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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또비됴 Aug 26. 2023

영웅도 막지 못하는 나락의 후폭풍

영화 <오펜하이머> 리뷰  

10, 9, 8, 7, 6, 5, 4, 3, 2, 1 BOOM~~~ 그토록 기다렸던 폭파가 이뤄지고, 버섯 불기둥이 피어오른다. 멀리서 이를 지켜보는 과학자들의 흥분된 얼굴, 그리고 고글을 쓰고 이 광경을 지켜보는 오펜하이머의 알 수 없는 표정, 그리고 이어 찾아오는 폭발음과 후폭풍! <오펜하이머>가 지닌 볼거리와 감정의 최고점은 분명 원자 폭탄 실험인 ‘트리니티 테스트’다. 하지만 오펜하이머의 표정처럼 영화는 성공의 쾌감에 젖는 것을 거부한다. 대신 불가항력적으로 밀려오는 폭파 후폭풍처럼, 위대한 과학자이자 영웅이라도 막지 못하는 나락의 후폭풍에 집중한다. 


원자폭탄의 아버지라 불린 사나이 오펜하이머(킬리언 머피). 이 수식어의 출발점은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42년이다. 당시 미 육군 대령 레슬리 그로브스(맷 데이먼)는 오펜하이머에게 핵무기 개발을 목적으로 한 맨하튼 프로젝트 연구책임자를 맡아달라고 한다. 이 제안을 수락한 그는 독일 보다 빠르게 원자폭탄을 만들기 위해 ‘로스앨러모스 연구소’를 설립, 각 분야 최고의 과학자들을 데려와 함께 연구를 시작한다. 그리고 우리가 아는 그대로 프로젝트는 성공한다. 이후 미국의 영웅이 된 오펜하이머. 하지만 그 눔의 이데올로기가 불러온 매카시즘 광풍은 주변에 공산주의자들이 많았던 그를 빗겨나가지 않는다. 더불어 원자력 위원회 창립위원인 루이스 스트로스(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그를 나락의 길로 인도한다. 



| 놀란이 놀란한 영화! 

▲ 영화 <오펜하이머> 스틸 / 유니버셜 픽쳐스 제공


<오펜하이머>를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놀란이 놀란한 영화’다. 양자역학 등 지구과학 시간을 옮겨 놓은 듯한 이야기가 가득하고, 천재 과학자들이 바통을 이어받으며 계속 등장하며, 시간과 플롯은 뒤엉켜 있다. 게다가 환희의 순간보다 나락과 좌절, 고통의 순간이 더 긴 이 작품의 러닝타임은 무려 3시간. 일반인들에게는 낯선 소재, 물리적 시간이 주는 압박감 등 성공보단 실패의 변수가 쫙 깔려 있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길다거나 어렵거나, 지루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왜? 놀란 감독이 만들었으니까. 


생각해보면 놀란 감독의 영화는 관객 친화적 작품은 아니다. <메멘토> <프레스티지> <인셉션> <인터스텔라> <덩케르크> <테넷> 등 한없이 복잡하고 생경한 미로를 만들고 관객에게 입장하라는 영화가 많았다. 물론, 그동안 우리는 속는 셈 치고 그 입장을 즐겼지만 말이다. 더불어 한 템포 쉬어 가는 에피소드는 거의 부재하고, 철학서나 과학전문서적처럼 수많은 인물과 이야기가 빼곡히 들어가 있는 구성은 머리를 아프게 했지만, 다른 의미로 한 눈 팔지 못하게 하는 잠금장치 역할을 톡톡히 했다. 


