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의 탈을 쓰다
기차가 달린다. 하루를 쉬지 않고 한 점, 두 점 그림을 완성한다. 무슨 꿈을 이루려고 늦은 나이에 그렇게 열심히 몰입하는지 지나가는 이가 묻는다. 오베르에 도착하고 살랑살랑 부는 바람이 나의 손목에 살포시 내려앉는다. 내가 움직이지 않아도 어느새 손에 붓이 걸린다. 그 붓을 들기 시작하면 멈추지 않는다. 먹는 것, 입는 것, 보는 것 등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시작하기로 마음먹은 것을 끝까지 해낸다. 남들은 그림 한 장을 삼일, 일주일, 한 달 동안 그린다지만 나는 그저 빠르게 스케치하고 단번에 색감을 잡아넣는다. 주변의 인물, 사물, 풍경에 이르기까지 그림 소재가 차고 넘친다. 정신이 조금만 온전했으면 아마도 더 많은 작품을 남기지 않았을까 혼자 생각한다.
기차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힘차게 달린다. 희뿌연 연기를 뿜으며 달리는 기차에 몸을 싣고 싶다. 파리에서 테오를 3일만 보고 온 것이 못내 아쉬워 다시 그리워진다. 테오의 아들 빈센트를 마음껏 안아주지 못한 것이 마음 쓰인다. 저 기차에 오르기만 하면 1시간 안에 도착할 것을 알지만 테오 부부가 파리에 도착하더라도 나를 반기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기에 서두르지 않으련다. 그저 멀리 보이는 기차를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한다.
하얀 길 위에는 빨간 바퀴 달린 마차가 기차와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 어디를 가는지 검은 물체를 이고지고 힘겹게 나아간다. 인생의 힘든 고민을 안고 가는 기분을 가진다. 하얀 길 따라가다 보면 저 어딘가에 숨을 쉬는 공간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조금만 참고 가면 마지막 종착지가 보인다. 그곳에서 검은 짐을 풀고 마음도 내려놓으면 모든 것이 종료된다. 그곳에 도착하면 밀밭, 해바라기, 사이프러스 나무를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다. 삶의 극심한 통증이 가라앉게 되고 시야가 점점 흐려지며 앞에 사랑하는 물체가 보이지 않게 된다. 어쩌면 이것이 마지막 인생이 될지도 모르겠다.
최근 나는 많이 그리고 빨리 작업을 하고 있다. 그렇게 해야만 현대 생활의 빠른 흐름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가 내린 어제, 나는 멀리 바라다보이는 전원 풍경을 높은 위치에서 그렸다. 서로 다른 종류의 푸른 잎, 잘 자란 풀, 검푸른 감자밭, 잘 심어 놓은 식물 사이에 보라색 땅, 옆으로 하얀 꼿을 피우고 있는 완두 콩밭, 분홍색 꽃이 핀 루선 밭에서 일하는 수확하는 농부의 작은 형체, 엷은 황갈색의 색조, 밀밭, 포플러 나무, 수평선 위로 파란 언덕의 마지막 선, 그 밑에 기차가 엄청나게 하얀 연기를 뒤로 내뿜는 채 지나가고 있었다. 하얀 도로가 캔버스를 가로지르고, 도로 위로 작은 마차 하나와 도로가에는 적갈색 지붕이 있는 하얀 집들이 있다. 미세한 비는 파란색 또는 회색 선으로 전체에 줄무늬로 묘사되어 있다.고흐
6월의 오베르는 푸른 기운이 넘친다. 요양원 생활의 고독과 고립에서 벗어나 캔버스를 메고 오베르 전원을 여기저기 다닌다. 저 화면 한가운데 빨간 바퀴 마차가 싣고 가는 것이 관이라고 한다. 아마도 죽음을 예감하고 시선이 그쪽으로 향한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지만 늘 심리적 불안을 달고 살았을 그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죽음을 상상했을까? 그림 속에 자신의 죽음을 투영하여 우리에게 어떤 것을 보여주려 한 걸까? 그가 상상한 죽음이 올바르게 흘러가고 있는 것인가? 기차와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는 자신의 삶과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살아가는 그가 저 멀리 지나간다. 거칠고 험한 얼굴을 가졌을지라도 그의 마음은 더운 여름날 복숭아 향처럼 달콤하리라.
언젠가 관 속에 들어가는 삶이지만 그와 같이 복숭아 향이 나는 사람이고 싶다._채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