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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또비됴 Apr 22. 2023

자신의 뿌리를 찾는
‘라이스보이’의 여정!

영화 <라이스보이 슬립스> 리뷰

전 세계 영화제 24관왕을 기록하며 제2의 <미나리>라 불리는 <라이스보이 슬립스>. 과거 캐나다 이민자로서 힘들었던 유년 시절을 지켜보는 한 남자의 이야기인 동시에, 풍파를 맨몸으로 이겨내며 자식에게 헌신했던 한국의 어머니들을 위한 찬사, 그리고 진정한 ‘라이스보이’가 되기 위해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는 여정을 담는다.


영화 <라이스보이 슬립스> 스틸 ⓒ 판씨네마(주)


영화는 어느 한 남자(동현의 아버지)의 내레이션으로 어느 여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던 소영(최승윤)은 어느 대학교 앞 주점에서 만난 가난한 남자와 평생 가약을 맺는다. 하지만 힘든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남편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한순간 미혼모가 된 그녀는 아들 동현(황도현)의 삶을 위해 캐나다 밴쿠버로 이민을 간다. 예상했지만 지인 하나 없는 낯선 곳에서 삶은 녹록지 않다. 공장에서 일하는 소영은 성추행까지 당하는 수모를 겪고, 동현은 ‘라이스보이’라 불리며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한다.


 가장 잘 아는 이야기를 제대로 하고 싶었다



다수의 인터뷰를 통해 이같이 밝힌 앤소니 심 감독은 극 중 동현처럼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이주했다. 그리고 자신과 가족처럼 타국에서 지냈던 캐나다 이주민 1, 2세의 이야기를 묶어 영화로 만들었다. 배우 활동을 먼저 시작했지만, 캐스팅 작품도 적었고, 한정적인 역할만 들어온 탓에 직접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한 그는 이 영화가 마지막 연출작이라는 마음으로 내가 하고 싶고, 잘할 수 있는 이야기를 선택해 스크린으로 옮겼다. 


영화 <라이스보이 슬립스> 스틸 ⓒ 판씨네마(주)


이런 배경 탓에 영화는 감독의 반자전적인 스토리가 가미되었는데, 이방인으로서 겪어야 했던 차별과 멸시, 고민 등이 사실적으로 다가온다. 생김새가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을 받고, 괴롭힘에 맞대응한 반격에 정학까지 당한 일들은 그 자체로 현실감을 전한다. (이 세상 이민자들을 위한 나라가 없다는 걸 다시 한번 일깨워 준다.) 특히 초등학교 점심시간에 깁밥을 먹다 같은 반 아이들에게 차별받고 놀림 받았을 때 화장실에 가서 도시락을 버리고, 집에서 저녁 먹을 때도 쌀이 아닌 다른 음식으로 도시락을 싸달라는 모습은 왠지 모를 짠함이 전해진다. 


영화 <라이스보이 슬립스> 스틸 ⓒ 판씨네마(주)

감독의 기억과 취향이 배어 있는 영화라는 점에서 동현의 스토리가 주를 이루지만 엄마인 소영의 이야기도 중요하게 다뤄진다. 1980년대, 미혼모의 아이는 출생신고를 할 수 없다는 당시 우리나라 법에 따라 캐나다로 갈 수밖에 없었던 소영의 고군분투기는 어떻게든 살아남겠다는 굳은 의지와 먹먹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동현이 자신을 놀리는 친구를 때렸다는 이유로 정학당하는 장면에서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 울분을 토하는 장면이나, 연인으로 발전하는 사이먼(앤소니 심)에게 ‘고려장’ 이야기를 하면서 몸이 아픈 자신의 처지와 감정을 에둘러 표현하는 장면은 그 자체로 가슴이 아프다. 신파 코드가 아쉽지만 감독은 경계인으로서 감내해야 하는 수많은 감정과 정신적, 육체적 힘듦을 모두 감내하고 홀로 아들을 키워내는 우리나라 엄마들의 위대함을 오롯이 보여준다. 


