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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피오 Feb 06. 2017

23th_얻어걸린 10월 혁명

스몰니 성당 혹은 스몰리 수도원

러시아에서 보내는 마지막 일요일.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중심에서 살짝 벗어난 곳에 위치한 상트 장로교회를 찾았다. 다음 주 일요일이 크리스마스이기에 오늘을 대림절이라고 부른다. 화려한 세상 사람들의 축제가 아닌 이 땅에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 탄생의 의미를 이번 여행간 참 많이 묵상한 것 같다.

사진을 자세히 보면 멀리 십자가 우측 창문에 토끼섬 '피터앤폴 성당' 이 그려져 있다

예배가 끝나고 시간도 어정쩡하고 호스텔 근처까지 한 번에 환승 없이 가는 버스가 있길래 찾아서 탔다

상트에서 처음 타는 버스, 그리고 이번 여행간 처음으로 전철처럼 도로 위에 있는 전선에서 전기를 받아 운행하는 버스를 타보았다.


버스는 상트 외곽 동네를 천천히 출발했다. 관광지 같은 곳만 다니다가 정말 사람이 사는 동네로 들어온 것 같았다. 아파트 모델하우스도 있고 주말을 맞아 아이들과 공원에서 놀고 있는 부부들도 볼 수 있었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라고 들었는데 약간 중심부만 그런 것 같다. 도시 바깥쪽에는 새로 지은듯한 아파트들도 종종 보였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되면 신축은 물론이거니와 개보수도 엄청 까다로워서 건물에 함부로 손을 대지 못한다고 들었기 때문에 상트 외곽 도시는 내게 사람 사는 냄새뿐 아니라 이곳이 세계문화유산이었다는 것을 다시금 생각하게 해주었다.

노보체르까스까야(Novosherkasskaya)역 근처에 교회가 있었다.

교회를 찾아갈 때는 지하철로 가서 못 봤었는데 강 건너에 있었다. 버스는 시 외곽을 돌더니 네바강의 한 다리를 건넜다. 강을 건너는데 날씨 좋은 여름에 유람선을 타면서 상트를 구경하면 예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물들도 예쁘고 다리도 예쁘고 저 성당도 예쁘다.


다리를 건넌 버스가 점점 아까 그 예쁜 성당 근처로 간다. 버스가 정거장에 도착했고 승객들이 타고 내렸다. 1초의 고민 끝에 나도 내렸다. 여기 이 자리에서 같은 버스 또 타지 뭐. 30 루블 정도면 비싼 입장료보다 낫지.


모스크바에서 구매한 유심칩의 충전금액을 내가 다 사용했는지 어제부터 휴대폰에서 데이터가 터지지 않았다. 미리 구글 지도를 다운로드하여왔지만 손도 시리고 저 멀리 성당도 보여서 그냥 성당만 바라보고 걸었다.


그리고 이 겨울, 눈, 상트페테르부르크, 러시아와 가장 잘 어울리는 성당을 마주했다.

하늘이 예뻤으면, 덜 어두침침하였으면 더 예뻤겠지만 날씨가 이래도 저 정도로 예뻤다.

아니 이 날씨에 저만큼 날 사로잡은 성당은 없었다.

흰색과 코발트색, 그리고 희끄무레한 하늘과 살짝 쌓여있는 눈이 정말 조화로웠다.


* 이름 : 스몰니 성당, 스몰니 수도원 (Smolny Cathedral, СмольныйСобор) 스몰니가 맞는지 스몰리가 맞는지 모르겠다.
* 주소 : pl. Rastrelli, 1, Sankt-Peterburg, 러시아 191060

마침 일요일 이기도 했거니와 내부가 너무 궁금해서 안에도 들어가 봤다. 역시나 강대상과 회중용 의자는 없다. 간간히 보이는 개별 신자들이 성화(이콘)에 기도를 하고 있었다. 안에도 바깥과 비슷하게 흰색과 코발트색으로 되어있다. 겉에서 보는 것만큼 내부의 천장도 높다. 성화들로 가득 차 있었던 다른 성당과는 다르게 약간 벽면이 더 많이 보이는 느낌이었다. 휑하다고 할까. 그래도 전혀 정보가 없었던 장소를 우연히 발견하고 생각보다 본능에 이끌리어 찾아온 이 성당. 러시아 여행의 말미에 이제 좀 내가 여행자 같다는 느낌이 들게 해주었다. 구글 지도를 켜고 (오프라인 맵을 미리 다운받아서 데이터가 없어도 볼 수 있다) 현 위치를 찾아봤더니 이 성당의 이름이 스몰니 성당이란다. 숙소에 들어가면 와이파이에서 검색해봐야겠다.


