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 노동자 농민의 연합 '트럼피즘'을 만들다
오늘은 미국 대선에 관한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조 바이든 가운데 누가 승리자가 된 지에 대해선 지겹도록 이야기를 나눴을 것 같아서 조금 다른 이야깃거리를 가져왔습니다.
‘트럼프의 선전이 의미하는바’에 대해서 이야기 나눌까 합니다. 공화당은 이번 선거에서 생각보다 많은 표를 가져갔습니다. 민주당이 ‘대승’을 거둘 것이라는 여론조사와는 다르게 말이죠. '러스트벨트'(쇠락한 내륙 공장지대) 가운데 위스콘신과 미시간을 민주당이 가져갔지만, 플로리다와 노스캐롤라이나 등 경쟁주들을 공화당에서 가져갔습니다.현재까지 집계된 총 득표 수 가운데 트럼프가7080만3881표를 가져갔습니다. 이대로 트럼프가 선거에서 진다면 역사상 가장 많은 표를 얻고 지는 공화당 소속 대통령이 될 것 같습니다.
트럼프는 어떻게 조 바이든을 벼랑 끝까지 밀어붙였을까요? 트럼프에게 투표한 사람을 분석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농민‧노동자‧백인 표를 트럼프가 쓸어갔습니다. 트럼프는 지난 2016년 대선에서 이겼던 오하이오, 아이오아, 플로리다, 텍사스를 수성했습니다. 일찍이 민주당에서 이 경합주로 분류해 모두 바이든이 우세할 거라고 예상했던 지역입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자 시골 지역에서 트럼프 표가 쏟아지면서 지난 2016년보다 더 크게 승리를 거뒀습니다. 트럼프에게 표를 던진 유권자의 절반이 시골이나 작은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공화당을 지지하는 사람은 직업적으로는 노동자이고, 인종적으로는 백인, 지역적으로는 시골에 거주자하고 있습니다. 일부 언론은 이를 보고 트럼프가 이른바 ‘보수 포퓰리즘’의 새 장을 열었다고 평가합니다. '트럼피즘'은 지난 2016년에 잠깐 나타난 '신기루'가 아닌 지속적인 현상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것이 트럼프가 워낙 전례에 없던 사람이라 그가 사라져도 계속 지속될 현상인지는 확언하기는 힘들어 보입니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해서 바이든 지지자들과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도시에 사는 사람은 코로나19에 민감합니다. 인구 밀집지역이기 때문에 전염병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기 때문이죠. 이들은 자신의 가족이나 친구가 코로나19 때문에 목숨을 잃었을 수도 있고, 혹은 자신의 일자리도 잃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트럼프를 지지하는 시골에 사는 백인들은 코로나19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습니다. 인구 밀도가 낮기 때문에 전염병이 퍼질 위험이 적은 것이죠. 이들은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두려움보다 '셧다운'에 따른 경제 침체가 더 무서운 것입니다.
반면 조 바이든은 어떻게 이번 선거에서 이길 수 있었을까요?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로 표밭을 다졌습니다. 바이든을 지지한 유권자는 인종적으로 흑인, 계층적으로는 대학 이상을 나온 엘리트 계층, 지역적으로는 주로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트럼프 지지자들보다 이민자들에게 좀 더 포용적인 경향을 띕니다. 대도시에 있는 대학에 다니면서 여러 외국 사람들과 사귀었을 가능성도 크기 때문이죠. 또 젠더이슈, 환경오염 등에 대해서도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바이든이 당선되면서 석유의 퇴조가 빨라지고 태양광이나 풍력 등 친환경에너지의 등장이 좀 더 빨라질 것으로 보입니다.
조 바이든이 그린 미국과 트럼프가 계획하고 있는 미국은 너무도 다릅니다. 그래서 미국인들이 이번 선거를 "지금까지와는 다른 선거"라고 부르는 것이겠죠. 바이든이 백악관에 입성한다면 미국은 다시 다자주의로 회귀해 전통적인 우방국들과 공조에 나설 가능성이 큽니다. 트럼프의 미국은 이와는 반대로 고립주의 노선을 택하고 좀 더 국내 문제에 집중했었죠. 언론에서는 트럼프를 괴짜 대통령으로 표현합니다. 7대 대통령 앤드류 잭슨 대통령과 비교해서 보기도 합니다. 그는 귀족 출신이 아닌 미국의 최초 대통령입니다. 그전까지 모든 대통령은 동부출신 엘리트들이였죠. 그는 노동자와 농민을 수탈하고 자본가를 위해 일한다며 '미 연방은행'을 폐지한 포퓰리스트였습니다.
바이든의 당선으로 미국은 제자리로 찾아온 것 같기도 합니다. "모든 미국인을 위핸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그의 승리 연설에는 버락 오바마 시절의 향수가 느껴집니다. 그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트럼프는 굉장히 독특한 대통령으로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대통령 엔드게임'이라는 사설에서 "이번 선거 결과로 공화당은 미국의 대변되지 않은 소수자들에게도 어필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