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또또비됴 Oct 27. 2023

천사도 악마도 아닌
아시아계 이민자의 삶

영화 <프리 철수 리> 리뷰 

“나는 천사가 아니다, 그러나 악마도 아니다” <프리 철수 리>는 미국에서 살인이라는 억울한 누명을 쓴 채 교도소에 복역하고, 생명의 위협을 느껴 살인까지 저지른 이민자 이철수의 이야기다. 평범한 이름을 가진 이 사내의 인생은 그 이름과 정반대로 흘러간다. 이 억세게 운 나쁜 사내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아메리칸드림의 허상, 1970년대 한국계 디아스포라의 그늘진 단면을 마주한다. 그리고 그 시절 수많은 이철수와 같은 삶을 산 한국계 더 나아가 아시아계 이민자들의 삶을 반추한다. 


영화 <프리 철수 리> 스틸 / 커넥트픽쳐스 제공


탕! 탕! 탕! 총성이 들린 1973년 여름, 미국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 총에 맞은 중국인 갱단은 숨지고, 21살 이철수는 살인 혐의로 체포된다. 중국인인지 한국인인지 구분 못 하는 세 명의 백인 목격자의 지목에 의해 그는 무기징역을 선고받는다. 4년 뒤인 1977년,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누명을 쓴 채 들어간 교도소에서 자신을 해하려는 백인 남자를 살해한다. 정당방위로 행했던 일은 사형이란 결과물로 돌아온다. 이 소식을 알게 된 그의 오랜 벗이자 변호사인 랑코 야마다, 이철수 사건의 부당함을 널리 알린 이경원 기자 등은 서로 힘을 합해 재심 요구 구명 운동을 펼친다. ‘프리 철수 리’를 외치는 목소리는 미국 전역으로 퍼지고, 아시안계 인권 운동을 번져나간다. 


영화 <프리 철수 리> 스틸 / 커넥트픽쳐스 제공


<프리 철수 리>는 보이지 않는 사회의 불안 요소로 인해 한 개인의 삶이 어떻게 변화하고 흘러가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그 중심에는 굴곡진 삶을 살아간 이철수 개인이 있다. 누명을 쓰고 교도소에 간 그의 실화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미국 사회 내 인종 차별에 대한 문제점을 들춰낸다. 인종을 구별 못 하는 백인의 눈과 말을 믿고 죄를 물린 처사는 다인종, 특히 아시안계를 무시하고 차별하는 일련의 사건이다. 시쳇말로 힘없고, 백 없는, 심지어 가족의 보호도 받지 못하는 한 개인이 타국에서 자신의 일생을 뺑소니 당한 격이다. 


영화 <프리 철수 리> 스틸 / 커넥트픽쳐스 제공


이런 그를 자유의 몸으로 만들어 준 건 이경원 기자, 랑코 야마다를 비롯한 아시안 커뮤니티의 힘이다. 이민자로서 겪는 불평등에 이골이 난 아시아계 사람들은 이를 계기로 똘똘 뭉쳤고, 미국 전역, 심지어 하와이에서도 ‘프리 철수 리’를 외쳤다. 구명 운동을 위한 목적으로 이철수의 부당함을 알리는 음악까지 만들었을 정도. 이들이 일으킨 작은 물결은 결국 그에게 자유를 안겨줬다. 


사회적 약자로서 부당한 일을 당했지만,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아 온전한 삶을 쟁취한 이야기로서 마무리가 될 줄 알았던 영화는 용기 내 한 발짝 더 나아간다. 그의 굴곡진 삶은 석방 이후에도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영화 <프리 철수 리> 스틸 / 커넥트픽쳐스 제공


자유의 몸이 된 이철수는 아시아계 인권 운동의 아이콘이 되어 자신에게 도움을 준 각 도시 커뮤니티를 돌며 고마움을 표하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적응해 나가려 한다. 하지만 흔한 자신의 이름과 다른 삶을 살게 된 그는 끝내 적응하지 못하고 마약 중독과 화재 사고로 나락에 빠진다. 이런 그의 삶은 10년이란 세월을 앗아간 일련의 사건도 있지만, 한국 전쟁 때 태어나 어린 나이에 미국으로 건너가고, 엄마의 사랑을 못 받으며 소년원을 전전한 과거사의 영향이 크다. 전쟁의 상흔과 싱글맘으로 살아가기 힘들었던 한국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는 미국 사회 내 차별만큼 그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어렸을 적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한 채 살아간 그에게 아시아계 커뮤니티가 전하는 크나큰 사랑은 낯설고도 부담스러웠을 터. 이를 버티지 못하고 굴곡진 삶을 살아가며 쓸쓸히 세상을 떠난 이철수라는 남자가 이해되는 부분이다. 


한 개인을 통해 미국과 한국 사회의 어두운 민낯을 들출 수 있었던 건 한국계 미국인 하줄리, 이성민 감독 덕분이다. 기자 출신인 하줄리, 이성민 감독은 대한 객관적인 시각으로 이철수와 그를 둘러싼 당시 사회 분위기를 영상으로 옮긴다. 이런 연출 기준을 통해 한 인물과 사회의 연결성을 볼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하고 단순히 영웅담으로 그치는 게 아닌, 사회적 약자로서 어둠을 자처한 삶을 살았는지에 대한 생각을 갖게 한다. 더불어 재구성한 아카이브 영상 사이로 실제 어릴 적 교도소 수감 생활을 했던 세바스찬 윤의 호소력 짙은 내레이션은 극의 몰입도를 살린다. 


영화 <프리 철수 리> 스틸 / 커넥트픽쳐스 제공


2014년 이철수의 장례식에서 만난 이경원 기자의 이야기와 눈물을 보며 이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했다는 두 감독. 잊혀진 과거 이야기를 길어 올린 이유는 그처럼 사회에서 환영 받지 못하는 이들이 우리 주변에 아직 많기 때문이지 않을까. 한 인간을 구하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들의 힘과 같이 사회적 약자를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영화를 보고 생각하면 좋겠다는 하줄리 감독의 이야기. <프리 철수 리>가 이 시점에서 왜 우리에게 왔는지 곱씹게 한다.   



평점: 3.5 / 5.0
한줄평: 평범한 남자의 평범하지 못한 삶, 그리고 애도 



매거진의 이전글 파닥거리는 희망을 덮는 절망의 질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