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행 야간열차』서평 & 동명의 영화 리뷰
여행을 다녀왔다는 소식이 여기저기서 들렸다. 팬데믹 사태까지 불거질 줄 몰랐던 2020년, 오랜 숙원이었던 유럽여행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계획을 세웠지만 결국 소원은 이뤄지지 않았다. 3년은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지금 나는 돈도 시간도 없는 신세다. SNS에 올릴 사진만 잔뜩 건진 채 얻는 건 약간의 만족감뿐인 보여주기식 여행은 원치 않는다며 합리화해보지만 마음은 위로되지 않는다. 그때 서글픈 마음이 '나도 소원 있다'라며 책 한 권을 조심스레 꺼내들었다. 『리스본행 야간열차』, 낭만적인 이름이구나. 오래전 읽다 만 페이지를 더듬어 손가락으로 행하는 여정을 떠났다.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저자 파스칼 메르시어의 본명은 페터 비에리. 그는 2023년 6월 27일 타계했다. 향년 79세 지긋한 나이에 소풍을 떠난 그는 2004년 장편소설『리스본행 야간열차』로 대중의 인기를 얻었다. 이 소설이 20여 년이 지난 현재의 독자도 설득할 수 있는 이유는 팬데믹을 겪으며 여행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달은 우리에게 '떠남'의 진정한 가치를 깨우치게 해주기 때문이다.
관광과 여행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관광의 목적은 휴식, 경험, 친목 등으로 분명하고, 일상을 잠시 유예하는 형태기 때문에 과거와 미래를 잇는 유의미한 연결점이 되지 못한다. 잘린 조각 케이크를 먹듯 관광객은 모두 같은 맛을 보고, 미각이 주는 잠시간의 즐거움이 끝나면 '그 케이크 정말 맛있었지'하는 회상으로 그친다.
반면 여행은 타성에 젖어 흘러온 일상의 물줄기를 완전히 바꿔놓는다. 기존의 줄기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흙과 먼지로 퇴적되어 옅어지지만, 새로 파인 곳은 점점 거센 강줄기로 자리 잡는다. 길 끝에 무엇에 당도할지 알 수 없다. 확실한 것은 결코 예전 모습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여행은 그러한 두려움을 감수해서라도 낯선 장소에 자신을 떨구는 일이다.
'더는 이렇게 살 수 없다'고 외치자 여행이 응했다
그레고리우스의 별명은 '걸어 다니는 사전'이다. 교사를 향한 존경심과 책상물림이라는 조롱이 공존하는 별명답게 그의 일상은 고귀하고 따분하다. 어느 날 다리에서 뛰어내리려는 한 포르투갈 여인을 구한 그는 평온했던 삶에 균열이 가는 것을 느낀다. 놀랍게도 그는 지체 없이 수업을 중단한 뒤 리스본으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싣는다. 품 속에 '아마데우 드 프라두'라는 포르투갈 의사가 쓴 책을 안고, 그가 남긴 퍼즐을 짜 맞추는 여행을 떠난다.
소설은 프라두라는 흥미로운 인물을 그레고리우스의 시선으로 해부하는 과정을 그린다. 프라두는 비상한 머리와 뜨거운 열정을 지니고도 권위적인 부모와 의사라는 무거운 소명 아래 내적 갈등을 겪으며 괴로워하다 뇌동맥류로 죽는다. 그의 신성모독적이면서 동시에 친종교적인 독특한 사상은 그레고리우스를 감화한다. 사유의 메스로 프라두의 글과 언행을 세심하게 가르는 그레고리우스는 이윽고 칼끝에 선 자신을 발견한다. 내적 갈등은 모순에서 탄생하고 자기모순은 숙주를 필연 죽음으로 이끈다는 사실을 그는 깨닫는다. 아내와의 불화, 결혼생활의 실패, 인간 양피지로 살았던 과거를 차례로 갈라 떠내며 삶에 숨어든 종양을 집요하게 추적한다. 장기를 헤집은 대수술 끝에 그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눈을 뜬다.
누구나 살면서 그런 순간이 온다.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날카로운 직감이 일상을 푹푹 찌르는 탓에 도저히 이렇게는 살아갈 수 없겠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그때가 오면 우리는 관광이 아닌 여행을 떠나야 한다. 먼 곳이 아니어도 좋다. 많은 돈도 필요 없다. 딱 하루, 떠난다는 결심만 행동으로 옮기면 그 뒤의 여정은 현재의 내가 용감하게 헤치고 나갈 것이다. 현실의 위상에 수그리던 과거의 나는 죽고, 낯선 상황에서 매 순간 살아남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하는 '지금 이 시간'의 나만이 살아 숨 쉴 것이다.
원작의 깊이에 미치진 못했지만 여전히 유효했던 마지막 질문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111분의 러닝타임을 맞추기 위해 원작에 등장하는 사건을 상당 부분 압축한다. 얼개는 그대로 가져가되 프라두의 과거사는 성인 이후만 다루고, 그레고리우스의 내적 묘사와 같이 영화로 표현하기 어려운 부분은 배우의 표정 연기에 일임하는 방식이다. 때문에 그레고리우스가 견고했던 일상을 포기하고 여행을 통해 삶을 서서히 바꿔나가는 과정은 관객에 의해 유추될 뿐, 영화는 프라두라는 인물의 행적을 쫓으며 비밀을 캐나가는 추리물처럼 전개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과 의사 마리아나가 그레고리우스에게 던지는 마지막 질문은 원작의 주제의식을 관통하며 깊은 울림을 남긴다. "여기 머무르시면 안 돼요?" 마리아나가 그레고리우스를 붙잡고, 그의 멍한 표정으로 영화는 닫힌다. 주인공의 내적 변화를 상세히 기술하며 그의 스위스 귀국이 결코 원점으로 돌아가는 행위가 아님을 설득했던 원작과 달리, 영화는 매력적인 타인의 인생을 간접경험하며 백일몽을 꿨던 그레고리우스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것을 붙잡는다. 여행의 힘은 보기보다 강력해서 일단 발을 떼어놓기만 하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큰 변화를 불러온다. 주인공은 귀국행 열차 앞에 서고 나서야 비로소 변화한 자신을 알아챈다.
'떠나고 싶다'는 소망은 '현재를 중단하고 싶다'는 표명이다. 나는 스스로 물었다. 일상이 그렇게 만족스럽지 못하냐고, 멈추고 싶을 만큼 잘못 흘러가고 있다 생각하냐고. 3년간 나는 졸업을 했고, 밥벌이를 시작했고, 위태로웠던 정신에 단단한 지지대를 놓았다. 소원을 이루지 못해서 아쉽지만 아직 내 삶에 여행을 불러들일 때가 오지 않은 것뿐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러자 가뿐한 마음이 말했다, '때가 오면 떠날 수 있도록 소원은 한쪽에 고이 접어둘게'. 나는 언제든 떠날 자유를 쥐고 당분간 일상을 영위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