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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또비됴 Sep 27. 2023

어느 감독의 미치도록 웃픈 고해성사

영화 <거미집> 리뷰

영화를 좋아한다. 아니 사랑한다. 처음 극장에 갔을 때 큰 스크린을 통해 봤던 영화의 감흥은 몇  십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고 생생하다. 감독들의 연출, 배우들의 연기에 탄복해 버스를 타지 않고 집까지 걸어간 적도 많았고, 과거 새벽같이 기차를 타고 부산 남포동 대영시네마(현 롯데시네마 대영) 매표소 앞에 박스 깔고 몇 시간을 앉아 차가운 아침 바람 맞으며 영화제 현장 표를 구한 적도 있다. 그때는 영화에 미쳤었다. 미치지 않고서야 그 일을 할 수 없었을 거다. 영화가 좋아 스스로 ‘거미집’에 들어간 감독과 배우, 스탭들처럼.


영화 <거미집> 스틸  / 바른손이앤에이 제공


“으악~” 어제도, 그제도 영화 <거미집>의 결말을 바꿔 촬영하는 똑 같은 꿈에서 깬 김열 감독(송강호). 꿈처럼 이 영화의 결말만 바꾸면 걸작이 탄생할 거라 믿는 그지만, 이미 촬영이 종료되고, 세트까지 없애는 상황이라 제작자 백회장(장영남)은 결사반대한다. 하지만 장차 제작사를 이어받을 미도(전여빈)는 수정된 시나리오를 읽자 마자 자신이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나선다. 검열 담당자와 백회장의 눈을 피해 김 감독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이틀. 세트장에 배우, 스탭들이 하나둘씩 도착하고, 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재촬영에 임한다. 조명은 켜지고, 카메라는 돌아가고, 김 감독은 ‘레디 고!’를 힘껏 외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세트 장 안과 밖에서 문제가 일어나고, 김 감독은 어떻게든 이를 수습하려고 애쓴다.


<거미집>은 영화에 미친 사람들이 세트장에 모여 한 편의 걸작을 만드는 좌충우돌, 우당탕탕 소동극이자 블랙코미디 작품이다. 특성상 흑백으로 촬영된 영화 속 영화보다는 촬영 비하인드가 집중적으로 담긴다. 세트 안 보단 세트 뒤나 밖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이 줄을 잇는데, 이들의 얽히고 설킨 관계 속 허우적거림은 그 자체로 웃음을 전하고 이는 배우와 스탭들의 액션을 받아야만 하는 김감독의 리액션에서 빗어진다.   


영화 <거미집> 스틸 / 바른손이앤에이 제공


당대 최고의 스타이자 유부남인 강호세(오정세)는 신예 한유림(정수정)과 사랑하는 사이라 남몰래 챙겨주기 바쁘고, 베테랑 여배우 이민자(임수정)과 오여사는 바뀐 대본에 볼멘소리가 크다. 미도는 어떻게든 김 감독의 걸작을 완성하기 위해 마음만 앞선 행동을 연발해 되는 일도 안 되게 만든다. 이런 모든 일에 관여 및 중재하고, 검열의 위기에서 어떻게든 빠져나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김 감독은 모습은 애처로워 보이며, 쓴 웃음을 짓게 한다.


극 중 김 감독은 몸에 사리가 나올 정도로 마음 속 천불이 나지만 어떻게든 끌고 가기 위해 비위를 맞춰주고 때로는 윽박 지르며 진행시킨다. 하지만 그 자신이 생각하는 영상을 찍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려고만 하면, 배우들이 발목을 잡고, 제작 환경이 잡아당기고, 겸열이 눈물 짓게 한다. 걸작을 만들기 위해 이런 수모를 감내해야 하는 게 맞아 보일 수 있지만, 거듭되는 난관은 감독을 미치게 한다.


