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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정철 Aug 27. 2020

이효리가 중국에 사과한 이유, 서구 민주주의 위기

##가수 이효리는 22일 방송된 '놀면 뭐하니'에 출연해 '부캐'(부캐릭터)의 예명을 놓고 "중국 이름으로 할까요? 글로벌하게 나갈 수 있으니까. 마오 어때요?"라고 발언했다가 중국 네티즌의 몰매를 맞았습니다. '놀면 뭐하니' 제작진은 중국을 향해 엎드려 사과했습니다. 


##미국프로농구(NBA) 스타 플레이어 제임스 르브론은 홍콩 시위와 관련해 "홍콩 시위에 대해선 NBA 선수들이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해 미국을 비롯한 수많은 팬들의 공분을 샀습니다. 대릴 모리 휴스턴 로켓츠 단장이 "자유를 위해 싸우는 홍콩과 함께한다"는 글을 올렸다가 중국 중앙방송 CCTV는 NBA 중계를 중단했고 휴스턴을 후원하던 중국 기업들은 스폰서십을 중단하는 등 반발해서죠.


  


한국인과 미국인은 이 사건을 두고 모두 '굴욕적'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MBC '놀면 뭐하니' 제작진과 NBA 관계자 입장에서 보면 지극히 당연한 선택일지 모릅니다. 한국 예능과 NBA를 지탱하는 중국 10억 인구의 거대한 수요와 기업들의 후원을 생각하면요. 이를 단순히 '굴욕'으로 치부하고 넘어갈 일은 아닙니다.


최근 세계 석학의 생각을 지배하는 큰 화두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는 단연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입니다. '코로나19'는 중세의 흑사병처럼 인류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꿔 놓았습니다. 앞으로 수십 년에 걸쳐 사람들의 소통방식이나 거래방법을 변화시키고 도시의 모습까지 바꿔놓을 것입니다. 


오늘 이야기 드리고 싶은 주제는 '중국'입니다. 이제까지 여러 국제 전문가들과 석학들은 대부분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중국은 자본주의 질서를 받아들인 만큼 향후 자유 민주주의 사회로 발걸음을 돌릴 것이다"라고 말이죠. 이렇게 예측한 게 논리적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자본주의로 경제적인 부를 축적한 국가가 수십 년 뒤 민주주의로 넘어가는 역사 발전 과정은 여러 국가에서 발견되는 특징입니다. 한국이 좋은 예입니다. 일단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산업화가 진행되고 이에 따라 지식인인 학생과 시민사회가 급속히 성장했죠. 이들이 1980~90년 학생운동과 시민운동을 거쳐 자유와 인권, 법치주의 등 가치를 추구하는 세력을 성장하게 됩니다. 자본주의->민주화되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경험했습니다. (물론, 이는 귀납적인 추론이고 모든 나라에 해당하는 모델은 아닙니다)



중국은 다릅니다. 중국은 2020년 세계 GDP의 19.72%를 차지하고 인구 대다수가 빈곤에서 탈출할 정도로 드라마틱한 성장을 구가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민주주의와 인권, 법치주의, 지적 재산권 등 서구적 가치는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시진핑 국가주석의 등장으로 독재를 방지하는 최소한의 장치였던 중국의 집단지도체제가 후퇴했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서구사회와 사사건건 충돌하는 모습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오는 11월 선거에 낙선해 물러난다 해도 돌이킬 수 없을 것입니다. 미국적(서구적) 가치와 중국의 가치가 충돌하는 지점이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오래전부터 자신의 나라를 세계의 중심으로 생각했던 나라입니다. 18세기 까지만해도 세계 어느 나라도 중국의 부강함을 상대할 수 없었죠. 1793년 영국이 매카트니 사절단으로 하여금 처음으로 중국에 문을 두드렸을 때조차 중국은 이들을 '오랑캐'나라로 치부하며 길들이려 했을 정도입니다.


중국은 천하의 한 국가로 통일시켜왔습니다. 분열은 인내의 시기고 이를 극복해 천자가 세계를 통일한다는 게 중국의 관성입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총균쇠'에서 이를 지형의 차이로 분석합니다. 유럽은 산맥 등 장애물이 많아 독립된 국가가 형성됐지만, 중국은 광할한 평지가 있어 한 통일 국가가 형성됐다는 설명입니다. 중국은 19세기 서구 열강에 찢기면서 한번 상처를 받았지만, 현재는 세계 2위의 GDP 규모를 가지면서 다시 통일 국가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시진핑 국가주석 앞에서 "중국을 '높은봉우리' '대국'이라고 치켜세우고 한국은 작은 나라지만 중국과 함께 할 것"이라고 한 것은 이런 뼛속 깊은 중국 중심의 사상과 연결할 수 있습니다. 


거인의 존재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한국은 중국과 일본이라는 GDP 2,3위의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 쉽게 경제성장의 과실을 맞볼 수 있었죠. 하지만 빚을 갚아야 할 때가 오고 있습니다. 특히 2019년 중국과의 무역에서 한국은 289억9400만
달러의 무역 흑자를 보고 있습니다. 한국은 전체 무역의 25.1%(1362억1300만달러)를 중국에 기대고 있습니다. 홍콩(319억1400만달러·5.9%)을 합치면 수출의 30%를 범중국에 기대고 있는 셈이죠. 



세계 경제에서 다른 국가에 대한 무역 흑자는 '부채'와도 같습니다. 그들이 우리 물건을 소비한다는 뜻으로 생각하면 쉽습니다. 김밥나라를 가서 김밥을 시켜먹으면 소비를 한 사람이 갑(甲)이 되는 이치와 같습니다. 반면 일본을 상대로는 무역 적자국입니다. 일본엔 큰소리를 쳐도 중국에는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중국이 미국의 눈치를 보는 것도 이와 같은 이치입니다. 미국은 중국과 무역에서 엄청난 적자를 보고 있습니다.  


한국은 지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중국이라는 거인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민주주의의 가치 또한 버릴 수 없는 상황입니다. 다른 서구 국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과 중국의 대립은 단순히 무역전쟁이 아니라 가치와 가치의 대립입니다.  한국도 이 가치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있습니다.


중요한 건 미국과 중국의 가치를 어떻게 공존시키느냐에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의 서로에 대한 의존도는 이미 분열될 수 없을 만큼 높습니다. 미국과 서구 국가의 셈이 복잡해집니다. 이들은 중국에 대해 인권과 민주주의 가치를 강요하며 불필요한 갈등을 일으킬 필요는 없지만, 홍콩과 대만을 손아귀에 넣으려는 중국의 팽창주의를 방관해서도 안됩니다. 미국의 방관은 1차세계대전 후 독일의 팽창이 2차세계대전을 불렀듯이 중국의 팽창욕구는 또 다른 충돌을 부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수 이효리의 '마오' 사과 문제는 단순히 '굴욕적이다'고 생각하고 넘어갈 문제는 아닙니다. 앞으로 이런 상황이 다시 닥쳐온다면 한국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중국의 자본에 무릎을 꿇어야 할까요, 아니면 다양성을 존중하는 민주주의 가치를 들고 그들에게 대항해야 할까요.  
  

참고: 헨리 키신저 '중국 이야기'(On China) 

프로젝트 신디케이트 The End of Western Opportunism(Aug 24, 2020 JOSCHKA FISC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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