숙소로 복귀해서 스몰니 성당에 대해 검색해보고 너무 놀랐다.


스몰니 성당(수도원)은 1764년 예카테리나 2세가 귀족 소녀들의 기숙학교로 설립한 러시아 최초의 소녀들을 위한 여학교였다. 예카테리나 2세는 남편이었던 표토르 3세를 폐위시키고 본인이 스스로 황제에 오른 인물이라고 한다. 더 놀라운 것은 1917년 10월 혁명 당시에 레닌을 중심으로 한 작전 본부가 바로 이곳에 설치되었고 10월 25일 소비에트 정권 수립 선언도 바로 이곳에서 이루어진 역사적인 장소가 바로 스몰니 수도원이라고 한다. 1918년 수도가 모스크바로 옮겨지기 전까지 이 수도원이 수도의 중심 역할을 했다고 한다. 현재는 가끔 전시회도 하고 성당 건물에서는 미사도 드린다. 입장료는 없었고 나중에 보니 옥탑 전망대도 올라갈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성당 옆 수도원 건물의 경우 상트페테르대학교의 단과대(국제관계학) 건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정말 자료 하나도 없었고 지나가다 얻어걸린 성당인데 이토록 역사적인 곳이었을 줄 몰랐다. 

외관만 보고 러시아에서 그동안 봤던 성당 및 건물 중 가장 겨울과 잘 어울리는 외관과 색감이다. 겨울왕국에서나 나왔을 법한 성당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마어마한 곳이었다.

심지어 여기가 상트페테르부르크 4대 성당 중 하나라고 한다.
4대 성당은 성 이삭 성당, 피의 사원, 스몰니성당 그리고 핀란드 역 위쪽에 있는 무슨 성당 이랬는데...  거기보단 카잔 성당을 넣는 게 어떨는지 싶다. 아닌가? 알렉산더 넵스키 수도원인가?




아 그리고 검색해서 나중에 안 사실 한 가지 더.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가장 크고 화려하고 중심에 있는 큰길 이름이 '넵스키 대로'이다. 왜 넵스키 대로일까 궁금했는데, 일단 길이 해군본부가 있는 성 이삭 성당에서부터 바로 위에 언급한 알렉산더 넵스키 수도원(Alexander Nevsky Lavra)까지 이르는 직선 길이다. 그렇다면 알렉산더 넵스키 수도원이랑 관계가 있다는 건데, 알렉산더 넵스키는 누구일까? 알렉산더 넵스키는 러시아의 대공이자 군사 지도자였으며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수호성이라고 한다. 그의 유해를 모시기 위해 만든 게 알렉산더 넵스키 수도원이고 1797년 이 수도원은 황제 파벨 1세에 의해 가장 높은 등급인 '라브라'(Lavra : 러시아 정교회에서 가장 중요하고 규모가 큰 수도원을 일컫는 말)로 승격된 러시아 정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유적 중 하나라고 한다. 그리고 종교적으로 중요한 알렉산더 넵스키 외에도 표트르, 차이코프스키, 도스토예프스키 등 저명한 인물들이 잠들어 있다고 한다. 물론 16개였던 교회가 구 소련 시절을 거치면서 5개밖에 남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러시아가 낳은 문화예술인들의 마지막 안식처로 남아있다고 한다.


알렉산더 넵스키 수도원도 다음번 상트 페테르부르크 방문 시 꼭 와봐야겠다.

5박 6일이나 있었지만 핀란드로 간다는 흥분과 짓궂은 날씨 덕분에 충분한 휴식 위주의 여행지로만 기억이 남는다. 꽃이 피고 하늘이 맑은 날 다시 꼭 와봐야겠다. 남들은 상트가 그렇게 좋았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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