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섬, 로스트랄등대, 청동기마상, 스핑크스
어젯밤에는 분명 걷기 좋았다. 오늘도 걸어야겠다. 그전에 일단 토끼섬까지는 버스를 타자.
토끼섬에 들어가는 다리가 2개가 있는데 나는 버스 7번을 타고 내려서 지도상 서북쪽에 있는 다리를 건너서 토끼섬에 들어갔다.
이 안쪽이 토끼섬이다. 근데 왜 토끼섬이지? 토끼를 많이 키웠었나?
구글 지도에서 찍어보면 피터 앤드 폴 포트레스라고 나온다.
그니깐, (피터=페트로=표트르=베드로)이고 (폴=파블로프=바울) 이 된다.
멀리에서는 안개 때문에 꼭대기가 보이지 않던 피터 앤 폴 성당(Peter and Paul Cathedral) 이 시야에 들어온다. 가까이에서 보니 근사하다. 높이만 122m. 입장료 있음.
섬 안 구석구석 숨어있는 토끼 동상들을 찾아다니다가 유료로 오를 수 있는 성벽 근처에 갔는데, 성 벽 위는 물론 아래쪽에서 사람들이 많았다. 심지어 다들 카메라를 꺼내서 동영상을 찍고 있었다. 뭔가 있다보다 하고 나도 카메라를 꺼내 동영상 촬영을 시작했다.
12시 정각이 되자 성벽 위에서 박격포 2발을 발사했다. 공포탄 이겠지만.
오랜만에 들어본 공포탄 소리가 어마어마했다. 군대에서 들어본 사람은 알 거다.
비록 공포탄이지만 발사되니깐 주변 차량에서 도난경보 알람이 울렸을 정도로 진동 또한 굉장했다.
근데 왜 쏘는 거지...?
토끼섬에서 점심을 먹고 나오니깐 비가 내린다.
러시아에서 겨울에 비 맞을 줄이야...
뭐 근데 다들 우산 안 쓰고 잘 다닌다. 딱히 대책도 없다. 호스텔에 다시 가서 우산을 꺼내오기도 애매하다.
가랑비에 옷 젖을 정도?
덕분에 플라잉 더치맨은 그냥 스치듯 지나가면서 봤다.
플라잉 더치맨을 보고 로스트랄 등대를 보기 위해 다리를 건너는데, 오가는 차들이 흙탕물들을 나에게 미스트처럼 뿌려주셨다. 내 패딩 방수 안되는데 다 흡수하겠구먼.
나는 지금 러시아에 있습니다. 심지어 겨울입니다. 근데 비가 내려요.
로스트랄 등대가 2개가 있는데 양쪽에 다 제우스가 있는데 제우스가 삽인지 아무튼 무언가 들고 있는 손이 다르다.
평소 같으면 이 자리가 명당자리일 것이다. 이 닻 뒤에 옛 증권거래소가 있기 때문이다.
로스트랄 등대 2개 사이에 옛 증권거래소 건물이 있다. 여기가 바로 50 루블 지폐 뒷면에 나오는 유명한 곳인데 아까 밥 먹고 돈 낸다고 50 루블 짜리 지폐를 사용해서 인증샷을 찍을 수 없었다.
다음에 또 오라는 하늘의 뜻을 자꾸 보여주신다.
비가 온다는 건 영하가 아니고 영상이라는 건데, 러시아 사람들하고 중국 관광객들이 다 얼은 네바강 위에서 한 장씩 찍길래 나도 찍었다.
얼음 녹아서 빠지면 구해주겠지 뭐 사람도 많은데...
강 입구 쪽에 웨딩카들과 전세버스들이 많이 서 있었다. 여기가 약간 웨딩 포인트인가 보다. 내려가서 보니 하객들과 신혼부부들이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매우 추워 보였지만 신혼부부들만큼은 행복해 보였다. 샴페인을 다 같이 한 잔 하더니 바닥에 던져서 깬다. 비둘기도 잡고 뭐라 뭐라 말하더니 하늘로 날린다. 알아 들어서 의미를 알면 참 좋겠지만, 봤다는 것에 의의를 두자.
근데 뭘 자꾸 돌아다니면서 이것저것 하는지 모르겠다. 따로 예식장에서 식을 안 올리고 이동 결혼식을 하는 게 문화인가? 아니면 결혼식 뒤풀이를 내가 본건가?
제우스 뒤쪽에는 헤라가 앉아있고 위에 조형물은 배 앞머리인데...