▲ 영화 <오펜하이머> 스틸 / 유니버셜 픽쳐스 제공


인간은 학습의 동물이니 놀란 감독의 영화를 계속 봐 왔던 관객들에게 이 진입장벽은 반가운 미션이자, 다른 의미의 길티 플레저와 같을 터. 마치 감독 자신이 연출을 즐기듯 <오펜하이머>는 그동안 켜켜이 쌓아 올린 영화 속 요소들(양자역학, 뒤엉킨 플롯 등)이 고도화되며, 기존 전기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실존 인물의 입체화를 견고하게 가져간다. 특히 트리니티 테스트 이후 나락의 길을 가는 그의 모습에서 입체적인 면모는 더 강해진다. 



| 핵분열 과정을 통해 본 인간 오펜하이머 

▲ 영화 <오펜하이머> 스틸 / 유니버셜 픽쳐스 제공


<오펜하이머>는 마치 우라늄에 중성자가 들어가 쪼개지며 연쇄반응을 일으키는 핵분열의 과정이 스토리에 얹혀져 있는 모양새다. 서로 다른 요소가 부딪히면서 생기는 파장은 그 자체로 흥미롭고도 큰 에너지를 발산한다.

 

감독은 상반된 요소 즉, 오펜하이머의 명과 암을 그리는 것은 물론, 인물에 따라 화면비율이 달라지고, 컬러와 흑백으로 표현된다.(오펜하이머의 시선은 컬러, 스트로스의 시선은 흑백으로 표현된다.) 여기에 컬러 스토리는 핵분열, 흑백 스토리는 핵융합이란 부제를 단다. 이뿐만이 아니다. 교차편집을 통해 두 청문회 장면을 번갈아 보여준다.(진행된 연도가 다름에도 마치 동일한 시간에 진행된 것처럼 보인다.) 각각의 장면에 나온 오펜하이머와 스트로스, 그리고 주변 과학자들의 모습도 사뭇 다르게 표현된다. 특히 오펜하이머와 스트로스는 아마데우스와 살리에르의 관계처럼 표현되며, 이는 후반부 극적 긴장감을 불러 일으키는 중요 요소로 활용된다. 


▲ 영화 <오펜하이머> 스틸 / 유니버셜 픽쳐스 제공


이런 구조를 통해 영화가 집중하는 것 중 하나는 원자폭탄 성공 이후 추락하는 오펜하이머의 삶이다. 원자폭탄을 만든 건 오펜하이머지만,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뜨린 건 미국 대통령이다. 핵 대립, 수소폭탄 개발, 매카시즘 광풍에 따른 추락 등도 그가 직접 자행한 건 아니지만, 그에게서 촉발된 연쇄 반응인 것. 의도했던, 하지 않았던 간에 자신이 만든 폭탄으로 많은 이들이 숨졌고, 세월이 지나 국가별 핵 전쟁 위험에 노출된 상황은 그에게 더 큰 죄책감을 안긴다. 트리니티 테스트를 성공한 뒤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도다”라는 그의 말처럼 되어가는 것처럼 말이다. 공식적으로 무고하게 숨진 이들을 위한 미안함과 죄책감을 표현하지 않았지만, 영화는 오펜하이머도 인간이라는 점에서 죄의식으로 점점 파편화 되어가는 심리를 집요하게 쫓아간다.  


성공보단 추락을 통해 명확해지는 건 오펜하이머라는 인간이다. 마치 영화는 연구 실험을 하듯 보이는 외면과 보이지 않았던 내면에 모두 몰두한다. 대학시절 정신분열증을 앓았고, 공산주의를 지지한 가족 및 친구들과 가깝게 지냈으며, 내연녀 진 태드록(플로렌스 퓨)과의 관계, 협업하는 과학자들과의 이견과 대립, 그리고 원자폭탄 성공 이후 얻게 된 명성과 추락 등 그를 다층적으로 볼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다. 


▲ 영화 <오펜하이머> 스틸 / 유니버셜 픽쳐스 제공


특히 1954년 오펜하이머의 비공개 청문회에서 밝혀지는 이야기들은 위대한 영웅 뒤 감춰진 그의 본 모습, 내적 분열을 일으킬 수 있는 어두운 모습 등이 공개되며, 그 또한 평범한 인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물론, 이 청문회가 그가 가진 권력과 힘을 없애고 높은 자리에서 끌어내리고자 만든 것이기는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그가 추락할수록 인간으로서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더 넓어진다. 