영화 <거미집> 스틸  / 바른손이앤에이 제공


진정 그를 가장 미치게 하는 건 촬영 중 불길에 휩싸여 죽은  자신의 스승이자 선배인 신 감독의 자장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이다. 특히 출세작의 시니리오가 신 감독거라는 오해 아닌 오해를 받을 때 그는 화가 치밀어 오른다. 자기 능력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매번 치정극이나 찍는 감독이란 오명은 그를 신경쇠약 직전으로 몰고 가는 채찍질이자, 위대한 결작을 만들고 싶은 욕망을 들끓게 한다.  


<거미집>의 흥미로운 지점은 이 욕망이 광기가 되고 집착이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이틀 동안 세트장에서 살인적인 스케줄을 감행하고, 후반부 위험한 화재 장면이 삽입된 롱테이크 촬영을 감행하는 김 감독의 열정은 이내 사랑을 넘은 집착, 이성을 집어삼킨 욕망으로 변화한다. 한 마디로 광기에 사로잡힌 연출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 <거미집> 스틸  / 바른손이앤에이 제공


전반부에 가만히 있어도 미쳐버리는 작업 환경, 1970년대 검열이라는 공포 등 예술가로서 미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마련한 영화는 이 악조건 속에서도 꿈과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스스로 미치는 김 감독의 모습을 담는다. <블랙스완> <바빌론>의 주인공들과 결은 다르지만 그 궤를 같이하는 김 감독의 열정 혹은 광기를 통해 가까스로 완성한 영화는 결과적으로 기립박수를 받는 걸작이 된다.


중요한 건 김 감독만 미친 게 아니라는 거다. 그렇게 불평불만이 많고, 컨디션이 좋지 않은 배우들임에도 카메라가 돌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호연을 펼친다. 특히 힘들다는 말을 대사보다 더 많이 한 유림은 자신의 위치가 위태로운 걸 직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멋진 연기를 펼친다. 그 뿐만이 아니다. 형사물에 자주 등장하는 단역 배우는 카메라가 돌지 않는 상황에도 형사처럼 행동하고, 미도는 어떻게든 영화를 완성하기 위해 직접 카메라 앞에 서려고도 한다. 살인적인 스케줄에 아예 문을 걸어 잠그고 나가지도 못하는 상황이라도 한 편의 영화를 찍기 위해 이 많은 사람은 저마다 열정과 광기를 넘나들며 자신의 몫을 해낸다.


영화 <거미집> 스틸  / 바른손이앤에이 제공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거미집>은 영화를 향한 김지운 감독의 고해성사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이러니 하게도 극중 고해성사 세트는 물론, 호세와 김 감독의 비밀 공유 장면 배경은 성당 세트다. (심지어 송강호는 <박쥐>에서 신부 역할을 맡았다) 영화가 좋아서 시작했지만, 만들면서 재능을 의심하고 창작의 고통은 더 심해지고 있다는 걸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말하려 하는 것 같다. 더불어 매번 걸작을 만들고 싶은 욕망에 자신도 모르게 미쳐가는 자신을 그린 감독은 한 번 들어가면 빠져나올 수 없는 거미집처럼, 영화라는 예술 작업에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다는 걸 인지시킨다. 마치 행복한 고통이라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영화 <거미집> 스틸  / 바른손이앤에이 제공


이런 부분에 있어 <거미집>은 영화 마니아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반대로 일반관객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장벽은 존재한다. 더욱이 추석에 개봉하는 영화치고는 그 핏이 잘 맞아 보이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이 작품에 매력을 느낀다면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고 그 매력에 흠뻑  빠져 미칠 수 있는 영화라는 특성 때문이지 않을까. 검열이 심했던 1970년대나 코로나19 여파로 큰 타격을 입은 지금 영화 산업은 별반 다르지 않다. 두 시기 모두 영화를 만들기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돌파구는 있다. 영화가 만든 거미집에 들어가는 용기만 있으면 된다. 물론, 작은 광기도 필요하지만.




평점: 3.5 / 5.0

한줄평: 어느 감독의 미치도록 웃픈 고해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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