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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또비됴 Jun 26. 2023

플래시는
왜 아기보다 간식을 먼저 잡았을까?

영화 <플래시> 리뷰 

극 초반 ‘플래시’는 무너지는 병원에서 떨어지는 갓난 아기들을 구하기 위해 뛰어든다. 근데 웬걸, 낙하하는 아기 보다 먼저 잡은 건 자판기 안에 있던 간식(초코바였던 것 같다) 이었다. 아침도 못 먹고, 카페에서 주문한 먹거리도 늦어지는 상황에서 출동해야 했고, 스피드 포스를 사용하면 급 배고파지기 때문에, 이 같은 행동을 벌였던 것. 그 힘으로 아기들과 간호사 그리고 강아지까지 구했으니 일단 결과론적으로는 현명한 선택처럼 보인다. 


이처럼 이 장면은 ‘플래시’란 캐릭터를 명료하게 보여주는 것뿐만 아니라 그동안 다소 무거웠던 DC 캐릭터 영화의 분위기를 유머스럽게 바꾸는 중요한 장치로 활용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이 선택이 낳은 결과가 그에게 얼마나 무섭고 참혹한 것인지 새삼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빠른 스피드로 배 먼저 채운 게 그렇게 잘못된 일인가라고 되물을 수 있지만, 상실감으로 채워진 내면의 소유자 플래시이기에 그 여파가 크게 작용된다.  


영화 <플래시> 스틸 /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제공


플래시(에즈라 밀러)는 아침부터 배고픔을 참아가며 위기에 빠진 시민들을 구할 정도로 바쁘다. 하지만 배트맨, 원더우먼, 아쿠아맨 등이 바쁠 때 필요한 땜방 히어로라는 점에 매번 못마땅해한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의 죽음에 연관된 내면의 슬픔이 사무쳐 올라와 미친 듯이 달린 그는 시간을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자신의 멘토인 배트맨(벤 애플렉)에게 이 사실을 알리는 플래시는 엄마의 죽음을 막고 싶다 말하지만 돌아오는 건 하지 말라는 경고. 이를 무시한 플래시는 과거를 바꾸는데, 그 일로 멀티버스에 균열이 생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정체 모를 누군가의 공격을 받은 그는 이름 모를 세상에 불시착하게 되고, 그곳에서 평화롭게 살아가는 자신을 만난다. 그리고 지구를 침략하는 조드(마이클 섀넌) 장군도, 또 다른 버전의 배트맨(마이클 키튼)도 조우한다.  


영화 <플래시> 스틸 /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제공


<플래시>는 빛보다 빠른 이 히어로가 왜 이렇게 배고프고 공허한 삶을 사는지에 대한 이야기와 더불어 이를 진정으로 채우기 위한 그만의 여정과 노력을 담는다. 플래시는 육체적으로 배고프고, 정신적으로 공허하다. 특히 유년 시절 엄마의 죽음, 아내의 살인 혐의로 복역 중인 아버지의 현실에 괴로워하며 정신적으로 피폐한 삶을 산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를 바꿀 수 있는 기회는 정신적 공허함을 채울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인 셈. 하지만 배트맨의 경고처럼 과거를 변경했을 때 생기는 무수한 문제를 간과한 그는 뒤늦게 개인적인 욕심이 화를 불러 일으킨 것에 후회한다. 아기가 처한 위험보다 자신의 빈 속을 달래는 개인적인 일이 우선인 그에게 어쩌면 이 일은 예정된 수순 같은 것. 플래시는 뒤늦게 대의를 위한 봉합에 열을 올리고, 그 과정에서 상실에 대처하는 방법을 깨닫고 한 단계 성장하기에 이른다. 


