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장애 완치됐나요?

괜찮지만 괜찮지 않은, 그렇지만 거의 괜찮은 것 같은

by 찹쌀떡

올해 봄과 여름 사이, 나는 드디어 공황장애 약을 끊었다. 의사는 문진표를 훑어보며 괜찮아져서 다행이라고 했고, 논문은 잘 진행되고 있냐고 물었다. 전부터 의사는 내 공황장애의 주된 원인을 논문 작성으로 인한 스트레스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몇 번이나 그게 원인이 아니라고 표현을 했지만(그렇지만 나도 원인을 잘 알지는 못한다), 내 완곡한 표현은 와닿지 않은 모양이었다. 나는 다소 포기한 마음으로 논문 진행상황 또한 괜찮은 것 같다고 답했다.


단약은 약의 복용량과 종류를 바꾸어가며 서서히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예 약을 먹지 않으면 다시 공황이 나타날까 봐 겁이 났다. 그래서 비상상황에 대비해 상비약을 달라고 요청했다. 의사는 비상시 먹을 상비약을 넉넉히 처방해 주었다. 아울러 상비약이 이전에 복용하던 약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상관없었다. 사실 약의 효능 여부보다도, 다시 그런 순간이 왔을 때 먹을 수 있는 약이 있다는 데서 오는 안도감이 더 컸다.


그렇게 나는 받은 상비약을 작은 지퍼백에 담아, 내 지갑에 항상 넣고 다니고 있다. 다행인 것은 그동안 한 번도 이 약을 먹을 일이 없었단 것이다. 그렇지만 다행이지 않은 것은, 공황증세가 아예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점일 테지. 나는 단약 이후에도 몇 번의 공황증상을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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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황장애는 죽지 않는 병이라고 한다. 죽을 것 같은 극심한 불안감을 느끼고, 심하면 쓰러지기도 하지만 죽음에 이르지는 않는 병. 한 유명한 코미디언은 그 말을 기억하며 공황장애를 마주할 때마다 스스로를 안심시킨다고 했다. 그렇지만 병인 만큼 괜찮지는 않다. 나에게 있어 공황장애는 내 일상의 즐거움을 앗아갔다.


나는 삶과 죽음, 힘든 일을 겪은 이들의 에세이를 즐겨 읽는다. 그들의 시선과, 무겁지만 진솔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이런 글들은 내가 공황장애를 겪은 이후, 공황장애 증상의 트리거가 되고 말았다. 어느 날은 지하철에서 '죽은 자의 집 청소'라는 책을 읽고 있었다. 이 책에는 특수청소업을 하는 저자가 죽은 이들의 집에 들어갔을 때의 순간들이 담겨 있었다. 그 모습을 떠올리던 나는 순간 갑자기 찾아온 공황 증상으로 지하철 바닥에 앉아 수차례 심호흡을 해야 했다.


작년 초, 나는 수영을 다시 시작했(었)다. 수영은 내가 어릴 때부터 해 왔고, 좋아하는 운동 중 하나였다. 수영장 속 차가운 물과 내가 내뱉는 뜨거운 호흡이 회사와 육아의 스트레스를 식혀주고 날려주었다. 수영을 하다 보면 숨이 차는 순간이 오는데, 힘들지만 운동의 효과를 맛보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나는 그 순간에 몇 차례 공황증상을 겪었고, 수업 도중 밖으로 나가야 했으며, 결국 수영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나는 여행을 즐기는 사람은 아니지만, 돌아다니는 걸 좋아한다. 특히 버스, 지하철과 같은 대중교통을 타고 다양한 사람들과 풍경을 구경하는 것이 즐겁다. 그러나 나의 공황증상은 버스, 지하철, 비행기와 같은 움직이기 힘들거나 사람이 많은 교통수단 안에서 자주 나타나곤 했다. 때문에 약속, 출장 등 이동할 일이 생기면, 사람들을 만나 느끼게 될 즐거움보다, 이동하는 동안에 느끼게 될 두려움이 나를 압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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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약 이후에도 나는 이러한 활동을 공황장애 전처럼 마음 편히 누리지는 못했다. 다시 공황증상을 마주할까 두려웠다. 그렇지만 그 두려움은, 내가 그것들을 누릴 수 없게 되었다는 억울함을 지나, 이젠 괜찮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서서히 이어졌다. 그리고 나는 하나씩 도전해보기 시작했다.


그전에 미처 다 읽지 못하고 반납했던 그 책은, 결국 다시 빌려서 완독 했다. 집에서 잠옷을 입고 침대에 편히 누워 읽다가 덮고, 다시 읽다가 덮기를 반복하긴 했지만. 역시나 내 마음에 드는 책이었다. 어느 날은 아이들과 자유수영도 다녀왔다. 물장구에 가깝긴 했지만, 그래도 물에 대한 두려움도 다소 사그라들었다. 이동과 여행은 가까운 여행지부터 차츰차츰 거리를 늘려나갔다. 얼마 전에는 무려 시댁 식구들과 함께 해외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지갑 속 약을 비행기에 들고 탔지만, 그 약을 먹을 일은 없었다.


누군가 나에게 공황장애가 완치됐냐고 묻는다면? 글쎄. 공황장애가 완전히 사라진 게 완치라 한다면 부합하지 않을 것 같다. 그래도 약 없이 나만의 방식으로 불안과 증상을 좀 잠재웠다가,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는 단계를 완치로 본다면 완치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괜찮았다가, 종종 괜찮지 않지만, 그래도 전반적으로 거의 괜찮은 상태에 있다. 내 즐거움들을 한 입에 꿀꺽, 하진 못해도 야금야금 맛보고 있는 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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