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의 탈을 쓰다
밖에 날이 좋은데 나의 기분은 우울하다. 세가토리가 떠나고 나서 매일 가던 카페를 더는 갈 일이 없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려고 캔버스를 들고 강둑을 거슬러 오른다. 아니에르는 파리의 북쪽에 위치해서 몽마르뜨와 조금 멀리 있지만 그곳에서 조용히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다. 동네 사람들은 나에게 놈팡이, 동생 뼈 갉아먹는 놈,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미술광, 삐딱한 정신이상자라고 놀리고 손가락질을 한다. 그러나 그들과 쓸데없이 대화하고 나의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는 않는다. 그래서 몽마르뜨 숙소에서 아니에르까지 걸어서 오래 걸리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향한다. 그나마 이곳은 나를 아는 이가 별로 없으니 마음껏 소리쳐도 누구 하나 뭐라고 하는 이가 없다. 조용히 앉아 검은 연기를 뿜는 기차를 바라보기만 해도 기분이 조금 가라앉는다. 이제 새 시대가 열리느라고 높은 건물이 생기고 도로를 정비하고 기차가 석탄을 실어 나르느라고 무척 바쁘다. 또한 시골에서 파리로 상경한 사람들로 더욱 북적거린다. 어딘가로 멀리 떠나고 싶은 때가 오기를 기도해 본다.
그나마 나에게 센 강이 있으니 조용히 그림 그리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어느새 떠나버린 여인이 다시 보고 싶으면 센 강 강둑에 앉는다. 저 멀리 보이는 빨간 여인이 그녀가 아닌가 상상해 본다. 빨간 양산을 쓴 그녀와 잠깐 뱃놀이하며 미래를 꿈꾸었던 나 자신이 부끄러운 순간이다. 하지만 그녀에 대한 나의 사랑은 진심이었다.
늦은 저녁에 테오가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끊임없이 미술에 대한 질문을 해본다. 눈이 퀭한 테오에게 미안하지만 하루 종일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안 하면 바보가 되는 느낌이 들어 테오를 괴롭힌다. 가끔 벌컥 화를 내지만 그래도 나를 예술가로 지지하고 인정해 주는 테오를 정말 아끼고 사랑한다. 지금 내 옆에는 오로지 나의 동생 테오뿐이다. 테오가 옆에 든든하게 있어주고 나의 정신력을 붙들어 주어 정말 고마움을 느낀다.
테오는 나를 그림의 세계로 이끈 정신적 지주이자 자극이며 관객이자 스승이었다._고흐
그 가장 깊은 내면은 어디에 있을까, 그렇게 깊고, 그렇게 깊지만, 그것이 나올 때는 모든 자아보다 훨씬 더 높고, 더 높고,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높다. 별에 도달하기까지 오래 걸리고, 그러고 나서 아, 그것이 다시 얼마나 빨리 사라지는지._에드워드 불워 리턴의 소설 ' kenelm Chilling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