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찹쌀떡 Jul 28. 2022

남들보다 느린 삶

아이 둘 엄마, 이번엔 박사과정 진학


작년 여름, 대학원 석사 학위를 받았다. 직장과 병행하는 게 쉽진 않았지만 뿌듯했다. 배운 걸 업무적으로도 써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내친김에 박사도?' 하고 잠시 생각했지만 이내 접었다. 박사과정은 직장과 병행하긴 힘들 것 같았으니까. 첫째가 초등학교 입학을 해서 신경 쓸 게 많은 때이기도 했다.


그러다 남편이 이직을 하며 주말부부가 되었다. 몇 달 해보니 주말부부는 할 게 못 되었다. 육아휴직을 낼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남편이 이왕 휴직하는 거 공부를 하면 어떠냐고 했다. 알아보니 대학원 진학으로 학업 휴직이 가능했다. 같이 근무하던 부장님께 먼저 상황을 말씀드렸다. 잠자코 듣고 계시던 부장님이 조심스레 말문을 여셨다.


"근데 굳이 박사과정을 밟아야 할까? 나도 대학원 박사를 하고 이 회사에 입사했지만 OO씨와 크게 다르지 않잖아. 그냥 최대한 젊을 때 취직해서 지금처럼 회사에서 일하며 월급 받는 게 베스트가 아닐까 싶어. 공부를 더하고 싶으면 대학원이 답은 아니야. 실력은 학위가 아니라 여러 경험을 통해 포트폴리오로 입증하면 되거든.


그리고, 박사과정이 그리 녹록지가 않아. 20대 젊은 나이에 공부해도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 작업인데. 정말 빨리해야 3년인데 보통은 5년을 잡아야 해. OO씨는 지금 아이도 둘이나 키우고 있고 나이도 있어서 쉽지 않을 거야. 자칫하면 시간만 하염없이 보내다가 성과가 없을 수도 있고."



부장님은 휴직도 찬성, 이직도 찬성(?) 하는 열린 분이셨지만, 박사과정에 대해서는 반기를 들었다. 당황스러웠다. 누구보다 배움을 권하는 부장님이셨는데. 주변에 대부분 '넌 할 수 있어!' 하는 덕담만 주로 해주는 분위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적인 지적이었고, 스스로 거듭 고민하던 부분이었다. 뭐라고 대답할까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회사에만 있으니까 과연 내 전문성이 무엇일까? 자꾸 고민이 돼서요. 대학원이 완벽한 정답은 아니지만, 그래도 뭔가 배우고 느끼는 바가 있지 않을까요? 전공도 업무랑 연관성 있는 분야고…. 일단 해보고 생각해 볼게요. 해봐야 '아, 이 길이 내 길이 아니구나', 혹은 '생각보다 할만한데?' 하고 마음을 정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머리는 정말 갈수록 안 돌아가는 게 느껴져요. 그래서 더 늦기 전에 하려고요. 자꾸 고민하며 미루다 보면 정말 못 할 것 같아서요. 아이들이 있으니 '짧고 굵게'는 못 할 것 같고 '가늘고 길게'요. 남들 하루에 열 시간씩 하는 거, 저는 하루에 한 시간씩 열흘 동안…. 혹시나 박사로 마침표를 못 찍더라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배운 게 없어지는 건 아니니까요."



*


그렇게 나는 올해 초 박사과정에 입학했다. 부장님께는 괜찮다 말했지만, 사실 입학하고 한 달은 후회했다. 새로운 지역에 아이들 적응시키랴, 수업 들으랴, 과제하랴 정신이 없었다. 수업과는 별도로 논문 작업도 진행해야 했다. 논문 진행은 2주마다 보고하기로 되어있었는데, 처음엔 2주, 다음엔 한 달, 그리고 이번엔 3달을 넘기고 말았다.


박사과정은 일반대학원이라 어린 학생들이 많다. 수업에서 만난 한 동기와 프로젝트에 대해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과외 알바도 하면서 대학원도 다니는 부지런한 학생이었다.


"배운 내용이 이해가 안 되는데 이론을 적용해서 하려니 더 어려웠어요. ( 나 : 맞아요, 저도요. ) 어제 오후부터 시작해서 밤새워서 겨우 끝냈지 뭐예요. ( 나 : 뭐라고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동기가 이틀 걸린 작업을 나는 열흘간 했기 때문이다. 물론 하루 종일 한건 아니고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했지만. 살며시 물어봤다. '근데 어제 시작했는데 걱정 안 됐어요? 저는 다 못 끝낼까 봐 일찍 시작했거든요.' 그랬더니 그녀가 수줍게 웃으며 대답한다. '아, 저는 저를 믿었어요.' 그렇구나. 안타깝게도 나에겐 밤샐 체력도, 빠른 두뇌회전도, 나에 대한 믿음도 없었다.


솔직히 늦은 것도 맞고, 느린 것도 맞다. 그래도 멈추지 않으니 한 발자국씩 나아가고 있다. 최소한 공부를 해야 할까? 하는 고민은 덜었다. 물론 공부가 하기 싫다는 스트레스는 크다. 하지만 마치 아무 생각 없이 마트에 갔다가 남아있는 포켓몬 빵을 득템하는 것처럼,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배움의 기쁨을 발견할 때가 있다. 그 희박하지만 유쾌한 경험 덕분에 공부를 이어나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에게 과외받는 엄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