180분이란 긴 시간 동안 이 여정을 따라갈 수 있는 요소 중 하나는 바로 킬리언 머피다. 종전을 이끈 영웅이자 결함 많은 인간, 창조자이자 파괴자인 오펜하이머를 연기한 킬리언 머피는 다층적인 이 인물을 대사보단 표정으로 임팩트 있게 보여준다. 극중 최대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냉소적인 인물의 특징을 가져가되, 미세한 표정 연기로 수많은 감정을 보일 듯 안 보일 듯 드러낸다. 이 부분을 극대화하기 위해 아이맥스 필름을 활용한 것처럼 화면에 꽉 찬 킬리언 머피의 표정은 영화를 끌고가는 동력이자, 인간 오펜하이머를 이해하는 교두보 역할을 한다. 이 밖에도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에밀리 블런트, 맷 데이먼, 플로렌스 퓨, 게리 올드만, 라미 말렉, 케이시 애플렉 등 조연, 카메오로 등장하는 배우들은 주연 못지 않은 임팩트를 안긴다. 

 


| 지금 <오펜하이머>가 시사하는 것

▲ 영화 <오펜하이머> 스틸 / 유니버셜 픽쳐스 제공


<오펜하이머>가 평단과 관객에게 큰 사랑을 받는 건 오펜하이머를 향한 호기심, 거장의 반열에 올라가고 있는 놀란 감독의 빼어난 연출력과 킬리언 머피 이하 배우들의 호연, 호이트 반 호이테마 촬영감독의 탁월한 영상, 러드윅 고랜슨의 긴장감 넘치는 스코어 등등 다수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시의적 측면을 빼놓을 수 없다. 


최근 방송된 tvN 예능 <알쓸별잡>에서 놀란 감독과 대화를 나눈 유현준 교수는 전체 시스템이 강해지고 그에 반해 개인의 힘이 약해진다고 느끼는 세상이라며, 자신만의 스타일과 철학을 밀고 나가는 놀란 감독에게 창작자로서 응원하게 된다고 말한 바 있다. 


유교수가 말한 것처럼 작금의 시대는 기술의 발전에 의해 효율성에 입각한 시스템 강화가 중요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개인 고유의 힘과 특성이 점점 배제되어 가고 있다. 21새기임에도 과거처럼 개인의 의견과 행동이 보다 쉽게 묵살될 수 있다는 것! 이런 상황에서 역사에 길이 남을(긍정적인 부분과 부정적인 부분 모두) 업적을 남긴 오펜하이머란 개인이 막강한 국가와 정치 세력 시스템에 의해 추락하는 과정은 남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아마도 비밀 청문회가 이어지면서 오펜하이머에게 감정적으로 이입되는 건 이 때문일 것이다. 


▲ 영화 <오펜하이머> 스틸 / 유니버셜 픽쳐스 제공


그래서일까. 그에게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라는 닉네임은 너무나 잘 어울린다. 제우스의 불을 훔쳐내 인간에게 준 대가로 매일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는 형벌을 받은 프로메테우스처럼, 그 또한 미국에 원자폭탄을 만든 대가로 평생 죄책감에 시달리고, 본인의 의지가 아닌 남들의 힘으로 추락한다. 신이 아닌 인간이기에 그리고 국가와 정치 시스템에 이용만 당하는 과학자이자 한 개인이기에 오펜하이머는 그렇게 살아간다. 


극 중 오펜하이머는 승산 없는 비밀 청문회에 굳이 참석하는 이유를 끝내 밝히지 않는다. 그게 죄책감 때문인지, 다른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원자폭탄의 연쇄반응이 자신에게 어떻게 돌아오는지 직접 체험하고 싶어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마지막 장면을 보고 그 생각이 굳혀졌다.) 그 또한 내 이론과 가설을 통한 결과물이라는 것처럼 말이다. 끝내 키티는 침대보를 걷지 못했고, 오펜하이머의 추락은 계속되었다. 하지만 지금 전 세계적으로 흥행중인 영화의 영향력을 느낀다면 오펜하이머가 직접 침대보를 걷을 것 같다. 혹시 모른다. 영화의 흥행 또한 그의 이론과 가설을 통해 예측한 마지막 연쇄반응 중 하나였을지도. 



평점: 4.5 / 5.0

한줄평: 오펜하이머라는 특별한 우주를 탐험하다! 



(이 리뷰는 ’헤드라잇’에 쓴 글을 재편집한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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