전반부는 집을 떠나와 새로운 집에 적응하는 모자의 이야기로 채워졌다면, 후반부에는 ‘뿌리’에 대한 이야기에 집중한다. 


 나는 과거를 존중한다. 우리가 온 곳을 모르면 갈 곳도 모를 테니까
- 마야 안젤루 -



수업 시간에 들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이자 시인, 작가, 배우, 활동가로 의미 있는 행적을 남긴 마야 안젤루의 명언은 10대 동현(황이든)의 마음속에 큰 물음표를 갖게 한다. 캐나다 친구들처럼 머리를 노란색으로 염색하고, 컬러 렌즈를 끼지만 경계인은 경계인일 뿐이다.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그 뿌리를 알고 싶은 생각은 몸이 아픈 엄마의 마음까지 움직이며, 드디어 아버지의 고향집으로 향한다.


영화 <라이스보이 슬립스> 스틸 ⓒ 판씨네마(주)


이후 경계인으로서 살아온 동현은 자신의 뿌리를 찾기까지의 여정에 집중한다. 소영에게 한국(뿌리)은 아픈 상처만 안긴 곳이지만, 동현에게 한국은 부모의 나라이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알 수 있는 중요한 곳이다. 한국 시골 풍경을 배경으로 눈치 보지 않고 쌀밥을 먹고, 할아버지, 삼촌과 이야기를 나누는 등 짧지만 긴 시간을 보낸 동현은 마치 밥의 뿌리가 쌀이라는 것을 안 것처럼 한국인이라는 뿌리를 확인하고 그 정체성을 받아들인다. 


집을 떠난 이들이 돌고 돌아 다시 집으로 오는 여정은 프란시스 맥도맨드 주연의 <노매드랜드>와 유사하지만, 스산함과 차가움 보다는 따뜻한 온기가 느껴진다. 그 이유 중 하나는 16mm 필름 사용과 인물들 사이를 부유하듯 지나가는 카메라 워킹 덕분이다. 영화 자체가 과거의 이야기를 끌어오는 형식이기 때문에 필름, 그것도 16mm 필름의 사용은 당시 분위기를 느끼게 해준다. 이보다 더 중요한 건 카메라 워킹인데, 유유히 모자를 지켜보는 듯한 누군가의 시선으로 진행한다.('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감독은 세상을 떠난 동현 아버지의 시선이라 가정하고 촬영했다 밝혔다.) 카메라의 움직임과 높이로 대상과 느낌을 표현하는 디테일까지 잘 살린다. 여기에 1.33:1 화면비율에서 1.85:1 화면비율로 변화를 주면서 환경에 따른 인물들의 심리도 잘 표현한다. 


영화 <라이스보이 슬립스> 스틸 ⓒ 판씨네마(주)


영화 제목처럼 배우들의 연기는 쌀밥과 같다. 화려하지 않지만 그 자체로서 담백한 연기가 주를 이룬다. 그 중심에는 무용가 출신의 최승윤이 있다. 홀로 타지에 나가 아들 하나 잘 키우기 위해 노력하는 당당한 엄마 소영의 모습은 그 자체로 흡입력 있게 다가오는데, 계속 씹으면 단맛이 나는 밥처럼 최승윤의 연기는 시간이 흐를수록 감정선이 깊어지고, 보는 이의 마음을 울린다. 특히 병원 장면이나 마지막 장면에서 느껴지는 처연함과 먹먹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영화의 중요 대사 중 하나는 바로 “집에 가자”다. 그들에게 집은 캐나다이지만, 내면의 집은 우리나라일 것이다. 캐나다인처럼 되고 싶었던 동현의 모습이 후반부에 가서 어떻게 변화하는지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그동안 마음의 고향을 잊거나 없었던 이 모자는 이제 언제든 돌아갈 곳이 생겼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떠오르는 붉은 태양이 이들의 앞날을 훤히 비출 것이다.




한줄평: 자신의 뿌리를 찾는 ‘라이스보이’의 여정!

평점 3.5 /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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