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리스

고흐의 탈을 쓰다

by 채코

내가 좋아하는 고갱과 다투고 귀를 자르는 사건으로 동네에서 특별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 누가 또 신고한 모양인지 수시로 경찰이 집으로 드나들며 감시한다. 슬리퍼를 질질 끌고 카페에 앉아서 커피와 빵으로 조촐히 끼니를 때우고 있으면 흘깃흘깃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진다. 그래서 되도록 밖으로 나가는 일이 줄어들게 된다. 여전히 나를 보살피려는 카페 주인 마리 지누를 제외하고 누구도 믿지 못한다. 스스로 외로움이 강해지고 상처가 깊어지고 견디지 못하겠다는 판단이 들어 생레미 병원으로 가게 된다. 동네 사람들은 아마도 나의 이런 행동에 박수를 보내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결정으로 지금은 병실에 들어와 환복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걸 터 앉아 있다. 머리를 쥐어짜고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괴로움이 밀려온다. 내가 좋아하는 아름다운 아를의 풍경화를 더 이상 그릴 수 없다는 것은 죽음을 선택하는 것과 동일하다. 발작 증세가 2주에서 4주 간격으로 계속되니 내가 그림은 그릴 수 있으려나 싶다. 그러다 밖에 핀 꽃 한 송이를 보게 된다. 보랏빛을 발하는 그 꽃이 너무도 황홀하게 피어 있는다. 한들거리며 조화롭게 옹기종기 모인 꽃인데 보라색, 노란색, 흰색 종류도 다양하다. 정원을 가꾸는 정원사가 보이지 않지만 얼기설기 어지러이 핀 꽃들은 나에게 천국과도 같은 공간이 된다. 다시 붓을 들고 화폭에 정교하게 아이리스(=붓꽃, 창포)를 담는다. 그릇에 음식을 곱게 담아내듯 하나씩 완성한다. 같은 그림을 여러 장 그리면서 다시 행운과 행복의 기운을 찾게 된다. 여전히 발작 증세가 일어나면 행동이 폭력적으로 변하고 물감을 씹어 먹는 사건까지 있으니 약물의 힘을 빌려 살아간다. 발작 증상이 상상을 초월하니 의사는 나에게 한 움큼의 약을 준다. 너무 많은 약을 한꺼번에 먹게 되면 시선이 어지러워 시공간을 흔들어 놓는다. 죽을 만큼 힘든 고비를 넘겼지만 절대로 그림 그리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꽃을 그리며 스스로 위안을 받는다.


다양한 곡선의 실루엣을 만들기 위해 아이리스의 움직임과 모양을 연구하고 일본 잡지에서 본 것과 동일하게 아이리스 그림을 그릴 때 검은색 윤곽을 그려놓으니 꽃이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보라색의 선명한 흔들림이 하늘하늘 움직이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고 노란색 배경을 선택하여 인간의 감성을 자극한다. 복잡한 극과 극 색채의 혼합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아이리스 그림은 내 질병을 조절하는 지휘자_고흐

보라색이 상징하는 희망과 노란색이 상징하는 행복을 꿈꾸며 아이리스를 바라보고 그리고 또 그렸다. 아이리스를 그리며 자신감을 얻고 조금씩 안정을 찾아간다. 그 좁은 공간에서 150점이나 되는 미술 작품을 바라보며 환한 미소를 짓는다.


이곳에서는 아무도 돌보지 않는 정원만 뒤져도 그림의 소재를 충분히 찾을 수 있어. 인생의 대부분을 이곳에서 지낸다 해도 그리 불행한 일은 아닐 것 같구나_고흐


흔들리는 정신세계에서 흔들리는 아름다운 아이리스가 탄생한다. 하늘거리는 흔들림 속에서 나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하며 인생의 대부분을 보내며 살지 고민한다.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말하고 싶다. 중년의 남은 인생은 쓰다 죽고 싶다. 쓰러지기 직전까지 손가락이 자유자재로 움직일 때까지 쓰고 싶다. 그림을 읽고, 쓰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 참말로 다행이다. 이른 새벽 미소가 절로 나오고 유리에 비친 태양이 눈이 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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