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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찹쌀떡 Aug 24. 2021

졸업장의 의미

워킹맘의 석사학위 취득 이야기

회사에 입사하고 일 년쯤 지났을까. 대학원이 가고 싶어졌다. 사람 심리가 참 이상하다. 취업이 안 돼서 대학원을 가겠다고 했을 땐 공부가 그리도 하기 싫더니. 막상 회사에 다니고 있으니까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당시의 나는 공부보다 학위가 필요했던 것 같다. 부서원 대부분이 석사 이상이었다. 사업계획서에 학력을 기재하게 되어 있었는데, 다들 박사, 석사를 적어 냈다. 내 이름 옆에만 ‘학사’라고 적혀있을 때가 많았다.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는데 괜히 위축됐다.


알아보니 일부 대학원은 회사와 병행을 할 수 있었다. 전공은 크게 고민하지 않은 채, 갈만한 대학원을 알아보았다. 일단 한 학기 등록금은 모아둔 상태였다. 주변 분들에게 대학원을 가겠다고 했다. 대학원을 졸업한 몇몇 분들은 말했다. ‘학위 의미 없어, 그냥 빨리 취직한 게 장땡이야.’


굴하지 않고 대학원 면접을 봤다. 합격했다. 하지만 회사와 학업을 병행하는 게 쉽지 않았다. 당시 우리 회사는 야근이 많았다. 학교까지의 교통편도 그리 좋지 않았다. 게다가 당시 사귀고 있는 남자 친구와 결혼을 준비하고 있었다. 대학원은 우선순위에서 점차 밀려났다. 결국, 대학원 입학처에 입학 포기 전화를 걸었다. 




그로부터 십여 년이 지났다. 나는 회사와 병행할 수 있는 대학원 석사과정에 입학했다. 이번엔 학위보다 공부에 대한 갈망이 더 컸다. 주변에서는 말했다. '나이 들어서 가면 힘들어', ‘대학원 간다고 공부하는 거 아냐.’ 이미 대학원에 다니고 있던 남편만 봐도 그래 보였다.(..) 그래도 갈래요. 전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봐야 아니까요. 


2년이 정신없이 돌아갔다. 회사에 다니고, 아이 둘을 키우며 학업을 병행하는 건 생각보다도 더 힘들었다. 퇴근하면 다시 등교했다. 하루의 육아가 끝나면 공부가 시작됐다. 하루를 쪼개고 쪼개서 썼다. 늦은 밤, 과제를 하다 보면 이런 생각이 절로 들었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린다고 이러고 있나.’


공부하고자 하는 마음은 갖추었지만, 공부하는 머리는 준비되어 있질 않았다. 수업을 들어도 이해가 안 됐다. 책을 뒤적이고, 관련 문서들을 훑어보았다. 구글을 수백 번도 더 검색했다. 나오는 건 ‘아하!’하는 감탄사가 아니라 ‘하아….’ 하는 한숨뿐.


멈춰있는 머리를 이리 밀고 저리 밀며 느리게 굴렸다. 잘하겠다는 마음은 버린 지 오래였다. 일단 하는 데까지 해보자. 어찌어찌 과제를 완성하고 제출했다. 답안지에 아는 만큼 적어냈다. 나 자신이 바보 같다가도, 나 자신이 그렇게 기특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작은 산들을 넘어가며 한 학기, 일 년, 이 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지난주, 석사 학위를 받았다. 사실, 대학원을 졸업할 무렵에는 내 지식이 껑충 뛰어있을 줄 알았다. 학위가 생기면 마음이 좀 더 가벼워지고 당당해질 거라 기대했다. 안타깝게도 지식은 멀리 나아가지 못했다. 확실히 알게 된 것은 이것이다. ‘내가 모르는 게 이토록 많았다니.’ 마음은 더 무거워졌다.


전에 대학원 교수님 한 분께 메일을 보낸 적이 있다. 별로 두각을 나타내는 학생이 아니어서 나를 기억하실까 싶었다. 어떤 수업들을 들었었다, 하고 살짝 운을 띄웠더니 기억하고 계시단다. 메일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아주 열심히 하셨던 것이 생각납니다.’ 잘한다는 칭찬이 아닌, 열심히 한다는 칭찬. 당시엔 감사하면서도 좀 씁쓸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칭찬 같다.


대학원을 다니며 나에게서 세 가지를 발견했다. 공부에 대한 의지. 일단 해보겠다는 자세. 그리고 실행. 졸업장은 검은색 잉크로 쓰인 종이 한 장일 뿐이지만, 그 안에는 열심히 노력한 내 흔적이 담겨있다. 내 ‘열심’을 인정받은 증거다.




사실 코로나라 졸업행사도 없고, 일반대학원생도 아니라 주변에 졸업한다고 이야기를 안 했다. 그런데 졸업하는 당일, 집에 택배 하나가 도착했다. 발신자는 대학 친구. 택배 상자를 열어보니 예쁜 꽃다발 하나가 들어있었다.



얼마 전 집 주소 그대로냐고 물어보길래 뭐지? 싶었는데 이런 서프라이즈라니. 꽃도 너무 예뻤지만, 카드 내용이 마음을 울렸다. 내 졸업을 기억해주고, 여름이라 해바라기를 고르고, 시원한 포옹까지. 감동 그 자체였다. (남편에게도 받아보지 못한 꽃과 축하를 받다니!)


잠시 반성도 했다. 나는 누군가를 이렇게 세심하게 챙겨주었던가. 큰 탈 없이 졸업할 수 있었던 건 나 홀로 악착같이 노력해서가 아니라, 옆에 소중한 사람들이 응원해주고 위로해줘서 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어쩌면 대학원에서 얻은 건 지식보다도 내 '열심'과 더불어 소중한 '사람들'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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