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의 탈을 쓰다
1888년 8월 아를의 태양빛이 반짝인다. 조용히 일어나 캔버스를 들고 밖으로 향한다.
"많이 감탄해라."_고흐
날씨가 화창하여 빛을 표현하기 안성맞춤이다. 주변을 가만히 둘러본다. 멀리 들판을 바라다보고 세심하게 관찰한다. 그림 주제에 어울리는 풍경을 바라보면 한없이 감탄사가 흘러나온다. 자연이 주는 위대함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혼자서 탄성을 지른다. 그림 그린다고 후회하고 자책하며 계속해야 하는지 망설여지던 때가 지나고 나니 후련하다. 여전히 가난하지만 미술하면 가난이 떠오른다는 굴레에서 벗어났다. 하릴없이 세월만 보내고 그림쟁이라는 비판을 받는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피해 자유를 추구할 수 있는 지금이 나에게 황금기이다. 파리에서 떠나 홀로 남겨진 나에게 아를은 자유와 자연, 두 가지를 선물해 준다. 아를에서의 그림 소재는 차고 넘친다. 마차를 타고 지나다가 휴식을 취하는 보헤미안(=집시)의 심정과 다를 바 없이 나는 자유를 추구하며 새로움을 발견하고 숨이 트인다.
조심스럽게 다가가 캔버스에 빠르게 연필로 스케치를 남긴다. 그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속도가 더 빨라진다. 휘리릭 그린 그림에 인물의 형상이 약간 뭉개진 느낌이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빛이 바랜듯한 하늘의 에메랄드 녹색과 가을에 접어든 황토색 대지가 눈에 띄는 대조를 이룬다. 하늘과 땅 사이에 마차와 세 마리의 말, 몇몇의 남녀, 그리고 두 명의 어린아이가 그림 속에 등장한다. 부드럽고 서정적으로 빛을 표현한다. 그림에 담긴 집시들은 다음 서커스 여행지를 선정하려고 잠깐 나무 그늘에서 휴식을 즐긴다. 늘 새로운 곳에 적응하여 예술에 혼이 담긴 현란한 춤과 관중석의 대중에게 마법 같은 감동을 주려는 그들의 고민을 그림에 담아낸다. 그림을 그리면서 집시가 가진 삶의 고난과 내가 연결된 느낌이다. 동질감을 가지며 그들의 평안을 기도한다. 인생의 고난은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그림을 그린다고 춤을 춘다고 재주를 부린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고난의 정도는 모두 동일하다. 그 고난 마저도 즐길 뿐이다.
"이방인들의 휴식, 붉은색과 녹색 마차들을 그린 습작"_고흐
글을 쓴다는 것은 가난을 자초하는 길이다. 글을 쓰는 자들은 보통 먹고사는데 어려움을 가진다. 한강 작가가 노벨상을 받았다고 하나 100의 1에 해당하는 자들만 특권을 누린다. 천재적인 글쓰기를 가진 자들만 독식하여 살아남는다. 글쓰기에 그저 그런 인간들이 차고 넘친다. 나 또한 그저 그런 인간에 속한다. 그럼에도 글쓰는 이유는 그것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빠진 삶은 생각할 수도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고흐는 미술, 나는 글쓰기를 사랑하기에 우리는 동일한 인물이다. 사랑하는 실체가 있으므로 삶이 더 풍요롭다. 그 존재를 아는 것과 모른채로 사는 것의 삶의 질은 확연히 차이가 난다.
글쓰는 자여 가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당신의 글쓰기에 자유가 반드시 존재한다._채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