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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또비됴 Nov 01. 2023

거짓말쟁이 노감독의 진실된 회고록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리뷰

미야자키 하야오는 일본 최고의 애니메이션 감독이자 스튜디오 지브리의 수장, 애니메이션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감독에게 영향을 끼친 거장 중의 거장, 그리고 거짓말쟁이다. 은퇴 번복을 밥 먹듯이 하니 ‘거짓말쟁이’라는 수식어는 언제나 따라붙는다.(스튜디오 지브리의 제작자 스즈키 토시오도 인터뷰를 통해 미야자키 하야오가 거짓말쟁이라고 인정한 바 있다.) 그런 그가 <바람이 분다> 이후 10년 만에 들고 온 신작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진실한 모습을 보여준다. 마치 이 영화만은 있는 그대로 자신을 보여주고 싶은 것처럼.


화재로 어머니를 잃은 11살 소년 마히토(산토키 소마)는 아버지를 따라 죽은 어머니의 고향으로 내려간다. 그곳에서 엄마의 여동생이자 새엄마가 될 나츠코(기무라 요시노)를 만나 앞으로 살게 될 큰 저택으로 향한다. 낯선 이들을 만나고 낯선 공간에 적응할 때쯤 정체불명의 왜가리(스다 마사키)가 마히토 앞에 나타난다. 그리고 자신을 기다렸다는 말을 남긴 후, 집 근처 정체불명의 탑으로 날아간다. 저택에서 일하는 일곱 할머니는 그 탑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러던 어느 날, 나츠코가 소리소문없이 사라진다. 마히토는 왜가리와 비밀의 탑이 실종 사건과 연관되어 있음을 간파한다. 그리고 자신이 만든 활과 화살을 갖고 왜가리를 만난 그는 시공간을 초월한 탑 안으로 들어간다.  


| <파벨만스>가 떠오르는 이유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스틸컷 / 사진제공 대원미디어(주)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며, 한 인간으로서 그리고 애니메이터로서의 인생을 담은 작품이다. 감독은 주인공 마히토를 통해 그의 가족사는 물론, 전쟁으로 인한 상흔과 죄책감, 고통과 고뇌로 점철된 애니메이터로서의 삶, 그 과정에서 만난 스승과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빼곡히 그리고 유려하게 집어넣는다. 10년 만에 내놓은 이 작품에서 자기 삶과 작품을 정리하듯,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그의 영화인 동시에 그 자신처럼 보인다.


마히토의 여정을 본 관객이라면 올해 초 개봉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파벨만스>가 떠오를 것이다. 영화에 자신의 개인사를 녹여냈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영화에 매료된 유년 시절부터 부모의 이혼, 유대인이기에 받았던 차별, 영화로 구원받은 삶, 그리고 영화판에 뛰어다니는 순간까지 자신의 개인사와 영화를 향한 애정을 내보인다. 영화를 통해 자신의 내적 아픔과 결핍을 채우고 해소해 왔다는 감독의 진실한 마음은 이 작품을 통해 전해진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 사진제공 대원미디어(주)


물론,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미야자키 하야오는 스티븐 스필버그처럼 애니메이션이 자신의 아픔과 결핍을 채우는 역할로서 존재한다고 말하진 않는다. 되려 꿈을 이루는 도구지만, 그 결과물을 내기까지 고통을 따라는 지난한 과정이 수반되었다고 소개한다. 극 중 왜가리를 따라나선 그 여정이 이 소년에겐 고통과 두려움의 연속이었던 건 어쩌면 당연한 일로 보인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파벨만스>와 접점을 이루는 건 노감독의 인생사의 명과 암을 오롯이 담으려고 했다는 의도와 용기다. 그렇다면 거짓말쟁이 노감독이 진실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 노감독의 가장 진실한 영화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스틸컷 / 사진제공 대원미디어(주)


앞서 소개한 대로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가장 진실한 영화다. 극 중 자신의 분신이라 할 수 있는 마히토의 이름만 봐도 이를 알 수 있는데, 소년의 이름은 참 진(眞), 사람 인(人)자를 써서 참된 사람, 진실한 사람이란 의미를 지닌다.


감독 자신의 치부와 부채를 가감 없이 드러내려는 장면이 자리 잡는다는 것도 이를 증명한다. 극 중 전쟁 당시 비행기를 생산하는 군수업자였으며 돈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는 아버지의 모습이 그려지는데, 이 부분에서 감독은 전쟁으로 부를 축적하는 아버지를 미워하는 마음, 그리고 그 돈으로 유복한 생활을 하고, 애니메이터의 꿈을 키운 자신의 과거를 보여주며 수치스러움과 부채감이 얽혀진 혼란스러운 마음을 내보인다.


이는 학교에서 학우들과 싸운 후, 자신이 직접 돌로 머리를 찧는 장면으로 표현한다. 이후 그 상처는 아물지 않는 걸 보여주며, 노인이 된 지금까지도 그 감정은 고스란히 자신의 마음에 자리 잡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붉은 돼지>에서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그 모습이 부끄러워 돼지가 된 포르코의 모습, <바람이 분다>에서 박살난 비행기를 바라보는 지로의 모습은 감독의 마음 한 켠에 있는 부채감을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장면이다.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스틸컷 / 사진제공 대원미디어(주)


이런 양가적인 감정을 바탕으로, 다른 세계로 길을 떠나는 마히토의 모습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기억과 내면의 여정과도 같다. 특히 거짓말쟁이 왜가리와 함께 죽음의 세계로 입도한 후 만나는 히미, 젊은 시절 키리코, 펠리컨과 잉꼬 앵무새, 와라와라, 그리고 큰할아버지 인물과 이들의 만남은 감독의 삶에서 큰 영향을 미친 인물과 사건을 대입시킨다.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스틸컷 / 사진제공 대원미디어(주)


이중 왜가리는 그와 함께 오랫동안 지브리를 끌고 온 제작자 스즈키 토시오, 큰할아버지는 스승 다카하다 이사오를 반영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영화에서는 이들과 보낸 세월과 오랫동안 작품활동을 하면서 오갔던 다층적인 이야기와 감정이 고스란히 베어 있다. 미워하다가도 서로 도우며 여정을 함께한 왜가리와의 관계는 제작자와 감독 사이에 놓인 애증과 우정을 보여준다. 자신만의 세상을 구축한 후, 이를 이어받으라고 하는 큰할아버지의 말은 미야자키 하야오를 애니메이션 산업으로 이끌어 준 다카하다 이사오 감독을 떠올리게 한다.


