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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피오 Jan 24. 2017

[베트남/무이네]D10_오토바이 타고 해변 노닐기

그녀와의 진솔한 대화

3월 16일 수요일


여유롭게 늦잠을 자고 싶었으나, 새벽부터 일출 투어를 가는 사람들의 움직임에 눈이 일찍 떠졌다. 그녀도 나와 같았는지 아침 9시도 채 되기 전에 놀러 나가자며 날 부른다.


간단하게 씻고 오전에는 오토바이를 빌려서 무이네 해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무이네는 작으니깐 기름은 2리터만 채웠다. 길거리에서 반미랑 카페 쑤다를 사서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해변을 향해 달렸다.


우선은 내일모레 호치민으로 갈 버스 티켓을 정리하기로 했다. 어제 내가 하루 종일 그녀를 기다리던 비엣낫 투어 (Viet Nhat travel)으로 갔다. 카운터의 직원이 날 알아보더니 인사를 건넨다.


“너 혹시 어제 하루 종일 여기에서 친구 기다리던 애 아냐?”

“응, 그거 나 맞아.”

“친구는 만났고?”

“지금 같이 있는 이 친구야.”

“(웃으며) 이 친구 어제 하루 종일 여기에서 너만 기다렸어~ 잘해주렴.”


그녀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날 바라본다.


“뭘 또 감동받고 그래, 한국 남자 원래 다 이 정도 해.”

“누가 뭐래? 감동은 무슨. 바보야 바보.”


금요일 호치민으로 가는 티켓을 예약하고 해변을 찾아 나섰다. 말이 찾아 나선 거지 어딜 가나 해변이기에 오토바이로 최대한 해변 근처까지 가서 안전하게 세울 수 있는 곳을 찾았다.


해변에 도착해서 걷기 시작했다.

둥근 배들이 까이뭄 이다.

수영을 즐기는 서양인들, 낚시 삼매경인 베트남 아저씨, 까이뭄이라는 둥근 바구니 같은 배를 타고 물고기를 잡으러 나갈 채비를 하시는 어부들, 우리같이 한가로이 산책 중인 사람들.


조금 걷다 보니 정박되어 있는 까이뭄들이 있다. 안에 들어가서 앉아보았다. 이걸 노 저어서 바다로 나간다니, 그저 신기할 뿐이다. 


배 안에서 사진을 찍는데 그녀가 한국 노래를 들려달라고 한다.

내 휴대폰에는 크라잉넛 노래와 토토가가 유행할 때 다운로드한 90년대 음악뿐이긴 했지만 그녀가 신나는 노래들을 들으니 좋아한다. 혼자 춤도 춘다.

아침부터 저런 춤을 추다니... 중국인들이 확실히 흥이 넘치는 것 같다.


춤을 추고, 또다시 해변을 걷다가 야자수 나무 아래 자리를 잡고 앉았다.

우리는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동안 서로에게 궁금했던 모든 것을 물었고, 대답해 주었다. 그리고 그녀는 내 희망의 불꽃에 싸늘한 바람을 불어 불꽃을 꺼트렸다.


“동생은 언제 결혼할 거야?”

“글쎄, 좋은 사람이 나타나면?”

“나는 내년에 할 거야?”

“정말? 하하, 누구랑?”

“나 농담 아니야, 내년에 결혼하기로 약속한 사람이 있어.”

“…”

“왜 혼자 심각해? 우리 어차피 여행하다 만난 친구잖아? 설마 결혼까지 생각했던 거야?”

“결혼에 대해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남자 친구도 아닌 약혼자가 있다는 이야기는 조금 놀라워.”

“더 늦게 말하면 더 크게 놀랄까 봐, 이제는 말해야 할 것 같아서 말한 거야.”

“그랬구나, 용기 내어 말해줘서 고마워.”

“지금까지 내 모든 남자 친구 들은 너처럼 마르고 호리호리한 남자들이었는데, 이 사람은 정말 달라, 통통하고 배가 나왔어. 곰돌이 푸처럼.”


전혀 예상치도 못한 그녀의 한마디는 나를 멘붕에 빠트렸다.

순수했던 내 감정에 눈 앞에 보이는 시원한 바닷물을 들이 부운 듯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왜 이런 이야기를 했을까? 를 생각해보니, 고작 일주일도 안 되는 시간을 같이 여행하면서 그녀도 나에게 정이 들긴 들었던 것 같다. 사랑? 정? 약속? 어찌 보면 본인의 사랑에 대한 순수한 감정을 솔직히 말해준 듯하여 오히려 내 마음도 편안해졌다.

이제 더 이상 썸 따위를 타지 않아도 된다. 그냥 여행 메이트인 중국 여자일 뿐이다.


“안타깝지만, 너의 결혼식에는 가지 못할 것 같아.”

“왜?”

“내년에 나는 취직해서 열심히 일하고 있을 예정이거든.”

“흥, 초대한다고 말한 적도 없어.”

“ㅋㅋ 배고프다 점심 먹고 오후 투어나 하러 가자.”

샌듄 선셋 투어에 밥을 먹고 늦지 않게 가려면 서둘러 점심을 먹어야 했다.

바다가 코앞에 보이는 작고 예쁜 식당을 찾았고, 코코넛 크림 카레라이스를 시켰다. 서로에 대한 속마음을 이야기하고선 확실히 우리 둘 사이가 더 가까워지고 편해진 듯하다.


“이거 카레야? 똥이야?”

“응 소똥.”

“그렇구나, 늦었으니깐 얼른 똥에 비벼서 빨리 먹자.”


영어 선생님 같은 고급 영어만 구사하던 그녀가 은어 비속어 등을 편안하게 사용하기 시작했다. 외국어 처음 배울 때 인사 다음에 욕이라고 했던가? 나는 빠르게 그녀의 영어를 습득해갔다.


밥을 먹고 시계를 봤는데, 약속된 투어 시작 15분 전이다.

마음이 급했다.

출발 전에 지도를 확인하고 달렸다. 10여분을 달렸는데 숙소가 나오지 않는다.


‘혹시 지나쳤나?’


하는 불안감도 있었지만, 내 감을 믿고 계속 달렸다. 그리고선 우여곡절 끝에 숙소에 도착하니 투어 출발 1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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