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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또비됴 Sep 22. 2023

신파를 없애니 편집이 울리네!

영화 <1947 보스톤> 리뷰

손기정, 남승룡, 서윤복, 그리고 1947년 보스톤 국제 마라톤 대회의 기적! <1947 보스톤>은 해방 직후 힘겹게 살아가던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큰 행복을 안겨다 준 이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이 작품은 제목만 들어도 애국심이 고취되고, 신파가 넘실거릴듯 하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대회 우승을 재현한 장면만 봐도 시쳇말로 국뽕이 차오르지만, 신파는 절제한 느낌이다. 그러나 최대한 담백하게 42.195km를 완주하려는 영화는 편집이란 변수를 만나며 시간이 지날수록 그 힘이 떨어진다.


<1947 보스톤> 스틸 /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손기정(하정우). 세계신기록을 세웠지만 그는 환희에 찬 모습 대신 월계관을 쓴 채 고개를 숙이고, 화분으로 가슴에 새겨진 일장기를 가린다. 이로 인해 마라톤과 영원히 이별한다. 광복 이후인 1947년, 손기정을 이을 차세대 마라토너 서윤복(임시완)이 등장한다. 손기정의 이름을 딴 마라톤 대회에 참가해 당당히 우승을 차지한 그는 기쁨 대신 술 냄새 풀풀 풍기는 손기정과의 짧은 악수와 상금이 없다는 것 매우 못마땅해 한다. 해방 직후라 가난이 발목을 붙잡는 상황에서 돈도 안되는 마라톤은 그에게 그저 꿈이다. 하지만 이들과 달리, 마라톤을 사랑하고 행복으로 여기는 남승룡(배성우)은 손기정을 설득하고, 서윤복을 영입해 보스톤 국제 마라톤 대회를 가자는 제안을 한다. 그리고 모인 이들. 하지만 미국을 가기에는 난코스가 산재해 있다.  



특히 각 인물들의 결핍은 대회 참여의 동력으로 작용한다. <1947 보스톤>은 크게 한국에서 마라톤 대회를 준비하는 이야기와 보스톤에 도착해 마라톤 경기를 치르는 이야기로 나눌 수 있다. 영화는 태생적으로 마라톤 대회 장면이 중요하기에 준비 과정에 있어서 겪는 인물들의 좌절과 노력의 이야기를 촘촘하게 쌓아나간다. 특히 각 인물들의 결핍은 대회 참여의 동력으로 작용한다.


손기정은 일본인에게 빼앗긴 마라톤의 열정을 되찾고, 남승룡은 일장기가 아닌 태극기를 달고 국제 대회에 뛰고 싶은 갈증을 채우고, 서윤복은 가난이란 굴레를 벗어나 마라톤 우승이라는 꿈을 이루려 한다. 이들의 염원이 가닿는 과정은 험난하지만, 함께 발을 맞춰 호흡하며 뛰는 이들의 팀워크는 결국 보스톤으로 가는 티켓이란 긍정적 결과를 낳는다.


<1947 보스톤> 스틸 /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이런 과정을 통해 실제 마라톤 대회에서 느껴지는 울림은 대단하다. 손기정은 감독, 남승룡은 페이스메이커, 서윤복은 이들의 도움을 받아 열심히 달린다. 각 구간에서 펼쳐지는 긴박감 넘치는 마라톤 장면은 보는 맛을 더하는데, 특히 구간 별 작전에 따른 운용과 그에 따라 달리는 두 선수의 모습, 그리고 뛰어든 개로 인해 넘어진 후에도 페이스를 잃지 않고 질주하며 우승을 차지하는 역전의 드라마는 익히 알고 있음에도 그 감동이 밀려온다. 밀려오다 못해 끝내 눈물을 훔치게 한다. 한국인이라면 태극기가 달린 유니폼을 만지작거리며 설레여 하던 선수들의 모습만 봐도 감정이 올라온다. 이게 바로 국뽕의 맛이라고 할까.


<1947 보스톤> 스틸 /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너무나 쉽게 편집에서 단점을 노출한다. 3년 전 완성한 영화이며, 시대적 배경이 1947년인 것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컷과 컷이 잘 붙지 않는다. 마치 신파로 빠지지 않을 거라는 굳은 결심을 보여주듯 눈물샘 자 상황이 온다고 하면 바로 화면이 전환되거나 다른 인물로 치환된다. 물론 보스톤 대회 참가비 마련을 위해 십시일반 돈을 모으는 국민들의 모습, 태극기를 달고 뛰게 해달라고 마라톤 위원장에게 읍소하는 장면, 악조건에서도 달리는 서윤복의 모습 뒤에 붙는 돌아가신 엄마와의 추억, 마라톤 경기를 라디오로 듣는 한국, 하와이 교민들의 리액션 장면 등 눈물 버튼 장면은 등장한다.


그럼에도 한 인물에 감정이입을 진득하게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지 않아 거리감을 갖고 이들의 여정을 따라가게 된다. 과거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CG로 구현된 장면도 많은데, 호기심보다는 이질감이 더 느껴지는 부분이 많아 몰입도도 떨어지는 건 아쉬운 지점이다.


세 명 모두 영웅으로서의 비춰지는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고, 이들이 일군 기적의 드라마를 영화에 오롯이 담으려고 노력한 부분은 알겠지만, 각 인물에 대한 이야기, 감정의 골이 깊어진 이야기를 더 깊숙이들여다보는 과정이 필요한 듯 보인다. 이런 부분이 결여되다 보니 박은빈(옥림 역), 박효주(남승룡 처 윤서 역)가 연기하는 캐릭터의 활용 폭이 좁다. 아무리 특별출연이라고 하지만, 이들을 통해 세 영웅들의 전사와 감정선을 잘 보여줄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이마저도 결여된다. 러닝타임의 한계로 세 인물을 고르게 다루지 못할 것이었다면 서윤복에게 초점을 맞춰나가는 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1947 보스톤> 스틸 /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이런 단점을 배우들이 메우는 격인데, 하정우, 배성우의 연기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임시완의 연기가 발군이다. 마라톤 경기 장면을 위해 만든 몸과 자세는 후반부 경기 장면에서 빛을 발한다. 촬영 3개월 전부터 다부진 몸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체지방률 6%대까지 낮추는 등 몸을 만드는 건 물론, 세상을 향해 악으로 깡으로 버틴 캐릭터 연기를 통해 누구에게도 지고 싶지 않은 언더독의 반란을 입체감 있게 그린다.


<1947 보스톤> 스틸 /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추석 연휴 주요 개봉작으로서 <1947 보스톤>은 관객들이 기대하는 바에 충분히 상응하는 결과물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럼에도 이 작품에 등장하는 세 인물의 드라마틱한 이야기와 그 시절 작은 희망이라도 이루는 모습을 간절히 바랬던 한국인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감동적이다. “1947년은 혼란스럽고 희망이 부족했던 시기다. 그런 상황에서 목표를 이루고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들을 통해 힘과 용기를 전하고 싶다.”라며 70여 년 전 이야기를 가져와 영화로 만든 이유를 밝힌 강제규 감독. 영화의 완성도는 차치하고 감독의 의도대로 이 영화를 보는 이들에게 그 에너지가 닿기를 희망한다.



평점: 3.0 / 5.0

한줄평: 신파를 없애니 편집이 울리네!



(이 리뷰는 ‘헤드라잇’에 쓴 글을 재편집한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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