋다
모든 건 결국 ‘기대치’의 문제였다. 인간에 대한 이상과 환상이 있는 판에서 내가 갈려나갔던 거다. 웃긴 건 난 그런걸 의도한 적이 없다. 나 자신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는 건 실속을 챙기기 위한 첫 번째 단추다. 있는 그대로를 못 보는 사람들의 먹잇감이 된다. 이상한 이상과 환상을 내게 씌우고, 본인들의 니즈를 내게 실현시키려 하는데, 난 그냥 내가 하고싶어서 하는거임. 지들끼리 착각하고 지들끼리 화내고. 왜 나한테 기대하고 나한테 감놔라 배놔라야, 돈 줘 그럼. 니들이 뭔데? 니들이 해봐 그럼. 징징이들 애초에 맞춰주는 게 아니었는데 거기에 휘말린 게 문제였다.
나이가 들수록 유재석보다 박명수가 더 좋아진다. 유재석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고, 그의 영향력은 존경할 만하다. 하지만 박명수 말대로 그는 “그냥 방송쟁이”일 뿐이다. 물론 방송에 진심이기에 그 자리를 유지하는 것이고, 그 진심이 그의 삶에 힘이 되니까 가능한 일이다. 문제는, 내가 있는 판은 잘해준다고 내게 돌아오는 판이 아니라, 호구 잡히는 판이라는 것. 그리고 애초에 내가 한 만큼 돌아오는 판이 아님. 개인으로 돈 벌고 이미지 중요하면 나도 유재석처럼 할듯.
보통 사람들, 특히 직장인들에게는 박명수가 훨씬 현실적인 길잡이다. 그는 완벽한 성공보다는 버티는 삶, 적당한 현실 안에서 실속 챙기는 삶의 모범처럼 느껴진다. 이경규 같은 인물도 마찬가지다. 삶의 무게와 고단함을 유쾌하게 풀어내는 능력은 의외로 깊은 통찰에서 나온다.
흥미로운 건, 박명수를 좋아하는 여자 연예인들이 많다는 점이다. 가비, 개그우먼 이은지, 그리고 아이유까지. 가식과 이미지 메이킹이 난무하는 연예계에서 박명수 같은 사람은 단비 같은 존재일 수밖에 없다. 그의 투명함과 솔직함이 오히려 더 큰 신뢰로 다가오는 것이다.
결국 삶은 균형이다. 기대치와 현실, 이상과 실속 사이에서 적당한 거리 두기를 할 줄 아는 사람만이 오래 버틴다. 타인이 내게 갖는 기대치를 낮춰야 한다. 그래야 관계도 오래가고, 나도 버틸 수 있다. 어딜 감히 징징대. 지들은 나한테 해준 게 뭐가 있다고. 내가 지들 엄마인 줄 아나. 진짜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친구가 아니었음. 함부로 공감하는 게 아니었음. 공감이 된 걸 어떡해. 그래도 하지 말았어야 했음. 공감하는 순간 같은 부류로 인지하고 나에 대한 프레임이 씌워지고 나는 그대로 행동하지 않으면 썅년이 된다는 걸 몰랐음. 자기 의견도 제대로 말로 표현 못하고 그저 징징 그저 우웨엥! 하는 애들을 내가 왜 챙겼지. 내 진심을 함부로 까내리고, 내가 한 일들에 대해 알아보지도 못하는 애들한테 왜 증명하려고 했지.
다 엄마 때문이지 뭐. 혼자 살면서 좋았던 건, 엄마의 그림자를 전부 지울 수 있었다는 것. 과한 액션과 보살핌 모두 엄마의 그림자였음. 근데 내가 엄마의 그림자를 벗어나니까, 남들이 나한테 그러고 있는거야.. 뭔 카르마인지 팔자인지.. ㅈㄴ 간섭. ㅈㄴ 판단. 이제 그런거 차단하는 법까지 배웠음.
독립하고 알게 된 내 특징이 있다. 웃기지만 난 체질적으로 선비다. 술담배커피 다 못하는 몸뚱어리가 되었고, 밀가루 많은거 튀김 원래 안 좋아함. 그러니 디저트나 빵에 관심이 없고.. 그냥 물욕 식욕이 없음.. 대신 탐구욕이 어마어마한데 예술과 철학에 관심이 많았던 건 그래서였음. 지난 3년간 꾸준히 해왔던 취미를 말해보자면 누워서 음악듣기다. 간간히 운동이나 활동같은 걸 했지만 도저히 유지가 안 됨. 도파민 회로가 그쪽으로 발달이 안 되는듯. 호기심이 내 인생 최대욕구인데 그게 많이 충족되니 이젠 귀찮음이 내 인생 최대 욕구라 먹는 것도 귀찮아서 잘 안 먹는다. 여행도 귀찮아서 못 가겠다. 사람 만나는 것도 마찬가지. 내 기대에 충족되는 사람은 나 뿐이라.. 근데 이제 나한테도 기대 없음.. 걍 나에 대해 알았으니 됐다, 이런 느낌.. 이게 우울증인가? 그렇다기엔 너무 평온함. 이게 원래 나였던 것 같음.. 그렇담 이걸 살려서 직업을 가져야지.. 공부해야돼 공부.. 으 지겨워.. 하지만 제일 덜 귀찮고 제일 가성비있긴 함.. ㄱㅂㅈ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