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드림 시나리오> 리뷰
만약 모든 사람의 꿈속에 똑같은 남자가 나타난다면 어떨까? 셀럽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남자일 뿐인데, 모든 사람의 입에 오르내린다면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이후 생기는 껄끄럽고도 피하고 싶은 일들을 마주했을 때의 느낌, 그리고 자신은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았는데도 무차별 공격을 받아야 하는 억울함의 강도는 어느 정도일까?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가 꿈도 허구도 아닌 실제 우리 주변에서 일어난다면, 그 대상이 혹시 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드림 시나리오>는 꿈을 소재로 한 허구의 설정으로 현실을 직시하게 만드는 물음을 관객에게 전한다.
여기 평범한 중년 남성이 있다. 이름은 폴(니콜라스 케이지). 직업은 인기 없는 대학교수고, 사랑하는 아내, 두 딸과 함께 살고 있다. 명예욕에 비해 큰 노력을 하지 않는 그는 하루하루 평범한 일상을 꾸역꾸역 살아간다. 하지만 전 세계 모든 이들의 꿈에 나타나면서 180도 다른 인생을 산다. 아내를 제외한 가족은 물론, 친구, 제자, 불특정 다수에게 그는 셀럽이 된다. 방송사 인터뷰는 물론, 광고 섭외까지 받은 그는 이번 기회로 얻은 명성을 이용해 자신이 꼭 써보고 싶은 책을 내려 노력한다. 하지만 정작 사람들은 그의 연구 과제보다는 이미지만 소비한다. 마치 소셜미디어 내 ‘밈’처럼. 이 꿈 같은 시간도 잠시, 폴은 하루아침에 나락에 떨어진다. 어느 순간부터 그의 꿈이 악몽으로 변했기 때문. 본의 아니게 대중의 질타를 받게 된 그는 이 지옥 같은 현실에서 고통받는다.
<드림 시나리오>는 꿈이라는 소재로 현실감 제로에 가까운 허구의 세계를 만들고, 그 안에서 현실을 직시하게 만드는 순간을 관객에게 전한다. 블랙 코미디에 가까운 이 풍자극에서 가장 주요한 소재는 SNS다. SNS를 통해 누구나 갖고 있는 관종의 욕망을 건들고, 그로 인해 얻는 (잠깐 동안의) 행복과 폐해를 살짝 비틀어 보여주는데, 작년 동일한 소재로 씁쓸한 웃음을 전했던 한 영화가 생각난다. 바로 <해시태그 시그네>다.
<드림 시나리오>는 <해시태그 시그네>를 연출한 크리스토퍼 보글리의 신작이다. 이 영화는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위해 약물로 피부를 망가뜨리는 한 여성의 웃지 못할 기행담이다. 감독은 병적인 관종 사례를 보여주는 동시에 뭐든 반응을 끌어내면 장땡이라는 풍조를 스크린으로 옮겼다. 극 중 더 많은 관심을 얻기 위해 자신을 파괴하는 걸 계속 이어가는 주인공 시그네(크리스틴 쿠야트 소프)의 모습은 현실 속 SNS에서 매일 마주하는 사람들의 기행적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공론화하기 꺼리는 현실의 단면. 감독은 가까이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처럼 보이는 이 현상을 블랙 코미디로 승화시킨다.
전작과 달리 이번 영화는 자기 파괴적 과정을 걷는 이유가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한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시그네에 비해 폴이 가진 관종끼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 남자는 그냥 자신이 연구했던 결과물을 ‘네이처’지와 같은 저명한 곳에 싣고 싶을 뿐이다. 그게 다다. 모든 이에게 교수로서, 생물 연구자로서 인정받고 싶을 뿐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꿈에 등장한 이후, 그는 자신의 바람과는 정반대로의 삶을 살고, 끝내 자의적 선택이 아님에도 결국 망가져 가는 인생을 산다. 감독은 진실이 어떻든 간에 이미지만 소비하고, 매번 새로운 재미를 찾는 대중들의 반응에 휩쓸린 한 인간의 말로를 보여주는데, 이는 하루아침에 유명해졌다가고 하루아침에 나락의 길을 가는 인플루언서의 삶과 오버랩된다. 특히 사소한 문제 하나로 인해 팔로우 및 구독을 취소하고 비난을 일삼는 ‘캔슬 컬처(cancel culture·취소 문화)’를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모습이다.
감독의 전작보다 <드림 시나리오>가 더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폴의 평범하고 일반적인 그리고 수동적 삶의 자세에서 나온다. 첫 장면, 딸의 꿈속에 등장한 폴이 하는 거라곤 수영장 주위에 있는 낙엽을 치우는 일이다. 자신도 모르게 하늘로 떠 올라 무섭다고 말하는 딸에게 그는 괜찮다는 식의 말만 늘어놓는다. 다른 이들의 꿈에서도 그는 지나가는 행인에 불과하다. 영웅처럼 중요한 일을 하는 이가 아닌 병풍 같은 역할만 하는 이 남자는 평범한 우리의 모습과 닮아서 더 측은해 보인다.
그런 그가 꿈을 통해 셀럽이 된 이후, 겪는 일련의 일들은 평범한 사람들이 겪거나 생각했던 일들이 아니다. 그 자체로서 성공과 성장의 기회로 보이지만, 알고 보면 자기 뜻이 하나도 관철되지 않은 채 대중의 힘으로 휩쓸려 간다. 혼자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그 혼돈 과정에 빠진 폴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런 폴의 상황은 영화 초반 강단에 선 폴이 학생들에게 얼룩말 줄무늬의 의미를 설명하면서 미리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얼룩말 줄무늬는 초원에 홀로 있으면 맹수들의 눈에 잘 띄지만, 무리 지어 다니면 맹수들의 눈에 엄청나게 거대한 동물로 보인다는 설을 설명한다. 이는 마치 평범한 자신이 일반인들과 함께 살아갈 때는 표적이 되지 않지만, 꿈 등장 후, 홀로 주목받으며 누군가의 표적이 된다는 걸 알려주는 것처럼 들린다.
