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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혁H Aug 27. 2021

일간 이슬아

21.06.08.


 

나에게 있어 2018년을 한마디로 말해보자면, 기념비적인 한 해였다고 수식할 수 있을 듯 하다. 처음으로 성인의 범주에 들어선 나이. 처음으로 대학이란 공간에 발을 딛게 된 나이. 처음으로 고향을 떠나 서울살이를 경험한 나이. 지금에까지 속을 콕콕 찔러대는 갖은 후회의 조각들이 가장 많이 박혀 있는 시기. 그야말로 뭣 모르고 철이 없던 시절이었지만, 그 계절들 안에서만 느낄 수 있었던 충격적인 짜릿함과 퍽 설레던 풋풋함만큼은 앞으로 어디에서도 결코 찾아보기 힘들 귀중한 감정들이라 생각한다.

그래서일까, 마주치는 콘텐츠나 스토리 속에서 행여 '2018' 이라는 숫자를 포착할 때면 가슴 한 켠에 괜시리 뭉클해지고 시큰해지는 구석이 생기곤 한다. 이제는 흘러간 과거의 일부로써 점차 희미해져만 가는 2018의 감각들이 그로 인해서 다시 솟아나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때의 나를 다시 소환해 현재를 바라보게 되고 시공간을 초월해가는 적적한 흐름에 어느샌가 이입되어 버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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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슬아의 글을 얕게만 접하던 때에도, 왠지모르게 내적 친분이 쌓여간 이유 역시 그녀의 1일1글 연재가 2018년부터 본격 시작되었음을 먼저 인지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루 한 편 씩 에세이를 직접 메일로 보낸다는 독보적인 컨셉 자체도 뚜렷하게 다가왔지만 더욱 마음을 확실히 붙이게 한 데엔 2018이란 숫자가 어느정도 기여를 했다고 본다. 해가 지나면 지날수록 한층 깊어지고 넓어지는 그녀의 세계관과 파급력의 진행이, 마치 2018년 이후 내가 자라온 시간들과 동일선상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작품활동에 호감을 나름 길게 품어온 것에 반해, 그녀의 책을 제대로 소장하게 된 지는 사실 몇달이 채 되지 않았다. 일간 이슬아 프로젝트의 첫 수필 모음집을 장바구니에 담아두기만 한 채로 결제 버튼을 1년 가까이 클릭 하지를 못했었다. 큰맘먹고 구매한 후에도 책을 완독하는 과정에서 다른 단행본들의 열배 가까이 되는 시간이 소요됐다. 책의 페이지를 새로 여는데도 마치고 닫는데도 유독 오랜 시간이 걸린 셈이다.

570 페이지에 달하는 두꺼운 장수도 언뜻 부담을 주는 요인이었으나, 뭐랄까 이 책만큼은 오래오래 보고싶어한 신중한 마음의 무게가 꽤 컸던 것 같다. 일주일에 다섯 한 달에 스무개씩 써내고 일일이 공을 들여 이어낸 연재물이다 보니, 섣불리 서둘러 읽어버리는 건 이 글들을 완성짓기 위해 쓰였던 창작자의 정성과 노력을 소비자로써 너무 가볍게 치부해버리는 일이지 않았나 싶었다. 섬세하고 풍요로운 사유와 언어가 군데군데 뭉쳐있는 이 책을 단 며칠 몇주의 기간에 손쉽게 소모해버리고 싶지 않다는 괜한 욕심과 아쉬움이 내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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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의 봄날과 여름밤에 걸쳐 만들어진 프로젝트 그리고 이를 담아낸 모음집을 50일 동안 서서히 넘겨보면서, 나에겐 '낯선 익숙함'과 '묘한 예사로움'이라는 어떤 양가적인 감정의 줄기가 한가득 맴돌았다.

보통과 기존의 굴레를 넘어서는 참신한 표현방식과 마찬가지로, 작가는 무척 다른 생애를 지내왔으며 사뭇 다른 세계를 지니고 있었다. 몇몇 내용에선 지금의 나로선 짐작지도 못할 영역에서 펼쳐지는 현상이 자리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다채로운 요상함들 속에 함께 뿜어지는 친근한 기운 또한 강렬했다. 마치 이웃과 나누는 가벼운 토크나 친구와 떠드는 폭넓은 담화에서 느꼈던 자연스러움이, 낯선 이야기들 사이에 무늬처럼 색색이 박혀있었다. 비범함과 평범함을 같이 느낄 수 있는 지점은 비단 메시지의 내용 뿐은 아니었다. 관성적으로 매일 적어내리는 일이 얼마나 고단하고 힘겨운지 종종 체험한 입장에서, 작가가 우여곡절 끝에 일군 일대기는 그 완결 자체만으로도 존경스러웠다. 동시에 그 과정 안에서 끊임없이 마감에 절절매고 사람들과 사소한 실랑이를 벌이며 앞날을 걱정하는 솔직한 인간미가 지극히 생생해 어색하지 않고 정이 가기도 했다.

이러한 부분들 덕에, 동시대를 살아가는 작가로 이슬아와 우리가 공존하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멀리 떨어져서 행적을 그저 관망하는 게 아닌, 비슷한 방향을 바라보며 차이와 사이를 인식하고 공유하는 자리. 사실 오늘날의 문학이 지향하는 바가 온전히 그대로 담겨있는게 아닐까 싶다. 너무나 리얼하고 그렇기에 아름다운 문장은 스쳐지나갈 뻔한 삶의 자국에 온기와 웃음기를 더해갔고, 그 문장들을 마무리하는 2018의 날짜는 과거에 갇히지 않고 새로운 현재의 맥락으로 변해갔다. 3년의 시차 틈으로 애틋한 감상이 느긋하게 맺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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