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명불허전
모스크바 서쪽에 위치한 노보데비치 수도원으로 가기 위해 Spartivnaya(спортивная) 역에서 내렸는데 오늘도 눈발이 날린다. 지도를 보니 10여분은 걸어야겠다. 엄청 춥다.
10여분을 걸었더니 어느 블로그에서 나온 무료 출입구가 보인다. 할머니 두어 분도 들어가시길래 따라 들어갔는데.... 여기 공동묘지다.
어쨌든 무료입장이라는 희망을 품고 공동묘지를 뚫고 노보데비치 방향으로 갔다. 큰 문을 찾았다.
굳건하게 닫혀 있었다. 여길 다시 돌아서 나가야 하네... 살다 살다 공동묘지 관광을 다해봤다. 이래서 공짜 좋아하면 안 된다.
나중에 숙소 들어와서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서 만났던 청년이랑 얘기하는데 오늘 나보다 일찍 노보데비치를 갔다가 역시나 그 블로거한테 낚여서 나랑 똑같이 묘지 관광 먼저 하고 입구로 갔다고 한다.
뭐 그 블로거는 노보데비치 수도원을 공짜로 봤겠지만, 나와 그 청년은 공짜로 공동묘지 구경을 실컷 했다.
다시 한참을 돌아 나왔다. 추운데 사람도 없으니깐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으슥했다. 진짜 노보데비치 수도원의 입구를 찾았다. 입장료는 300 루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한 이곳은 러시아 정교회의 수녀원이며 역사적으로 중요했다고 한다. 바로 옆에 큰 묘지가 있는 것도 아마 같은 이유일 듯? 바로 앞에 호수가 있다는데 눈 밖에 없어서 못 봤고 저 멀리 모스크바 국립대와 모스크바 서쪽 금융단지인 모스크바 시티도 보인다.
유독 성모 성화(이콘)가 많아서 왜 그런가 했더니, 노보데비치 수도원은 러시아 정교회의 가장 고귀한 성소인 스몰렌스크의 ‘호디기트리아(Hodigitria, 길의 인도자 성모)’ 성모 마리아 성화를 위해 헌정되었다고 한다.
16세기에 세워진 수도원은 '모스크바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졌고, 흰색 회반죽을 칠한 외벽은 지붕 선 위에서 반원형으로 마무리되는 각각의 구역과 수직으로 연결된다. 흰 눈과 흰 벽, 그리고 방금 전까지 내린 눈으로 흰 구름이 덮인 하늘. 한겨울에 만난 순백의 미가 이런 것이 아닐까 싶었다.
아까 공동묘지에서 문을 찾았었는데, 위 사진이 노보데비치 수도원에서 본 아까 그 문이다. 무덤가에서 봤던 모습과는 다르게 몇 년이나 저 자리를 지켰을지 모를 나무와 함께 보고 있으니 금방이라도 로빈훗이 동료들을 이끌고 뛰어나올 것 같았다.
보통 여기 오면 72m짜리 붉은 벽돌로 쌓고 흰 벽돌로 장식한 종탑을 보러 많이 오는데, 공사 중이었다.
2016년도 1월에 방문한 블로거가 공사 중이라고 했는데 2016년 12월에도 그 공사가 끝나지 않았다.
수도원 안에서도 유독 무덤들이 눈이 띄었다. 알고 보니 정말 유명해야 이 수도원에 무덤을 가질 수 있고 저명하거나 부유한 귀족이어야 수도원 옆 공동묘지에 묻힐 수 있다고 한다. 고 옐친 전 대통령도 바로 옆 공동묘지에 계신다고 한다.
아무것도 모르고 가서 봤을 때는,
1. 아 그냥 수도원이구나.
2. 흰색을 좋아하는구나.
3. 수도사들은 검은 망토를 입었구나.
4. 십자가가 특이하다.
이 정도였는데 조금 알고 다시 보니,
1. 나름 도시 설계를 갖추고 만든 전략적이며 중요한 장소이었구나.
2. 러시아 정교회의 상징이구나.
3. 십자가 아래쪽에 있는 사선은 예수님이 발을 올려두셨던 곳이구나.
4. 나폴레옹 군대가 쳐들어 왔을 때도 굳건히 잘 지켜진 곳이구나.
5. 이 앞 호수가 차이코프스키가 '백조의 호수'의 영감을 받은 곳이구나.
6. 유리 가가린도 이곳에 묻혔구나.
7.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독립운동가 김규면 장군님도 잠들어 계시는구나.
역사와 이야기가 있는 곳, 여기는 노보데비치 수도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