음 그니깐 이게 뭐냐면,
로스트랄은 라틴어로 뱃머리라는 뜻이다. 예전 고대 그리스나 로마에서는 해전에서 승리하면 기념으로 포획한 뱃머리로 기둥을 장식했다는데 러시아가 이를 본떠 해전 승리를 기념으로 세웠다고 한다. 스웨덴이랑 해전에서 침몰시킨 스웨덴 전함의 뱃머리 하고 한다.
호스텔 스탭이 하루에 한 번인가 다리가 열린다고 했는데 이 다리인가 보다. 틈이 꽤 벌어져있었다. 그리고 딱 그 사이로 배가 지나가면서 얼음이 깨진 뱃길이 보였다.
다시 다리를 건너 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된다. 강을 따라서 간다.
강 건너편으로 상트 페테르부르크 대학교와 에르미타주 통합권으로 입장 가능한 멘시코프 궁이 보인다.
성 이삭 성당도 슬슬 보이는 걸로 봐서, 청동 기마상이 멀지 않았다.
강변으로 걷다 보니 성 이삭 성당 앞쪽으로 청동 기마상이 보였다. 역시나 신혼부부들과 일행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차들이 흙탕물을 너무 튀기고 횡단보도도 따로 없어서 이따가 스핑크스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다시 보려고 마음먹었는데, 결국은 가까이에서 보지 못했다.
예카테리나가 표트르를 기리며 만들었다나? 암튼 저 청동 기마상 아래 받침돌이 인류가 기계나 동물의 힘 없이 움직인 가장 큰 단일 규모의 화강암이라고 한다. 화강암의 높이만 12m, 둘레는 30m, 무게는 66만 kg 이라는데 실제로 본 느낌은 생각보다 안크다. 광화문 광장에 앉아계신 세종대왕님이 더 큰 것 같다.
청동 기마상을 지나 오른쪽에 보이는 다리를 또 건너면 상트 페테르부르크 대학교가 보인다. 이게 상트 페테르부르크 대학교가 맞나? 아무튼 내가 하려는 말은 푸틴 형님이 바로 상트대학교 출신이라는 거다. 그리고 '파블로프의 개'라고 조건반사를 발견하신 이반 파블로프! 이분도 상트 페테르부르크 출신이라고 한다.
그리고 조금만 더 걸어가면 생뚱맞게 선착장에 스핑크스 2마리가 서있다.
얼어붙은 강과 눈, 참 어울리지 않는다.
이 스핑크스가 왜 여기에 있냐?
3,500년 전 이집트 룩소르의 아멘호텝 3세의 무덤을 지키던 스핑크스로 1개의 무게가 23톤에 달 한다고 한다.
1839년에 프랑스가 이 스핑크스상을 사려고 이집트에 주문했는데 프랑스혁명으로 뒤숭숭해서 어물쩡 거리고 있을 때, 유럽의 강대국들이 하나씩 가지고 있던 스핑크스상이 없던 러시아가 그럼 우리도 하나 보유해보자 하고 구매한 스핑크스상이라고 한다. 아래를 받치고 있는 돌은 핀란드에서 가져왔고 상형문자가 새겨진 부분만 이집트에서 조각되었다고 한다.
페덱스도 없고 우체국 택배도 없던 시절, 보험이라고 있었겠는가. 이거 운반하다 결국 스핑크스 턱수염이 부러졌다고 한다.
암튼 이건 약탈한 거 아니고 돈 주고 사 온 것. 러시아 좀 특이한 듯, 미술관 작품도 돈 주고 사 오더니 스핑크스도 샀다.
아까 로스트랄 등대에서 봤던 결혼식 일행들을 스핑크스에서 또 봤다. 나도 이 일행들이랑 같이 관광버스를 타고 왔으면 참 따뜻했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내 몸이 점점 추워지고 있다. 걷기도 힘들다 이제.
아니 근데, 다른 나라는 스핑크스 막 실내에 잘 보관하더만 얘네는 왜 강변 선착장에 뒀지? 아무튼 특이함.
너무 춥다. 청동 기마상을 보기로 한건 기억도 못하고 호스텔 근처로 가는 버스 정거장을 검색해서 찾았다.
여행하면서 한 번만 아프면 됐다. 그만 아파야 한다. 제일 중요한 핀란드 여행이 남아있으니.
오늘 여행 끝. 철수.
아 결론,
상트는 걸을만하다. 겨울에 비만 안 내리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