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또또비됴 Jul 28. 2023

잘 봐~
세상과 맞서는 언니들 싸움이다!

영화 <밀수> 리뷰    

일단 재미있다. <밀수>는 그 완성도를 떠나 류승완 표 호쾌하고도 유쾌한 소동극은 아드레날린을 분출시키기 충분하다. 그 재미 요소는 많지만, 그중 가장 큰 활력은 거친 파도와 같은 세상과 맞서 항해를 떠나는 여성들에 있다. 춘자(김혜수)와 진숙(염정아)을 포함한 해녀들, 그리고 신 종로다방의 옥분(고민시)을 태운 <밀수>는 야심 차게 출항한다. 이게 다냐고? 출항 뱃고동 소리와 함께 (김)추자도, (박)경희도, 진주자매(펄시스터즈)도 멋진 가락을 들려주며 함께 한다.



| 생명력 강한 여성 버디무비!

영화 <밀수> 스틸 / NEW 제공


때는 바야흐로 1970년대 중반, 군천 지역 앞바다가 삶의 터전인 해녀들은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근처 화학공장이 들어선 이후 바다가 오염되어 물질을 해도 돈 되는 해산물을 얻기가 하늘에 별 따기다. 춘자, 진숙이 이끄는 해녀팀은 굶어 죽기보단 바다에 던져진 밀수품을 건져내 돈을 벌기로 결심하고, 부를 축적한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세관 계장 장춘(김종수)이 밀수 현장을 급습한다. 진숙은 붙잡히고, 그의 가족은 목숨을 잃는다. 소란스러운 상황을 틈타 춘자는 몰래 빠져나간다. 2년 후, 춘자는 전국 밀수왕 권 상사(조인성)과 함께 밀수판을 더 크게 만들기 위해 군천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교도소에 다녀온 뒤 춘자를 향한 미움이 가득한 진숙, 막내에서 해운(밀수) 사업가가 된 장도리(박정민), 다방 막내에서 사장이 된 옥분(고민시)이는 한몫 잡기 위해 개인감정은 접어두고 춘자가 펼쳐놓은 밀수판에 뛰어든다.


<밀수>의 주인공은 생명력이 강한 여성들이다. 극 중 초반만 봐도 물질 준비 후, 바닷속으로 들어가 해산물을 캐내는 모습, 이내 수면위로 올라와 숨비소리(해녀가 잠수했다가 물에 떠오를 때 숨을 내뱉는 소리)를 하는 모습 등은 거센 풍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 생명력을 이어 나가는 이들의 모습을 주목하게 한다.


영화 <밀수> 스틸 / NEW 제공


그 중심에는 춘자와 진숙이가 있다. 요즘 아이돌 그룹으로 치자면 춘자는 팀을 대표하는 센터고, 진숙은 팀의 중심을 잡는 리더다.(농구로 치자면 춘자는 마이클 조던이고, 진숙은 칼 말론인 셈.) 상반된 스타일의 이 둘은 우정과 의리로 뭉친 친구로 나온다. 이들의 캐릭터를 확실하게 알려주기 위해 류승완 감독은 앞서 소개한 초반 물질 장면으로 표현한다. 진숙은 동료 해녀들을 챙기며 일사불란하게 일을 진행하고, 춘자는 홀로 화려한 테크닉을 보여주며 일을 진행한다. 모두가 배를 탄 순간에도 춘자는 홀로 물질을 계속하는 것만 봐도 예사롭지 않다.


여성 버디무비 형식을 가져온 영화는 초반부터 서로 다른 성향과 성격을 대비시키고, 오해로 적이 되었다가도, 이내 재결합해 우정과 의리로 배신 가득한 세상에 맞서는 여정을 따라간다. 이런 부분에서 류승완 감독의 전작 <피도 눈물도 없이> <짝패> 등이 떠오르는 건 당연하다. 마치 전작의 콘셉트를 반반 섞어 놓은 것 같은 두 여성은 류승완 표 캐릭터의 명맥을 이어 나가면서 해양 활극의 동력이 된다.



| 김혜수, 염정아 투 톱의 매력 그리고 고민시


영화 <밀수> 스틸 / NEW 제공


춘자와 진숙이 전하는 매력적인 미끼를 물었다면 그건 김혜수, 염정아의 멋진 연기 덕분일 것이다. 물과 기름처럼 서로 다른 연기 톤을 보여주며 절묘한 합을 이루는 이들의 연기는 관객을 바다 한 가운데로 끌고와 오도가도 못하게 만들어 결국 항복하게 만든다.


춘자를 연기한 김혜수는 과장된 제스처와 보이스톤을 유지하고, 절대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다. 어떤 패든 일단 구라부터 나가는 승부사로, 그녀의 말발에 권 상사, 장도리 등이 넘어간다. 물론, 진실한 마음을 드러낼 때가 있다. 오해로 멀어지고 자신을 의심하는 진숙이와 단 둘이 다방에서 대화를 나눌 때인데, 이 장면에서 김혜수의 대단한 완급조절과 깊이 있는 연기를 확인할 수 있다. 역시 ‘(1970년대를 기준 삼아) 담배는 청자, 노래는 (김)추자, 그리고 구라는 춘자’라 할 정도로 김혜수가 해석한 춘자는 그 매력이 다분하다.


