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가지를 꺾어치고 잔디풀마저 몰아낼 만큼
싸늘한 폭풍우가 매몰차게 퍼붓는 세상에서,
맨몸으로 비와 바람과 번개를 버티면서
걸어갈 순 없어요.
우리에게는 우산이랑 우비가 필요한 걸요.
설령 온몸을 감싸 옷차림과 겉모습을 감출지라도,
흠뻑 젖어 속옷마저 흙탕물에 더러워지는 것만은
확실하게 피할 수 있으니까요.
우산이랑 우비는 그래서, 거짓말과 같아요.
어쩔 땐 방패처럼 또 어쩔 땐 가면처럼
빗줄기와 칼바람을 조금이나마 덜 맞게 보호하지만 어느샌가 시야를 좁게 가린대도
별 수 없이 만들어버리죠.
아늑함과 답답함 사이에 있을 거짓말을 착용하며
그것들이 짓는 감촉을 지금도 뺨으로 느끼고 있어요.
거센 먹구름 밑에서도 묵묵히 지나가게끔 돕지만서도, 너무 오래 쓰다보면 편히 숨쉬는 것조차 버겁더군요.
멸시하고 배제하며 강압하는 폭풍우 아래,
나의 존재를 빼앗기지 않은 채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오히려 나의 진상을 거짓말들 뒤로
숨길 수 있어야만 하죠.
인생이란 계절은 장마철과 흡사한걸요.
삶의 일기예보는 오늘도 호우주의보를 말하네요.
창 너머 쏟아져내리는 비바람이
유독 더 거칠어 보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