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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또비됴 Oct 19. 2023

파닥거리는 희망을 덮는 절망의 질주!

영화 <화란> 리뷰  

암울하고도 고통스러운 한 편의 지옥도. 그 안에서 벌어지는 절망의 질주! 누아르 장르를 표방한 <화란>은 절망으로 빨려 들어가는 과정과 실낱같은 희망을 잡기 위해 발버둥 치는 인물들의 처절한 모습을 그린다. 누아르 장르에서 숱하게 봤던 이 지옥은 <화란>에서도 반복된다. 하지만 예사롭지 않은 건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 어른의 세계에 낚여(?) 버린 소년들의 파닥거림이다.


영화 <화란> 스틸 /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제공


새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는 18살 연규(홍사빈). 하루하루가 지옥이지만 사랑하는 엄마와 네덜란드(화란)로 이민가기 위해 중국집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모은다. 하지만 의붓여동생 하얀(김형서)이 교내에서 괴롭힘을 당하고, 연규는 가해자들을 향해 짱돌을 던진다. 그 결과 돌아오는 건 합의금 300만 원. 중국집 사장에게 사정을 말하며 가불 좀 해달라고 하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다. 식당에서 이 이야기를 들은 중간 보스 치건(송중기)는 연규에게 선뜻 돈을 건넨다.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이들의 인연은 시작된다.


<화란>은 폭력에 노출된 소년 연규가 막다른 골목에 몰려 그릇된 선택을 하게 되고, 이후 그 결과가 어떤 방식으로 돌아오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다. 영화 초반, 연규는 하얀을 위해 보복하지만, 결국 그에게 돌아오는 건 합의금. 더 나아가 무력감과 자괴감이다. 스스로 무언가를 결정할 수도, 지킬 수도 없는 이 소년은 유일한 도움이었던 치건의 돈을 덥석 물수 밖에 없다. 그게 절망의 시작이라고 할지라도 그에게 선택권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를 아는 관객은 벗어나려고 하면 할수록 불행으로 더 깊이 빠져 버리는 연규에게 연민의 정을 느끼고, 2시간 동안 나락으로 떨어지는 이 소년을 목도한다.


영화 <화란> 스틸 /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제공


이처럼 영화는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는 연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진행한다. 극 중 연규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인물로 치건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때때로 형제처럼, 유사 부자처럼 보인다. 두 인물을 거울 같은 구도로 만들었다는 김창훈 감독의 말처럼, 치건은 연규를 보며 과거 자기 모습을, 연규는 치건을 보며 미래의 모습을 마주한다. 이 구도에 따라 연규를 향한 치건의 행동은 상처받은 자신의 유년기를 보듬는 행위로, 치건을 향한 연규의 행동은 부재한 아버지의 결핍을 채우는 행동으로도 읽힌다.


영화 <화란> 스틸 /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제공


누아르는 외피를 쓴 영화는 한 줌의 행복도 용납하지 않은 어두운 분위기를 계속 유지해 나간다. 끈적하다 못해 딱 달라붙어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음습함은 물론, 때리고 맞는, 찌르고, 베는 등 폭력이 난무하는 장면이 즐비하다. 진짜 싸움을 위해 트렁크에서 연장 챙기듯 제작을 맡은 사나이 픽쳐스는 그동안의 노하우를 십분 발휘해 중무장한 느낌이다.


하지만 되려 이런 분위기와 스토리 라인은 발목을 잡는다. 기존 누아르 영화에서 접했던 상황과 분위기, 전개 방식은 기시감이 들어 시간이 지날수록 그 힘이 달린다. 그 때마다 관객을 사로잡은 새로운 연장을 전달하는 건 배우들의 몫이다.


영화 <화란> 스틸 /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제공


눈에 띄는 건 연규 역을 맡은 홍사빈이다. 신인으로서 상업영화 주연이란 큰 롤, 연기하기 쉽지 않은 캐릭터를 맡았음에도 보란 듯이 이를 해낸다. 특히 동생이나 동네 꼬마에게 선의를 배풀정도로 착했던 그가 점점 어둠의 잠식되어 가는 과정을 흡입력 있게 그려낸다. 선과 악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다가 후반부 치건과의 대결 장면으로 진득한 인장을 찍는 그의 연기는 발군이다.  후반부 연료가 바닥난 오토바이를 끌고 사거리 중간에서 멈춰있을 때 이 배우의 표정을 기억하시라.


영화 <화란> 스틸 /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제공


송중기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동안 보여주지 않았던 날 것 같은 느낌의 연기와 삶의 목표를 잃어버린, 극 중 대사처럼 죽은 사람처럼 사는 사람의 공허함을 잘 표현한다. 김형서는 물론, 치건의 오른팔 승무 역에 정재광, 조직 보스역에 김종수 등 그 자리와 역할에 맞는 연기로 캐릭터를 살린다. 특히 김종수는 말 없이 눈빛으로 내뿜는 카리스마가 압권이다.


영화 <화란> 스틸 /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제공


<화란>은 15세 관람가임에도 폭력 수위가 센 편이다. 이는 호불호가 갈리는 지점인 동시에 신인 감독의 패기와 뚝심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어떻게든 관객을 멱살 잡고 절망의 끝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보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신인 배우들의 신선하고도 피 끓는 연기를 보는 맛도 일품이다. 완성도를 떠나 계속해서 정형화된 공식에 맞춘 영화가 관객을 만나고 있는 시점에서 이 영화의 개봉은 의미가 있다. 뭐든 끝까지 밀고 가야 한다. 그 끝이 절망일지라도.  



평점: 3.0 / 5.0
한줄평: 희망을 품다는 건 절망의 늪에 빠진 상황이라는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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