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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또비됴 Jul 09. 2023

내게는 여름 하면 떠오르는 일본 영화가 생겼다!

영화 <1986 그 여름, 그리고 고등어통조림> 리뷰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바닷마을 다이어리>, 이누도 잇신의 <메종 드 히미코>, 키타노 다케시의 <기쿠지로의 여름>. 세 편의 일본 영화는 여름이 오면 챙겨보는 작품이다. 모두 다 다른 장르에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불꽃놀이처럼 환하게 빛나다 이내 아스라이 사라져 버리는 여름을 너무나 잘 담은 영화다. 그리고 올해 한 편이 더 늘어났다. 여름의 선물과도 같은 즐거운 순간과 추억을 오롯이 담긴 <1986 그 여름, 그리고 고등어통조림>이 바로 그 주인공. 작열하는 태양 아래 덥고 힘들어도 마냥 즐거웠던 유년 시절 여름날의 추억은 그 자체로 매력이 넘친다.


▲ 영화 <1986 그 여름, 그리고 고등어통조림> 스 / 얼리버드 픽쳐스 제공


이혼남에 대필작가로 전전하며 살아가는 히사(쿠사나기 쓰요시)는 꿈이 하나 있다. 언젠간 자신만의 이야기를 써서 진정한 작가가 되는 것.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눈에 고등어 통조림이 들어오고, 유년 시절의 추억 하나를 떠올린다. 때는 1986년 여름, 초등학생이었던 히사(반카 이치로)는 매번 같은 옷만 입고 다니는 독특한 친구 타케(하라다 고노스케)와 같은 반이다. 여름방학이 시작되고, 심심하던 히사에게 타케가 찾아온다. 별로 친한 친구가 아니기에 타케의 방문에 놀란 히사는 뜻밖의 제안을 받는다. 돌고래를 보러 부메랑 섬에 가자는 것. 엉겁결에 이 제안을 수락한 히사는 타케는 평생 잊지 못할 여름날의 추억을 갖는다.



내게는 고등어 통조림을 보면 떠오르는 한 아이가 있다. 아무리 나이가 든다 해도 그 여름을 잊지는 못할 것이다.



<1986 그 여름, 그리고 고등어통조림>에 가득 담긴 건, 아무런 걱정 없이 마냥 행복했던 여름날의 추억이다. 삶의 무게가 어깨를 짓누르고, 어두운 터널 속을 걷는 어른 히사의 삶과 고등어 통조림을 보고 떠오른 소년 히사의 삶은 정반대다. 걱정이라곤 무료한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좋아하는 캐릭터 인형을 잘 뽑을 수 있을지, 사이토 유키를 향한 애정을 어떻게 표현할지, 어떻게 하면 엄마의 매운 손맛을 보지 않을지 등등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의 반 타의 반이었지만 타케와의 여행은 평범한 일상 속 특별한 추억으로 남는다.


▲ 영화 <1986 그 여름, 그리고 고등어통조림> 스틸 / 얼리버드 픽쳐스 제공


여느 로드무비가 그렇듯 여정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일들이 재미를 선사하는데, 이 작품도 마찬가지다. 자전거 하나로 산 건너 바다 건너(실제로 그렇게 간다) 부메랑 섬에 가는 이들의 좌충우돌 여정은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옆동네 구멍가게 주인과의 기 싸움, 불량배들과의 한판 대결, 우연히 만난 고딩 누나와의 추억 등 다채로운 여행담은 그들이 찾는 돌고래보다 더 의미 있는 추억을 안긴다.  


예상했겠지만 이들의 여정 끝에는 돌고래가 없다. 대신 힘듦을 함께한 소년들의 우정이 있다. 그 누구도 얻을 수 없는 소중한 둘만의 추억은 이들의 관계를 두텁게 하고 한 단계 성장하게 하는 자양분이 된다. 특히 아버지의 부재로 일하는 엄마 대신 동생들을 돌봐야 하는 어린 가장 타케의 어른스러운 모습에 히사는 그간의 오해를 풀고, 진정 친구를 위하는 마음을 갖는다.


▲ 영화 <1986 그 여름, 그리고 고등어통조림> 스틸 / 얼리버드 픽쳐스 제공


계절의 변화는 이들의 관계 변화에 영향을 주는데, 영원히 함께할 것만 같은 이들에게 작은 오해가 생기고 이내 멀어진다. 이 장면에서 어린 시절 아무것도 아닌 것에 감정이 상하고, 친구와 소원해졌던 경험을 떠올리게 된다. 자신의 어린 시절을 반추해 이 작품을 만든 감독은 그 나이 또래의 소년들이 가질만한 미묘한 감정선을 디테일하게 잡으면서 순수했던 그 시절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는 당시 시골 마을의 풍경, 구멍가게, 음악, 장난감 등 여러 공간과 소품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그 시절 추억 속으로 데려간다. 그중에서도 가장 임팩트 있는 활용법은 음식. 제목이기도 한 고등어 통조림이다. 극 중 히사가 초밥을 좋아하는 걸 안 타케는 고등어 통조림으로 초밥을 만들어 준다. 가난하지만 친구를 위해 만든 이 고등어 초밥이 주는 감동은 대단하다.


▲ 영화 <1986 그 여름, 그리고 고등어통조림> 스틸 / 얼리버드 픽쳐스 제공


비리고 맛이 없을 수도 있었지만, 자신을 위해 만들어 준 친구를 향한 고마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터. 히사는 답례로 음식 만드는 걸 좋아하는 타케에게 요리사의 꿈을 꼭 이뤘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긴다. 그 시절 먹었던 음식으로 추억의 순간을 데려가듯 영화는 음식으로 감동을 전하고 후반부에 가서는 눈물까지 흘리게 한다. (극 중 귤도 등장하는데, 이 과일도 끝내 눈물을 흘리게 만든다.)


▲ 영화 <1986 그 여름, 그리고 고등어통조림> 스틸 / 얼리버드 픽쳐스 제공


이 영화가 다루는 소재와 형식이 신선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1986년 어느 시골 마을의 두 소년 이야기는 우리를 웃고 울린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었던 이야기처럼 영화의 보편적인 재미와 감동은 잊고 지냈던 유년 시절을 기억하게 하고, 가슴을 찡하게 만든다. 고등어 통조림을 보면 떠오르는 아이가 있다는 어른 히사의 말처럼, 나 또한 여름이 되면 떠오르는 영화 한 편이 생겼다. 여름의 중턱을 넘어가는 시기, 순수했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이 영화를 감상하길 바란다.




평점: 3.5 /5.0

한줄평: 매해 여름마다 찾아올 것 같은 소년들의 여름날!




(이 리뷰는 ’헤드라잇’에 쓴 글을 재편집한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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