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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또비됴 Nov 03. 2023

이제야 닦아주는 소년들의 눈물!

영화 <소년들> 리뷰

소년들은 웃지 않는다! 억울하게 뒤집은 쓴 누명, 공권력의 횡포, 이후 사회가 바라보는 따가운 시선 등에 그들은 웃을 수가 없다. 아닌 웃는 법을 잃어버렸다. 재심으로 살인 누명을 벗었지만, 사라져 버린 소년들의 시간은 절대 돌아오지 않을 터. 이 아이들에게 죄를 물리고, 방치한 어른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1999년 삼례 나라슈퍼 사건을 실화로 한 <소년들>은 어른들의 잘못으로 평범한 삶을 빼앗겨 버린 소년들의 이야기이자,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미안하다고 말하는 어른들의 뒤늦은 고백이다.  


영화 <소년들> 스틸 / CJ ENM 제공


1999년 전북 삼례의 작은 슈퍼마켓에서 강도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10대 소년 세 명이 이 사건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곧바로 감옥에 수감된다. 1년 후, 완주경찰서에 일명 ‘미친개’라 불리는 베테랑 형사 황준철(설경구)이 반장으로 부임한다. 한번 물면 놓지 않는 미친개처럼 한 번 맡은 사건은 집요하게 추적해 해결하는 그는 우연히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슈퍼마켓 강도 살인 사건의 진범이 자기 친구였다는 제보 내용이었다.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황준철은 그 즉시 사건 파일과 관련 인물들을 확인하는데, 허술하기 짝이 없는 수사 과정과 뭔가를 감추는 듯한 당시 담당자들의 속내에 분노한다. 그리고 미친개 모드로 돌입한 후, 재수사에 나선다. 한편, 당시 수사 총책임자로 팀 전체를 특진으로 이끈 최우성(유준상)은 이 사건을 덮으려고 한다.  


영화 <소년들> 스틸 / CJ ENM 제공


<소년들>은 1999년 삼례 나라슈퍼 사건을 모티브로, 잘못된 사회 공권력 남용에 의해 피해받은 억울한 소년들의 사연과 재심 과정을 영화로 담았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도 나왔던 이 사건은 1999년 2월, 전북 완주 삼례 나라슈퍼에 침입한 3인조 강도가 침입해 금품을 빼앗고, 주인이었던 70대 할머니를 숨지게 했던 일이다. 범인으로 몰려 누명을 쓴 세 소년은 출소 후 청년이 되었고, 재심을 통해 누명을 벗게 된다.


오랫동안 영화라는 무기로 사회의 이면을 들여다본 정지영 감독은 사건이 발생하고 재심 과정을 소개하며 공권력의 횡포를 보여준다. 그 방법으로 재수사 시점인 2000년, 재심 시점인 2016년의 상황을 교차 편집으로 보여주며, 그 내막을 서서히 보여준다. 미스터리 구조를 띤 서사는 실화를 처음 접한 관객들이라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요소로 활용되고, 이들의 이야기를 계속 집중시키게 하는 장치로서 그 매력을 더한다.


영화 <소년들> 스틸 / CJ ENM 제공


이 구조를 바탕으로 영화를 이끄는 건 황준철이라는 인물이다. 2000년에는 공권력에 대항해 세 소년의 누명을 벗기려 했던 형사였지만, 16년 후에 보이는 흰머리만큼 그의 모습도 변해있다. 과거 사건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부채감과 경찰은 물론, 검찰까지 손을 잡고 찍어 누르는 공권력에 대항하지 못하고 무릎을 꿇은 열패감이 뒤섞여 있는 노쇠한 경찰이 된 것. 하지만 재심 사건으로 뒤늦게라도 아이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누명을 벗겨주려고 하는 그의 용기 있는 모습이 그려지며, 평범한 영웅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여기에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이자 피해자의 딸인 윤미숙(진경) 또한 두려움에 잘못된 진술을 했던 자신의 과오를 씻고, 자신으로 인해 누명을 쓴 소년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노력한다.


이들과 맞대응하는 최우성 이하 소년들에게 가혹한 상처를 안긴 형사들, 담당 검사 등의 인물들을 적절히 배치한 감독은 이들을 통해 황준철이란 인물이 가진 정의감과 형사로서의 도리를 다하는 모습을 부각한다. 결과적으로 참된 어른은 무엇인지, 약자를 항해 방관이 아닌 도움을 줘야 건강한 사회가 이뤄진다는 메시지가 전달된다.


영화 <소년들> 스틸 / CJ ENM 제공


재심이 이뤄진 법정 장면까지 팽팽한 긴장감을 잘 끌고 나온 영화는 후반부, 세 소년의 억울함이 풀리는 과정에서 무게추가 한쪽으로 쏠린다. 초중반보다 긴장감이 떨어진 상황에서 세 소년의 억울함과 그동안 감내했던 약자의 설움, 복받치는 감정이 너무 앞선 나머지 힘이 떨어진다. 실제 사건과 그 결과에 기반한 연출이지만, 너무나 예상 가능한 마무리는 아쉬운 지점이다.


영화 <소년들> 스틸 / CJ ENM 제공


그럼에도 관객의 시선을 고정시키는 건 배우들의 연기다. 설경구는 현실적이고도 참다운 어른의 표상을 잘 표현했는데, 강철중이 늙으면 저런 모습일까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그만의 매력을 표출한다. 유준상은 악역다운 날카로운 면모를 보여주며, 황준철의 맞수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무거운 이야기 사이에 피어난 웃음꽃을 자처한 허성태, 염혜란, 또 다른 어른의 모습을 보여준 진경, 그리고 각각 소년과 진범을 연기한 김동영, 유수빈, 배유람, 서인국 등 다수의 배우는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보여줄 수 있는 몫을 해내며 영화가 가진 의미를 더한다.  


영화 <소년들> 스틸 / CJ ENM 제공


여기에 하나 더. 정지영 감독의 어른다움이다. <남부군> <하얀 전쟁>은 물론, <부러진 화살> <남영동 1985> <블랙머니> 등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찾아 들춰내어 이를 알려주는 것은 물론, 관객에게 묵직한 화두를 던지는 정지영 감독은 극 중 마지막 장면에 큰 방점을 찍는다.


누명을 벗은 소년들과 함께 사진을 찍는 황준철의 시선과 마지막 손짓. 바로 법정에 나와 양심고백을 한 진범 재석(서인국)을 향해 있다. 당연히 재석은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인물이다. 그 또한 죗값을 치르기 위해 재수사 당시 자수를 하려 했다. 하지만 자기 의사가 아닌 공권력에 의해 무마된다. 16년 동안 이어진 죄책감에 시달렸던 그 또한 또 공권력 횡포의 피해자인 셈. 감독은 마지막 장면에서 이 진범까지 끌어안으려고 시도한다. 더 이상 방관자가 아닌 책임 있는 어른으로서의 행동과 포용. 여든에 가까운 나이인 노감독의 마지막 시선은 그 어느 때보다 묵직하다.



평점: 3.5 / 5.0
한줄평: 약자에게 힘이 되는 건 평범한 이들의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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