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의 탈을 쓰다
고흐는 새로운 예술에 눈을 뜨고자 파리를 선택한다. 1886년 6월 벵 화랑에 전시된 일본의 [우키요에]에 영향을 받아 어두운 화풍에서 점점 밝은 그림을 그리게 된다. 만약 고향 네덜란드에 계속 살았더라면 이러한 그림이 나왔을까 싶은 마음이 든다. 고흐는 이때부터 일본 미술에 관심이 생겨 일본 잡지, 판화, 우키요에의 작품을 몇백 점씩 수집해 가지고 있었는데 관심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파리에서 화방을 운영하는 '탕기 영감'은 자신의 음식과 돈을 예술가들과 나누고 가난한 화가들에게 비싼 물감 값 대신 그림을 받고 열정적으로 그림을 알리고 지지하는 아버지 같은 인물이다. 또한 화가들에게 외상을 주기도 해 많은 화가가 그를 따르게 된다.
고흐가 그린 '탕기 영감의 초상화'에는 고흐가 좋아하는 일본 잡지를 배경으로 덮었으며 고흐가 가장 좋아했던 배경, 일본 후지산, 가부키 배우 등을 배경에 넣어 초상화를 완성한다. 어두운 색채에서 벗어나 밝고 다양한 색조로 그의 성공적인 변화와 진화를 보여주는 작품의 대명사가 된다. 대담한 색상과 독창적인 붓질이 도드라지고 드라마틱 하고 충동적인, 표현적인 춤추는 듯한 붓질의 특징을 가진다.
그림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화가들의 역사가 보인다._채코
고흐는 남들이 자신의 그림을 보고 대충 그렸다고 평가할 때면 ' 그건 사람들이 작품을 대충 봤기 때문'이라고 얘기했다. 많은 고민을 하며 그림을 그렸지만 대중에게 인기가 없고 그림이 팔리지 않아 늘 무명의 화가로 살았으며 가난하기 때문에 성공에 목마른 그가 파리에 살면서 주변 풍경, 인물, 사물을 세밀하게 관찰하면서 혼신의 힘을 다해 그림을 그렸다는 것은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잘 나와 있다. 그는 19년에 걸쳐 4살 어린 남동생 테오에게 660여 통의 편지를 쓴 것을 보면 화가이기도 하고 글 잘 쓰는 작가라고 판단된다.
대체 많은 사람들 눈에 나는 무엇일까? 나라는 인간이 있기는 한 것일까? 괴짜인가? 고약한 녀석인가? 사회적으로 아무런 지위도 갖지 않은, 또 가질 성싶지도 않은 사내인가? 요컨대 가장 지독한 불량배보다도 더 형편없다. 좋다. 정말 그렇다 하더라도 그처럼 아무것도 아닌 존재, 그처럼 너절한 사내의 염통에 무엇이 숨겨져 있는지를 나는 머지않아 내 작업을 통해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것이 나의 야심인 것이다. 그러나 그 야심은 증오보다도 사랑에, 흥분보다도 침착하고 밝은 감정에 기초하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 몇 번씩 불쾌한 일로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 때에도 역시 내 속에는 침착하고 청순한 조화와 음악이 있다. 예술은 완고한 제작, 쉬지 않는 제작과 끊임없는 관찰을 요구한다. 완고한 제작이라는 말에는 무어 소다도 먼전 끊임없는 제작을, 그리고 동시에 이러저러한 남들의 의견 가운데서 자기의 견해를 유지한다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 최근에 나는 특히 화가들과 그리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래도 별로 불편함을 느끼지는 않는다. 화가의 말보다 차라리 자연의 말에 더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
에펠탑에 올라가 파리 시내를 휘 둘러보고 지도를 살피며 슬금슬금 30분 정도 걸어서 로뎅 미술관에 들어가 '탕기 영감의 초상화'를 바라보며 고흐가 생각했던 관찰력을 복사하기 붙여넣기 하면서 내면의 힘을 끌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