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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또비됴 Nov 08. 2023

평범하면서도 웃기고, 괴이한 우리의 일상!

영화 <괴인> 리뷰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뉴 커런츠상, 넷팩상, KBS독립영화상, 크리틱b상, 제 48회 서울독립영화제 대상, 제11회 무주산골영화제 감독상, 영화평론가상 수상, 그리고 시드니영화제, 홍콩아시안영화제 등 다수의 해외 영화제 초청. <괴인>은 평단의 사랑을 듬뿍 받은 웰메이드 수작이다. 과연 어떤 매력이 있었길래 평단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을까? 평범하지만 괴이하고, 괴이하면서도 평범한 이 영화의 세계로 들어가본다.


| 어! 이런 사람 어디서 봤는데

영화 <괴인> 스틸  / 제공 ㈜영화사 진진


목수로 일하는 기홍(박기홍)이 운전을 하다 차 지붕이 찌그러진 걸 우연히 발견하면서 특별한 일이 발생한다. 블랙박스를 보니 누군가 자신의 차 위로 뛰어내린 걸 확인한다. 공사 중이었던 피아노 학원 앞에 차를 세워뒀을 때 일어난 일이었다는 걸 알게된 그는 집주인이자 딱히 일이 없어 무료한 삶을 사는 정환(안주민)과 함게 범인을 찾는다. 시간이 지나 범인을 찾은 기홍. 하지만 쉼터를 나와 거처 없이 힘겹게 사는 범인의 이야기를 듣게 되고, 수리비를 받기도 뭐하고, 그러자니 안 받기도 뭐하고, 난감한 상황에 놓인다.


<괴인>을 보면 놀랄 수도 있다. 제목에서 풍기는 뉘앙스와 전혀 다른 인물들이 등장하고 평범한 이야기가 쭉 나열되기 때문. 그럼에도 놀라운 건 이 평범한 인물과 이야기 속에서 웃음이 삐져나오고 괴이한 상황이 연출된다는 점이다.


영화 <괴인> 스틸  / 제공 ㈜영화사 진진


그 중심에는 기홍이 있다. 턱수염을 기른 이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는 툭하면 나이나 성별, 집주인, 의뢰인 등 가리지 않고 초면에 반말하고, 감정에 휘둘리면 윽박지르거나 으름장을 놓는다. 실제 벌어들이는 수익이 얼마 되지 않지만, 월급쟁이 친구에게 보란 듯이 돈 많이 번다고 허세 부리고, 술집에서 처음 만난 여자에게는 과천에 위치한 타운 하우스 사니 이곳에 놀러 오면 연락하라고도 한다. 실제 그 집은 월세를 내고 사는 곳이다. 근데 또 임산부에게 먼저 계산하라고 양보하고, 집주인 앞에서는 두 손 모아 공손해지고, 힘들게 잡은(또는 만난) 범인의 전사를 들은 후 마음이 또 약해진다.


도대체 이 남자 왜 이럴까? 뭔가 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기홍의 정체성은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맞닿아 있다. 장소와 사람에 따라 변화하는 다면적인 모습이 잘 반영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자연스럽게 반말하는 기홍의 모습이 거슬리고 이상하게 받아들일지언정 그를 이상하게 여기거나 미워하지는 못한다. 종종 우리 주변에 그런 사람을 본 적이 있고, 아니면 자신이 그렇게 행동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 인간관계의 복잡미묘함, 그리고 불안한 사회의 민낯

영화 <괴인> 스틸  / 제공 ㈜영화사 진진


기홍만 그러는 게 아닙니다. 집주인 부부, 피아노 학원 원장, 범인, 친구 등 다양한 인물들에게도 크고 작게 이런 성향이 나타난다. 감독은 극 중 인물들이 서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평범한 하지만 괴이한 일상이 곧 우리의 일상이라고 말한다. 중요한 건 영화를 다 보고 나오면 감독의 의도에 고개를 끄덕이는 자기 모습을 발견한다는 거다.


영화의 놀라운 지점은 차 지붕이 내려앉은 미미한 사실을 통해 사람들 사이 관계의 변화가 예측하지 못한 스릴로 다가와 신선한 재미가 있다. 이는 집주인 정환과 기홍의 관계에서도 잘 나타난다. 이 사건의 범인을 잡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었음에도 정환의 부추김에 다시 피아노 학원에 가고, 그곳에서 범인이 도망치는 걸 확인한다. 이후 기홍의 일은 점점 꼬이는데, 발단은 정환으로부터 나오지만 모든 결과와 책임은 기홍이 지게 된다.  

영화 <괴인> 스틸  / 제공 ㈜영화사 진진


가족 같은 분위기의 집주인과 세입자인 이 두 인물의 관계는 영락없는 갑을 관계라는 걸 알려준다. 술 먹고 늦게 들어온 날 낮술 한잔하자고 하는 정환의 말에 결국 술자리에 참석하는 기홍은 세입자일 뿐이다.