폴은 자신을 얼룩말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거다. 언제나 가족과 사회 구성원으로서 무리 지어 살아갔으니까. 하지만 하루아침에 얻은 명성과 인기는 그가 무리 밖으로 나오게 한 계기를 마련했고, 아무런 준비 없이 초원에 홀로 나온 그는 대중의 먹잇감이 된다. 감독은 이런 폴을 통해 일반인들도 SNS를 통해 인플루언서가 되는 상황속에서 대중의 주목과 인기를 감내할 수 있는 준비가 되지 않은 이들이 결국 어떤 어려움에 봉착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또한 미디어를 통해 대중의 관심이 가져온 밝은 면만 봐왔던 이들에게 보이지 않았던 아니, 보지 않으려고 했던 어둠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앞서 소개한 것처럼 영화는 SNS의 명암을 스크린으로 옮기려고 하는 노력이 엿보인다. 그중 하나가 폴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계기에서 잘 나타난다. 그가 꿈에 등장하는 이유는 명확하지 않지만, 나락에 떨어지는 계기는 어느 정도 유추 가능한, 바로 ‘의도적 행동’이 가해졌기 때문이다. 매사 수동적이었던 그는 인기와 명성을 동력 삼아 책을 내려고 한다. 처음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했을 때 부터 전 세계인들의 꿈속에서 그는 주변 사람이 아닌 꿈을 꾸는 이들을 공격하는 살인마로 변신한다. 그 이후부터 대중들의 외면은 시작된다.
마치 자연스러운 바이럴인줄 알았던 것이 실은 광고 협찬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질타를 받는 인플루언서의 전철을 밟는 것처럼, 돈이 결부되지 않은 자연스러운 재미와 유희에 ‘좋아요’를 보내는 대중들의 심리가 이 영화에 반영된 것이라 볼 수 있다. 돈 혹은 명성이란 욕망 실현을 위한 인위적 행동이 대중들에겐 어떻게 다가가는지도 감독은 빼놓지 않고 잘 보여주려 한다.
결국 폴의 욕망 실현 시도는 자신의 커리어를 망치고, 가족과의 와해를 불러일으키며, 심지어 돌이킬 수 없는 행동까지 범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누구나 셀럽이 될 수 있는 현시대지만, 반대로 누구나 셀럽이 되어서는 안 되는 현시대를 반영한다고 말할 수 있다.
영화의 중심은 니콜라스 케이지가 잡는다. 꿈을 통해 천국과 지옥을 모두 경험하는 폴은 그만큼 감정의 폭이 깊고 넓은데, 니콜라스 케이지는 마치 자신이 그런 삶을 산 것처럼 사실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를 통해 오스카의 영광을 안았고, 할리우드 거대 스튜디오 작품들의 단골 주연으로 활약했던 그는 인기 하락과 사생활 문제가 겹치면서 B급 영화에만 출연하는 시기를 맞이한다. 돈을 위해 그저 그런 영화에 출연하고, 그 영화를 통해 한물간 스타로 평가받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던 그는 폴을 이해할 수 있는 교집합을 이미 마련했던 상태. 이번 작품의 제작에도 참여한 그는 전사만 봐도 폴의 인생을 산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영화 <피그>를 통해 자신의 힘들었던 인생을 반추하게 만든 니콜라스 케이지는 또 한 번 후회 가득한 자신의 인생을 반영한 작품을 내놓았다고 말할 수 있다.
영화의 매력은 후반부에 포진되어 있다. 감독은 현대인들을 향한 비판 어린 시각이 담긴 블랙 코미디로서 마무리하지 않고, 자의든 타의든 간에 자신이 택한 일을 뒤늦게 후회하는 폴의 감정선을 따라간다. 무리에서 이탈한 나머지 너무나 멀어진 자신의 위치에 맹수의 공격을 피해 다니기만 하는 얼룩말처럼, 그 또한 너무나 평범했지만 가족과 함께했던 그 행복을 다시는 누릴 수 없다는 생각에 힘들어한다.
후회는 후회를 낳는 법. 아이러니하게도 꿈을 통해 뭔가를 해보려는 그의 마지막 행동은 순수 그 자체. 더 이상 대중의 시선을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삶과 행복을 위해 뭔가를 하는 그의 모습은 잠깐이나마 행복한 순간을 느끼게 한다. 곧 깨어날 꿈이기 때문에 그 안타까움과 애절함은 사무치지만 말이다. 뼈저리게 웃는 블랙코미디로서의 마무리가 아닌 휴머니즘으로 점철된 마무리라는 점에서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평범한 삶의 중요성이 더 부각된다. 각자 내제되어 있는 관종끼를 잠시 누르고 소박하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을 찬찬히 살펴보자. 모두들 특별한 존재로서 나의 모습은 꿈에서 마주하길 바란다.
덧붙이는 말: <드림 시나리오>처럼 한순간에 셀럽이 되는 평범한 남자의 일상을 그린 작품이 있다. 우디 앨런 감독의 <로마 위드 러브>다. 영화 속 두 번째 에피소드인 레오폴도(로베르토 베니니)의 이야기가 바로 그것. 비교해서 보면 더 좋을 것 같다.
평점: 3.5 / 5.0
한줄평: ‘꿈 속의 남자’가 겪는 캔슬컬처 지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