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지누

고흐의 탈을 쓰다

by 채코

1888년 10월 23일 드디어 고갱이 노란집에 도착한다. 고갱과 함께 어울리다 보면 나보다 잘나가는 고갱과 비슷하게 인기를 누릴 수 있다. 그렇게만 된다면 내가 그린 그림들이 빠르게 팔려 지금의 가난한 생활에서 탈출할 수도 있다. 그래서 매일 들르는 카페의 지누 부인에게 고갱을 소개한다. 지누 부인도 고갱의 인기를 아는지 공손하게 잘 대해준다.


고갱이 지누 부인의 인물화를 요구하여 그림을 그리게 된다. 내가 지누 부인에게 그렇게 부탁했을 때는 얼굴을 가리고 수줍어하더니 역시 대가가 등장하니 주변인들이 그를 대하는 모습부터 다르다. 나도 옆에서 지누 부인을 그려 본다. 그녀의 앞에 양산과 장갑을 그려 넣어서 심심풀이 땅콩으로 카페의 가게를 운영하는 것이 아닌 지금의 시대와 어울리는 우아한 여성의 모습을 그려 놓았다. 그리고 그녀의 앞에 책을 가지런히 놓고 다시 그림을 그린다. 글자를 읽지 못하는 그녀이지만 지누 부인은 나에게 특별한 존재이다. 아를에서 방황하는 나를 잘 정착해서 살 수 있도록 보듬어주었기에 누구보다 애착을 가진다. 그러나 고갱은 그런 나의 마음과 다르게 그녀 앞에 싸구려 술과 잔을 그려놓고 배경에는 술에 잔뜩 취한 나의 친구들이 등장한다. 고갱이 그린 그림을 보는 순간 머리끝까지 화가 차오르고 고갱에게 막말을 하게 된다. 나의 주변인들을 그런 식으로 조롱하는 것에 용서가 안된다. 고갱을 예술가로 존경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조금씩 서로에게 상처를 남긴다.


내 안의 또 다른 인물이 등장하여 고갱에게 질투심과 모욕감이 극에 달하여 고갱을 괴롭히고 싶다. 또한 그림 그리는 중에도 티격태격 싸우는 일이 잖아 잔다. 툭하면 나를 무시하고 가르치려 드는 고갱의 말투가 자꾸 거슬린다.


그래서 어두운 밤길, 고갱과 나란히 걷는 길에 면도칼로 고갱을 위협한다. 무슨 정신으로 그를 괴롭히려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 안의 또 다른 인물로 인해 고갱은 화가 났으며 노란집으로 가지 않고 다른 호텔로 향한다.


혼자서 고독하게 집에 들어와 해바라기 그림이 걸린 손님방에 들어가 한쪽 귀를 싹둑 자른다. 그리고 기진맥진한 채 발작을 일으키며 침대에 그대로 쓰러진다.


다음날 아침에 고갱이 노란집에 왔을 때 침대에 누운 나를 살피고 경찰에 신고한 후 모든 사건이 종료된다. 고갱은 경찰에게 한마디 남기고 훌쩍 떠난다. 다시는 동경하는 그이를 볼 수 없게 된다.


많은 것들을 사랑하라. 그곳에 진실의 힘이 깃들어 있다._고흐


고흐에게 아픔을 주는 큰 사건이다. 고갱은 어차피 떠날 사람이었는데 고흐는 그에게 모든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서로 너무 다른 가치관을 가지기에 끝내 서로의 마음에 스크래치를 남기고 떠나게 된다. 고갱은 잃을 게 없었지만 고흐는 모든 게 물거품이 된다. 타인의 인기에 주목하느라 그의 목소리에 주목할 수 없게 된다._채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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