단순히 영향을 준 인물들이 등장한다고 해서 감독 내면의 여정이라고 한 것은 아니다. 현 세계에서 아이를 물어준다는 펠리컨, 사랑을 의미하는 잉꼬가 죽음의 세계에서는 생명을 먹어 치우는 이미지로 표현되는데, 이는 아름다운 이미지와 결과물이 나오기까지 스스로 자신을 갉아먹는 것을 은연중에 표현한 부분이다. 더불어 거친 파도를 헤치는 키리코와 불의 힘으로 이를 정화하는 히미의 존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에 온 힘을 쏟는 열정으로 치환될 수 있다.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스틸컷 / 사진제공 대원미디어(주)


자전적인 이야기를 꺼내 놓은 탓에 극중 소재와 디자인은 기존 작품과 교차 보인다. 아버지의 이야기는 <붉은 돼지>가 떠오르고, 의문의 성 디자인은 <천공의 성 라퓨타>가, 다른 세계로의 여정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불의 쓰임새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 겹쳐 보인다. 이는 자기 복제가 아닌 각 주요 요소가 어떻게 해서 사용되었는지 그 시작점을 알게 하는 실마리가 된다. 이를 통해 내면의 갈등과 상처를 내보이고, 그 여정을 그린 과정은 미야자키 하야오가 왜 반전 메시지와 환경 보호를 주제로 했는지, 그의 영화에서 비행기와 주체적인 여성이 자주 등장하는지 유추하게 된다.


| 2시간을 할애한 질문, 그리고 우리의 답은?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스틸컷 / 사진제공 대원미디어(주)


수치스럽고 밉지만 자신의 성장 토대를 만들어 준 가족, 그리고 부채감, 하나의 작품을 탄생시키는 감독으로서 겪을 수밖에 없는 고통과 괴로움, 그런데도 이 모든 걸 딛고 계속해서 정진하려는 그의 이야기는 한 인간의 자전적 스토리로서, 한 예술가의 성장 스토리로서 흥미롭고도 의미있는 작품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영화는 제목처럼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감독은 진실된 마음으로 그동안 자신이 살아온 여정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관객에게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되묻는다. 다소 난해한 장면과 갖가지 의미가 뒤엉켜져 있는 작품이기 때문에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좀처럼 희망이 보이지 않는 젊은 세대들을 향한 감독의 조언은 명료하다. 그 중심에는 히미가 있다.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스틸컷 / 사진제공 대원미디어(주)


불의 힘으로 펠리컨과 잉꼬를 물리치고, 마히토를 도와주는 이 소녀는 마히토와의 이별을 앞둔 시점에서 불투명한 미래를 알고도 자신의 세계로 돌아간다. 이 용기 있는 선택은 히미가 삶의 열정으로 잉태된 아름다운 결과물을 보았기 때문이다. 히미 목소리를 일본 젊은 세대의 아이콘인 아이묭이 맡은 건 우연의 일치가 아닌듯하다.


더불어 마히토의 마지막 선택도 포함된다. 이 소년은 큰할아버지가 만든 평화로운 세상을 이어받지 않고 선과 악이 공존하고 어쩌면 신도 버린 인간 세계로 돌아간다. 이 결심은 고통을 감내하면서도 자신이 생각하는 꿈과 결과물로 조금이나마 세상의 균형을 맞추고 싶어 하는 감독의 마음이 담겨있다. 오랫동안 작품 활동을 했음에도 그 균형을 제대로 맞추지 못한 것에 자괴감이 들지언정 그럼에도 살아서 정진해야 한다는 메시지는 작품을 통해 전달된다.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스틸컷 / 사진제공 대원미디어(주)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시대를 역행하듯 2D 애니메이션이 전하는 역동적이며 황홀한 영상은 눈으로 담기에 벅찰 정도다. 이전 작품보다 덜 친절하고 난해한 부분이 발목을 잡긴 하지만, 그럼에도 이 작품에 끌리는 건 미야자키 하야오의 진짜 은퇴작이자 마지막 작품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스스로 삶을 돌아보며 만든 유일무이한 그의 작품인 점에서 감독의 팬이라면 충분히 볼 가치가 있다. 팬이 아니라면 이 영화를 본 후, 시간 순서에 따라 모든 작품을 본 후, 다시 이 작품을 보길 권한다. 그 지난한 과정을 통과한다면 아마 거짓말쟁이였다가 진실한 마음으로 회고록 같은 작품을 남긴 노감독의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질문은 던져졌다. 이제 우리가 대답 할 차례. 곱씹고 곱씹고 또 곱씹어 보자. 그 대답이 언제 나오든 노감독은 기다려줄 것이다. 그리고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후세대에 똑같은 질문을 해야 할 날이 올 것이다. 그때를 위해 각자만의 탑을 쌓아 올리는 건 어떨까.




평점: 4.0 / 5.0
한줄평: 너만의 탑을 쌓으라는 어느 노감독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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