감독은 이런 관계를 집 공간으로도 보여준다. 이 집의 공간이 참 특이한데, 주인집과 세입자집의 문은 분리되어 있지만 2층에 연결통로가 있어 편하게 다닐 수 있다. 그럼에도 기홍은 주인집에 들어갈 때 꼭 문을 통해 들어간다. 이는 공간을 나누지 않았음에도 보이지 않는 인간 관계, 즉 갑을 관계가 존재하고, 이는 우리의 또 다른 모습을 드러내게 하는 매개체로 작용한다는 걸 알려준다. 그럼에도 기홍은 반말을 뒤섞고, 집주인 부부와 가족처럼 지내고. 정환의 아내(전길)와도 묘한 관계를 이룬다. 그럼에도 세입자는 세입자일 뿐. 때로는 일꾼을 부리는 사장의 모습, 친구나 여성에게 멋진 모습만 보여주려는 허세남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결국 집 없이 이곳저곳을 전전하는 범인처럼 그 또한 주인 눈치를 살펴 가며 조용히 살아야 하는 세입자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영화 <괴인> 스틸  / 제공 ㈜영화사 진진


영화는 상황이나 관계를 맺으면서 벌어지는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인 동시에 보여주는 삶이 더 중요해진 현시대의 문제점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극 중 기홍이 주인집 아내와 카페를 창업하려는 그의 친구를 만나는 장면에서 직사각형 모서리에 큰 돌을 올려놓은 전시물을 본다. 세 인물은 이를 보며 놀랍고 멋있다고 말하지만, 관객들은 그 반대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돌이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불안감이 바로 그것.


영화 속 인물들은 이 전시물과 같은 삶을 산다. 일감이 없으면 손가락만 빨아야 하는 상황에서 허세나 부리고, 교통이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좋은 집에 그것도 세입자로서 살며, 방 앞에 설치한 캠핑 테이블 위 ‘니체의 말’이란 책을 놓고, 집주인과 테니스도 배우러 다닌다. 이처럼 기홍은 보이는 것에 무게 중심을 주는 삶을 지향한다. 함께 일하는 고향 친구에게도 무조건 잘될 거라는 식의 이야기만 늘어놓다가 결국 다른 사람을 고용해 일을 하게 된다. 뿐만 아니다. 집주인은 타운 하우스에 살지만, 백수로 살고 아내의 사랑도 받지 못하는 공허한 삶을 살아간다. 아내 또한 좋은 집에 명품 옷, 백을 들고 다니지만, 남편과 다른 공허한 삶을 사는 건 마찬가지다.


영화 <괴인> 스틸  / 제공 ㈜영화사 진진


아이러니하게 이런 삶에 비수를 꽂는 건 범인과 기홍이 차를 고치러 간 카센터 주인이다. 담배를 물고 2002년 한일월드컵 이야기를 하면서 16강에서 멈췄어야 했는데, 그때 이뤄졌던 분에 넘치는 기적 때문에 사람들이 다 이 모양 이 꼴로 산다고 말한다. 이 또한 젊은 세대의 행태에 못마땅한 기성세대의 비아냥으로 들릴 수 있지만, 극 중 이 말을 들은 범인과 기홍의 표정을 보면, 이 괴설이 주는 낯뜨거움의 대상이 그들이라는 걸 잘 알게 된다.  


| 홍상수 영화의 자장 안에 피어난 리얼리티!

영화 <괴인> 스틸  / 제공 ㈜영화사 진진


<괴인>은 현대인들의 관계 맺음에 대한 어려움과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삶의 행태를 있는 그대로 옮기려는 감도의 의도가 돋보인다. 결은 좀 다르지만, 홍상수 감독 영화가 떠오르는 건 바로 이 때문. 결국 심연에 가라앉은 인간 본연의 모습을 끄집어내 이게 바로 우리의 민낯이라 말하는 부분만 봐도 공통 분모는 충분해 보인다.


'해운대 소녀'(2012), '반달곰'(2013), '창밖의 풍경'(2014) 등 단편으로 주목받은 이정홍 감독은 자신의 첫 장편을 통해 허구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영화라는 매개체로 리얼리티를 얼마나 표현할 수 있을까에 대한 실험을 하는 듯하다. 캐스팅만 봐도 이를 알 수 있다.


영화 <괴인> 스틸  / 제공 ㈜영화사 진진


주인공 기홍 역을 맡은 박기홍 배우를 비롯해 대부분의 출연진이 연기 경험이 없는 일반인이다. 박기홍 배우는 감독과 오랜 친구이고, 집주인 정환 역의 안주민 배우는 이탈리아 정통 피자를 만드는 셰프, 아내 현정 역에 전길 배우는 쌍둥이 엄마다. 이들은 전문 배우들 못지않게 흡입력 있는 연기를 보여주며, 감독의 의도한 데로 최대한 사실감 있는 연기를 선보이는데, 이는 어디로 튈지 모르고, 어떻게 끝날지 모르는 영화의 맛을 살리는 데 일조한다.


이정홍 감독의 놀라운 연출력도 기인한다.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영화 전문지와 나눈 인터뷰에서 감독은 늘 어렵고 가끔은 공포스럽기까지 한 인간관계를 솔직하게 그려보려 했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런 감독의 생각은 영화가 관객들에게 더 솔직하게 다가온 이유인 것 같다. 과연 다음 작품에서는 얼마나 독특하고 섬세한 연출을 할지 더욱더 궁금해진다.



독특하지만 그럼에도 계속 보게 되는 마력의 영화, 사실적인 이야기를 영화로 옮기려 했던 감독과 이를 극 중에서 연기로 표현하려 했던 배우들의 노력이 한데 뭉쳐 완성한 <괴인>. 정형화된 공식에 맞는 영화와 다른 색다른 재미를 줄 수 있는 이 영화를 쉽게 잊지는 못할 것 같다.



평점: 4.0 / 5.0
한줄평: 이거 우리 얘기일지 모른다는 착각 혹은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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