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셰 박사의 초상

고흐의 탈을 쓰다

by 채코

오베르에 도착하여 테오의 권유로 가셰 박사를 찾아간다. 얼굴이 초췌하고 나보다 더 흔들리는 정신세계와 병이 있을듯한 그의 모습을 보고 조금 주춤주춤하고 괜히 왔나 싶은 마음을 가진다. 병을 치료하려고 왔는데 오히려 병을 달고 가는 게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하지만 어느새 그와 친구처럼 대화를 주고받고 일주일에 한 번씩 찾아가서 가셰 박사와 그림에 대한 많은 정보를 주고받는다. 그러나 그에게 병원비를 줄 수 있는 형편이 되지 못한다.


그 당시 라부 여인숙에 하루 3.5프랑을 지불한다. 1프랑은 방값, 2.5프랑은 식대를 낸다. 하루 생활비로 테오에게 5프랑(1프랑=1680원/5프랑=8430원)을 지원받는다. 호텔 방에 머물며 테오를 힘들게 할 수는 없으니 2.2평의 오각형 모양의 좁은 다락방에 살게 된다. 라부 여인숙의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 종종 주인 몰래 식탁보를 잘랐다. 오베르에 도착해서도 매일 오전 5시부터 오후 6시까지 그림 1점 이상을 그리니 캔버스가 늘 부족하다. 캔버스 살 돈이 없어서 전전긍긍하고 사니 당연히 호주머니를 탈탈 털어도 병원비가 없다.


다행히 그림 좋아하는 가셰 박사에게 병원 치료비를 줄 수 없으니 초상화를 그려 주는 것으로 대신한다. 역시 미술을 아는 가셰와 말이 통하고 죽이 척척 맞는다. 테이블 위에는 정신 치료제로 쓰이는 [디기탈리스]라는 꽃을 놓고 내가 읽던 책 2권을 테이블 위에 올리고 가만히 앉은 가셰에게 턱을 괴고 포즈를 잡으라고 요청한다. 그 책은 마네트 살롱의 형제가 쓴 책으로 예술과 노이로제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책을 읽지 않고 공부를 하지 않으면 길을 잃는다고 생각한다. 가셰 박사는 병든 아내와 사별하고 정신과 의사이지만 우울증을 심하게 앓고 있는 중이었다. 그림 속 침울한 표정이 그의 삶을 대변한다. 사람이 그리운 나와 가셰는 동일한 마음을 가지며 서로를 이해하고 그림으로 소통한다.


가셰 박사가 내 자화상을 좋아해 같은 분위기로 그렸어… 우울하지만 점잖고, 명석하고 지적이게. 얼마나 많은 초상화가 이렇게 돼야 했는지… 거기엔 현대의 정점이 있어. 아마도 100년 후에도 돌아보게 될... (남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


가셰 박사는 나와 몸도 마음도 많이 닮은 사람이야…100년 후에 환영처럼 보일 초상화를 그리고 싶어. 사진처럼 그리는 게 아니라 현대적 기법과 색감을 사용해 열정적으로 인물의 내면을 표현하고 싶어.(여동생, 빌레민에게 쓴 편지)_고흐


요즘 병원 가는 발걸음이 더욱 가볍다. 정원에 들어서면 아리따운 여인이 물을 주고 산책하는 모습이 보인다. 가셰의 딸이 정원을 거닐며 꽃을 가꾸는 모습을 훔쳐볼 수 있다. 그 어린 여인의 뒷모습을 살포시 보는 것만으로 희열을 느낀다. 여인을 계단에서 마주하고 스치고 지나갈 때면 37살 청년의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도 한다. 그녀에게 살포시 눈인사를 하는 것으로 서로에게 예의를 차리고 마음을 주고받는다. 나의 눈에는 영원히 사랑할 것처럼 애정 어린 눈빛을 담아본다. 세상이 그녀가 그런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모든 것이 두렵기만 하다.


책을 읽고 편지글을 남기고 고흐, 자신의 내면을 살피면서 초상화를 그린다. 주인공의 내면까지 살아 움직이게 하려고 5살 어린아이가 되는 심정으로 세심히 관찰하는 그의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에 박수를 보낸다. 삶을 온전히 살아보고 싶은 특별함을 가지는 인간이기에 그의 작품을 보면서 나의 삶을 돌아보고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갈지 가늠해 본다.


그림 한점에 고독과 아픔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다.
글 한 줌에 희망, 사랑, 미래가 담겨 있다.
100년후에도 읽히는 책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_채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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