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의 탈을 쓰다
그림을 그려야 하지만 어떤 그림을 그려야 할지 막상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다 테오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테오가 편지 속에 고스란히 보내준 밀레의 그림을 보게 된다. 비록 생레미 병원에 감옥처럼 갇혀있지만 그림을 계속 그리고자 하는 욕구는 사라지지 않는다. 손가락과 발가락 끝에서 나오는 에너지를 발휘하려면 자연에서 부는 시원한 바람(고요, 실바람, 남실바람, 산들바람, 건들바람, 흔들바람, 된바람, 센바람, 큰바람, 큰세나람, 노대바람, 왕바람, 싹슬바람)을 한데 모아서 피부로 느끼며 복합적인 그림을 그리고 싶다. 질감이 풍부하고 세밀한 색채를 연구하려면 직접 보고 느끼고 맛보아야 한다. 하지만 매번 생레미 직원과 함께 대동하여 밖에 나갈 수 없어서 그때부터 밀레의 그림을 습작한다. 그의 그림을 따라 그리면서 그를 존경하고 사랑하게 된다. 그림을 그릴적에 미술의 젊은 대가 밀레가 불쑥불쑥 나타나 영감을 준다. 모방에서 새로운 감정을 쭉 빨아들인다.
그때 그린 그림 중의 하나가 [정오의 휴식]이다. 이 작품은 밀레의 그림과 정반대로 그려 놓았다. 거울을 바라보듯 밀레와 동일하게 유명한 화가가 되고 싶은 욕망을 표현하고 싶었다. 밀레의 그림 속에는 농부의 낫이 왼쪽에 있지만 나의 그림에는 낫이 오른쪽에 있다. 거울 보듯이 그의 그림을 탐구하다 보니 그가 되고 내가 되는 상상을 해본다. 2개의 낫과 농부의 가지런히 벗어놓은 신발, 그리고 아내와 나란히 누운 소작농의 휴식을 애잔하고 조심스럽게 표현했지만 색을 다르게 구성한다. 색채에 대해서는 또 다른 감정을 실는다. 내가 그동안 연구한 색에 대한 따뜻한 느낌을 그대로 담아낸다. 유화 물감을 두껍게 바르고 덧칠하여 출렁이는 밀밭을 구성하고 고요함 속에 생동감을 안겨준다. 농부가 편히 휴식을 취하며 자연에 몸을 의지한다. 아마도 몸이 여기저기 아프고 정신이 몽롱한 상태가 계속되다 보니 편히 쉬는 모습을 표현하고 대리만족하고 있는다. 다 완성된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편안한 마음과 풍족한 자연의 힘을 가진다.
나는 그림에 내 가슴과 영혼을 불어넣는다. 그리고선 그림을 그리는 도중 내 마음을 잃어버린다._고흐
고흐의 그림을 보고 고흐가 되는 상상을 해본다. 어떻게 하면 고흐가 가진 예술의 혼을 담아서 좋은 글을 쓰며 살아갈 수 있을지 글 속에 나만의 고유한 색깔을 입힌다. 나만이 가질 수 있는 글맛을 그림을 보며 탐구한다. 과연 매일 쓰는 글 속에 감정과 영혼을 불어넣었는가?
내가 쓰는 이유는 살아내는 이유가 된다._채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