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뒤 나는 어떤 모습일까
개인 사무실을 갖게 되었다. 내 취향의 벽지와, 가구와, 소품으로 채워 넣었다. 사실 ‘채워 넣었다’라고 하기엔 심플하다. 널찍한 책상, 커다란 책꽂이, 손님맞이용 테이블과 의자가 전부다. 내가 듣고 싶은 잔잔한 노래를 틀어놓고, 선물로 받은 작은 화분 하나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한 동료는 내 사무실을 방문할 때마다 이야기한다. ‘참 너다운 공간이다.’ 나는 그 말이 참 마음에 든다.
예전엔 여러 사람과 한 공간에서 일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아니다. 내 공간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편리하고 편안한지. 책상 옆 창밖으로는 산책로가 보인다. 길 한 편에는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고, 반대편에는 작고 맑은 호수가 있다. 나는 저 길을 ‘충전길’이라 부르고 있다. 일하다 답답하거나 몸이 피곤할 때 저 길을 잠시 걷고 온다. 그러면 머리도, 몸도 충전되는 기분이 든다. 지금 사무실을 좋아하는 건 실내공간보다 저 길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오늘 점심에는 사무실 근처 식당에서 약속이 있었다. 신선한 재료를 듬뿍 담은 샐러드 파스타가 유명한 집이다. 식당에 들어서니 이미 저쪽에서 손을 붕붕 흔들어대는 무리가 보였다. 전 직장에서 함께 근무했던 동료들이다. 왜 이렇게 빨리 왔냐고 물으니 A가 ‘보고 싶어서 일찍 왔죠!’라는 깜찍한 대답을 내놓았다. 여전히 밝고 귀여운 후배다.
음식 주문을 하고 나는 내 앞에 앉아있는 동료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동료들과 일했던 몇 년 전 나의 모습을 떠올렸다. 당시 나는 소위 ‘잘 나가는’ 누군가를 바라보며 부러워했다. 나 또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두렵기도 했다. 안정된 직장, 적지만 따박따박 받는 월급을 내려놓기란 쉽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내가 꿈과는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걸 깨달은 순간, 나는 방향을 틀어 새로운 선택을 했다.
“요즘 하시는 일은 어때요?”
B가 포크에 돌돌 말은 파스타를 입에 넣으며 물어 왔다. 내가 지금 하는 일은 여러 방면에서 수요가 높은 분야다. 또한, 계속 공부를 해야 하는 분야이기도 하다. 그래서 페이도 꽤 쏠쏠하다. 무엇보다 나는 이 일을 좋아한다.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이자, 스스로 발전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내 일이 좋다고 냉큼 대답하면 좀 건방져 보이지 않으려나….
내가 머뭇거리자 A가 웃으며 ‘좋으시면 그냥 너무 좋다고 하세요!’라고 핀잔을 줬다. 그새 내 얼굴에서 내 마음을 읽은 모양이었다. 역시 속일 수가 없다. 결국 ‘그래 좋아, 그러니까 너희들도 빨리 넘어와.’라고 대꾸했다. 그랬더니 너무 보기 좋다고 말해 주었다. 서로 근황이 어땠는지, 요즘 희망 사항은 무엇인지 이야기했다. 얼굴만 바라봐도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이래서 우리의 인연이 계속되는 것 같다. 기쁜 일이 있으면 마음을 담아 축하해주고, 서로의 꿈을 들으며 분명 될 거라고 강하게 응원해주는 사이니까.
밥을 다 먹고 모두 전철역으로 향했다. 동료들이 사무실에 안 가고 어딜 가냐고 뭐라 했다. 이번에는 머뭇거리지 않고 바로 대답을 했다. “나 오늘 할 일은 오전에 다 했어. 그러니까 지금 퇴근해도 돼.”
‘거짓말하고 땡땡이치는 건 아니죠?’, ‘날로 먹네(?)’, ‘와 진짜 거기로 가야겠네’ 하는 아우성이 이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모두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다. 역 앞에서도 한참을 서서 이야기하다가, 앞으로도 이렇게 종종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겨우 헤어졌다.
집에 거의 다다르니, 마음이 바빠졌다. 아이들이 왔으려나? 얼른 집에 가고 싶다. 그런데 마음과 달리 갑자기 발걸음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집 근처 빵집에서 풍겨 나오는 고소하고 달콤한 냄새가 내 발목을 잡았다. 홀린 듯이 빵집 안으로 들어가 빵을 몇 개 담았다.
집에 들어서니 아이들이 나를 반겼다. 거실 한가운데 테이블 위에는 책과 노트들이 놓여있었다. 숙제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방금 산 따끈따끈한 빵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아이들 표정이 한층 더 밝아졌다. 나도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커피 한 잔을 연하게 탔다. 아이들이 앉아있는 테이블 옆에 나란히 앉았다. 아직 낮이라 햇살이 좋다. 이 테이블에 앉아 책을 읽고,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노라면 마음속 행복이 잔잔하게 넘실거린다.
저녁엔 남편과 둘이서 집 근처 공원을 걸었다. 아이들이 크니 이렇게 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됐다. 점심에 동료들과 나눈 말들, 최근 회사에서의 이슈, 주말의 여행 계획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물론 남편과 걷는 이 길이 항상 오늘처럼 즐겁지만은 않았다. 때로는 마음이 터져나갈 듯한 괴로운 일들, 나도 모르게 눈물을 훔치게 되는 슬픈 일들이 이 산책길에 함께 하곤 했다.
살면서 행복한 일만 있을 수는 없다. 그래도 나는 삶이 두렵기보다 기대된다. 빵 냄새처럼 달콤하고, 아이들 웃음처럼 기분 좋은 일들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또한, 나에게는 소중한 사람들이 있다. 나를 믿어주는 사람과, 나를 믿어주는 나 자신.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이 순간이 나에겐 행복이다. 옆에 걷던 남편의 손을 넌지시 잡았다. 남편이 씩 웃었다. 그에게도 지금의 내 행복이 전해진 것일까.
내가 원하는 미래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그 모습을 한 번 그려보았다. 즐거운 주제인데도 글이 잘 써지지 않았다. 경험하지 못해서 일까, 아니면 현실이 미래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기 때문일까. 궁금하다. 과연 몇 년 뒤 나는 어떻게 살고 있을지. 미래의 내가 읽길 바라면서 이 글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