영화 <플래시> 스틸 /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제공


그 성장 밑바탕은 과거의 슬픔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 명료하면서도 가장 어려운 교훈은 멀티버스 설정을 통해 이야기된다. <플래시>에서의 멀티버스는 단순히 다채로운 액션을 구사할 수 있는 환경이거나 다양하고 반가운 인물들을 초대하는 기능으로만 쓰이지 않는다. 자신과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만나는 연결고리인 동시에, 과거에 얽매였을 때 생기는 악영향을 직접적으로 마주하는 기회의 장으로 사용한다. 


배트맨, 슈퍼걸(샤샤 카예) 등 새로운 멀티버스 세상에서 만난 이들의 공통점은 상실감을 안고 사는 이들이다. 대표적인 인물은 바로 배트맨. 플래시와 마찬가지로 부모의 죽음 때문에 생긴 상실감으로 히어로의 삶을 계속 살아간다. 세상을 위한 일이었지만, 어느덧 노년이 되었고, 그에게 남은 건 명예로운 삶이 아닌 피폐한 삶이다. 오랜 시간 동안 그 아픔을 떨쳐내고 싶었지만, 끝내 그러지 못한 것. 슈퍼걸도 조드 장군에 의해 죽음을 당한 슈퍼맨(칼 엘)의 상실감에 고통을 받는 인물로 그려진다. 


영화 <플래시> 스틸 /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제공


흥미로운 건 불시착한 세상에서 만난 또 다른 플래시다. 불시착한 세상에서의 자기 자신은 부모 모두 살아있고, 평화로운 삶을 사는 인물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플래시를 만나 스피드 포스가 생기고, 세상을 구해야 하는 임무를 맡으면서 서서히 변해간다. 그리고 그 끝에 상실감을 맞이하게 한다. 시간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결국 그 상실감을 채우지 못하는 모습은 플래시의 모습과 일치하고, 그때야 이 일이 부질없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무한한 힘을 가진 영웅은 개인이 아닌 대의가 먼저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책임감 또한 느끼게 된다. 


과거에는 참신했지만 이제는 퇴색된 멀티버스를 내면의 성장 동력을 사용한 안드레스 무시에티 감독은 전작인 <그것>처럼, 유년 시절 가진 아픔을 딛고 일어서며, 끝내 봉합하는 또 한 명의 주인공을 탄생시켰다. 왜 이 영화에 메가폰을 안드레스 무시에티에가 맡겼는지 그 이유도 알 수 있다. 


영화 <플래시> 스틸 /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제공


플래시의 내적 성장에 치우쳐 여느 DC 캐릭터 영화들처럼 엄마만 찾아대는 건 아니다. 멀티버스를 변주한 환경 안에 스피드 포스를 통한 액션 쾌감, 상실감에 힘들어하는 여타 히어로들, 마이클 키튼 외 히든카드의 등장, 마지막 감정을 끌어올리는 엄마와의 이야기를 통해 재미있고, 신나고, 감동적인 영화가 탄생한다. DC 영화 중 이렇게 재미있게 본 영화가 또 있을까? 


이는 새롭게 총지휘를 맡은 제임스 건의 영향력 덕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좋은 식재료가 있음에도 파리만 날리는 식당에 사장과 주방장이 바뀐 후 손님으로 북적이는 것 같은 변화라고나 할까. 앞으로 제임스 건이 펼치는 DC 확장 유니버스가 기대된다. 


영화 <플래시> 스틸 /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제공


멀티버스 여행을 끝낸 플래시는 간식 보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먼저 구할 거다. 더이상 내면의 허기짐이 없으니 개인 보단 더 많은 사람들을 도와주는 시간을 할애할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은 성장한다. 그리고 히어로도, 플래시도 성장한다. 이번 영화를 통해 플래시와 DC의 성장을 목격했다. 부디 이들의 발전이 ‘번개’처럼 지나가지 않고 오랫동안 쾌속 질주를 했으면 한다.  




평점: 3.5 / 5.0

한줄평: DC도 변할 수 있다는 믿음과 쾌감의 섬광! 




(위 글은 ’헤드라잇’에 쓴 글을 재편집한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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