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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언어로 그려진
그 시절 아빠의 슬픔

영화 <애프터썬> 리뷰

by 또또비됴

딸의 서프라이즈 생일 축하를 받은 아버지는 기뻐하지 않는다. 그리고 홀로 호텔방 침대에 앉아 서럽게 운다. 어른이란 삶의 무게가 그렇게나 무거웠을까? 들썩이는 어깨에 위로의 손길을 내어주고 싶을 만큼 아버지의 뒷모습은 너무나 슬펐다. 근데 이 모습은 누구의 기억일까? 캠코더에 찍힌 것도 아니고, 딸이 몰래 본 장면도 아닌데. 그럼 그 시절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딸의 꿈이었을까?


애프터썬 1.jpeg 영화 <애프터썬> 스틸 /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11살 소피(프랭키 코리오)는 젊은 아빠 캘럼(폴 메스칼)과 함께 튀르키예 여행을 떠난다. 이혼 뒤 따로 사는 이들은 여름휴가 차 함께 여행을 온 것. 평범한 관광지 리조트에서 이들은 보통의 나날을 보낸다. 아침에 일어나 식사하고, 밥을 먹고, 수영하고, 때로는 도심지나 유적지로 관광을 떠나기도 한다. 특별한 것 없는 휴가 기간 소피는 캠코더로 이번 여행을 기록하고, 아빠는 그런 딸이 찍은 영상을 보며 깊은 생각에 잠긴다.


<애프터썬>은 파편화된 기억인지, 캠코더로 찍힌 영상인지, 아니면 소피의 꿈인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 시절 아빠의 나이가 되어 비로소 그를 이해하는 딸의 여정을 그린 작품이다. 아빠와 함께 비행기를 타고 리조트에서 휴가를 보내고, 헤어지는 서사 구조는 가지고 있지만, 그 연결성은 헐겁다. 대신 사진이나 짧은 영상처럼 머릿속에 각인된 장면들이 연거푸 이어지며, 기억의 조각들이 서로의 모양을 맞춰 나간다. 아귀가 딱 맞지 않지만, 그럴듯한 모양새를 이룬 기억은 이내 당시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는 거울이 되고, 이를 통해 어린 나이에 몰랐던 그의 슬픔과 힘듦을 비로소 이해한다. “내 나이 되면 다 이해할 거다”라는 부모님 세대의 말처럼.


애프터썬 3.jpeg 영화 <애프터썬> 스틸 /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이 영화가 특별한 건 그 이해의 과정이 대사가 아닌 영상 이미지로 전달된다는 점이다. <애프터썬>에서 빠져 있는 건 자세한 설명이다. 아빠의 직업은 고사하고 왜 우울하고 불안정한지 그 복잡한 심경을 설명하지 않는다. 소피처럼 그냥 유추할 뿐이다. 단서라 할 수 있는 건 매일 빼놓지 않고 태극권으로 마음을 단련한다는 것, 밤이면 술을 마시거나 바다로 뛰어든다는 것, 그리고 11번째 생일날 마음의 상처가 컸다는 것 등이다.


애프터썬 5.jpeg 영화 <애프터썬> 스틸 /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영화는 관객이 소피가 되어 아빠를 바라보게 만든다. 이런 이유로 앞서 소개한 아버지의 뒷모습은 누구의 시선일까 하는 의문을 넘어 그립고 가여운 당시의 아빠를 이해하게 한다. 당시 너무 어려서 몰랐던(알고 있었지만 내색하지 않았던) 아빠의 슬픔과 힘듦을 이제야 알아보고, 힘껏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후반부 어둠 속의 조명 사이로 비치는 아빠를 찾아 부등켜안은 성인 소피의 모습은 뭉클함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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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애프터썬> 스틸 /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영상 이미지를 최대한 활용하는 영화는 캠코더, TV 브라운관, 거울 등을 활용해 주인공들의 내외면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캠코더 영상 속에서는 즐겁고 밝은 모습이지만, 현실 밖에서는 파도처럼 밀려오는 감정 변화에 힘들어하는 모습이다. 겉으로는 행복한 얼굴이지만 TV 브라운관이나 거울에 비친 이들은 정반대의 모습을 하고 있다. 소피가 아빠에게 11살 추억을 길어올린 질문을 했을 때 이를 잘 나타낸다. 캠코더로 재미있게 놀면서 장난스럽게 물어본 질문이 유년 시절 아팠던 기억을 꺼낸 열쇠가 되었고, 이내 분위기는 급변한다. 캠코더 촬영은 중지되고, 아빠의 속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밖에도 수영장 수면 위와 수면 아래도 이런 방식을 차용하며 숨겨진 마음의 민낯을 들춘다.


애프터썬 4.jpeg 영화 <애프터썬> 스틸 /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결과적으로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스토리를 영상 언어로 보여줄 것을 선택한 샬롯 웰스 감독의 선택은 옳았다. 파편화된 기억을 명확한 서사 구조에 입혀 대중의 입맛에 맞는 이야기로 재탄생시키는 게 아닌, 그 기억을 영상으로 재현하고, 이를 흡입력 있게 편집한 결과물은 더 진한 감동을 전한다. 캠코더를 매개체로 어른 소피와 아빠의 만남과 이별에 더 큰 감흥이 밀려온다. 그래서 그런가. 영화가 끝난 후에도 쉬이 자리를 뜨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아버지를 떠올릴 것이다. 난 아버지의 슬픈 뒷모습을 본 적이 있을까? 아니면 봤음에도 내색하지 않고 끝내 기억의 창고에 넣어 놨을까?




평점: 4.0 / 5.0

한줄평: 그 시절 나의 아버지는 행복했을까?




영화 <애프터썬>은 넷플릭스, 티빙, 왓챠, 웨이브, 쿠팡플레이 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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