영화 <밀수> 스틸 / NEW 제공


염정아의 진숙은 춘자와 반대로 붕 떠있지 않다. 현실 밀착형 캐릭터로 가족과 동료를 먼저 챙기는 의리형 리더다. 아픈 가족사, 친구의 배신 등 어려움을 이겨내고 끝내 여성의 연대를 통해 승리를 거머쥐는데, 염정아가 그리는 현실적인 면모와 끝내 자신이 생각한 것을 이루고 마는 당찬 모습은 그 자체로 당위성을 갖는다. 특히 배신이 난무하는 현실에서 어떤 것을 믿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 놓인 진숙이 최헌의 ‘앵두’를 부르는 장면은 염정아의 구슬프고도 담담한 연기가 빛을 발한다.


영화 <밀수> 스틸 / NEW 제공


여기에 옥분 역을 맡은 고민시의 개성 만점 연기도 한몫한다. 마치 두 선수에게 멋진 찬스를 만들어 주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고민시는 슛 보단 패스에 중점을 둔다. 농구로 치면 가드 역할이라고나 할까. 간간히 3점 슛을 날리는 듯 코믹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이내 본 역할에 집중하며, 극의 활력을 불어넣는다.


영화 <밀수> 스틸 / NEW 제공


이밖에도 조인성, 박정민, 김종수의 연기는 각각의 캐릭터와 영화를 빛나게 한다. 하이스트 장르로서 가장 필요한 캐릭터 구축에 힘을 싣는다. 이는 결과적으로 여성 서사를 올리기 위한 발판으로 사용되는데, 그 도약지점이 잘 만들어지며 영화의 맛을 살린다.  



| 수직 액션과 1970년대 여성 보컬의 힘!

영화 <밀수> IMAX 포스터 / NEW 제공


<밀수>는 후반부 수중 액션 시퀀스에 많은 공을 들였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극 중 여성들이 지향하는 수직 액션을 강조하기 딱 좋은 공간이 바로 바다(수중)이기 때문이다. 류승완 감독은 여성 캐릭터에겐 ‘수직 액션’을 남성 캐릭터에겐 ‘수평 액션’을 부여하며 차별성을 준다. 호텔방과 복도에서 벌어지는 권 상사와 장도리 일당의 패싸움 장면만 보더라도 이를 잘 알 수 있다.


이처럼 수평 액션이 난무하는 육지에서 여성들은 남성들을 이길 수 없다. 하지만 수직 액션 등 움직임이 더 자유로운 바다에서는 우위를 점할 수 있다. 이런 장점이 녹아든 후반부 수중 액션 장면은 다양한 앵글로 빚어지는 쾌감과 시원한 물 풍경 등 보는 맛을 더한다. 더불어 전반부와 달리 후반부 여성과 남성의 시선 차이(누가 배 위에 있고, 누가 바다에 있는지)도 달라지는 등 성 역할 전복의 쾌감도 꽤 크다.  


영화 <밀수> 스틸 / NEW 제공


여성 영화 관점에서 이번 OST는 유독 1970년대 멋진 노래를 남긴 여성 보컬의 향연이 기억에 남는다. <밀수>의 또 다른 주인공인 1970년대 음악은 관객을 그 시대 분위기로 데려가는 역할은 물론, 가난에 시달리고, 차별에 아파하지만 어떻게든 다시 일어서는 극 중 여성들에게 응원가로 사용된다. 특히 김추자의 ‘무인도’, 박경희의 ‘머무는 곳 그 어딜지 몰라도’, 펄시스터즈의 ‘남아’ 등 생명력 강한 해녀들에게 힘을 보탠다.



올여름 개봉하는 한국 텐트폴 영화 4편 중 그 포문을 여는 <밀수>의 스타트는 좋다. 여름 시장에서 한몫 단단히 잡기 위해 너무 많은 걸 담으려다 중요한 물건을 놓치는 부분도 있지만 관객을 향한 거침없는 항해에는 큰 무리가 없다. 여름 시장에서 여성 투톱 주연 영화를 본다는 것만으로, 설레지 않는가. 상상으로 스크린에 구현된 여성들이지만, 왠지 그 시대에 있었을 법한 이들의 생명력은 찐이다. <밀수>는 흥행을 거두기 위해 멋진 그물을 던졌다. 만선을 꿈꾸며, 오라이~~~




평점: 3.5 /5.0

한줄평: 잘 봐! 세상과 맞서는 언니들 싸움이다!




(이 리뷰는 ’헤드라잇’에 쓴 글을 재편집한 콘텐츠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에단 헌트가 찾는 열쇠는 왜 십자가 모양일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