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문예출판사, 2013)
훌륭한 삶의 한 구성 요소로서 지식을 이야기할 때, 나는 윤리적 지식이 아니라 과학적 지식과 특정한 사실들에 관한 지식을 염두에 두고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나는 윤리적 지식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만일 우리가 어떤 목적을 달성하고자 한다면 지식이 우리에게 그 수단을 제시할 수 있으며, 이런 지식은 느슨한 의미에서 윤리적 지식이라 부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어떤 행동이 낳을 수 있는 결과들을 감안하지 않고서는 그 행동을 그른지를 판단할 수 없다고 믿는다. 우리가 성취해야 할 목적을 정한 이후에는 과학이 그것을 성취할 방법을 발견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모든 도덕률은 내가 말하는 것은 우리가 욕망하는 목표이지 우리가 욕망해야 하는 목표가 아니다. 우리가 욕망해야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욕망하기를 바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대체로 그것은 부모와 교사, 경찰과 판사처럼 권위를 가진 존재들이 우리에게 욕망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만일 당신이 나에게 ‘너는 이러저러한 것을 해야만 한다’고 말한다면, 당신의 발언이 지닌 동기 부여의 힘은 당신의 인정을 받기 위한 내 욕망, 그리고 당신의 인정 또는 비난에 수반되는 보상이나 처벌을 받기 위한 내 욕망에 좌우된다.
모든 행동은 욕망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윤리적 개념들은 그것들이 우리의 욕망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를 제외하면 아무런 중요성을 갖지 않는다. 윤리적 개념들은 인정을 받으려는 우리의 욕망과 비난을 피하려는 우리의 두려움을 통해 이런 작용을 한다. 이런 욕망과 두려움은 강력한 사회적 힘이므로, 어떤 사회적 목적을 실현하고자 할 때 우리는 자연적으로 이 두 가지를 우리 편으로 만들려고 노력한다. 어떤 행동의 도덕성은 그 결과에 따라 판단되어야 한다는 말은, 우리가 바라는 사회적 목적들을 실현할 것 같은 행동이 인정받고 그와 반대되는 행동이 비난받는 것을 보고 싶다는 뜻이다. 지금 현재로선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직도 특정한 전통적 규칙들에 따라 행동의 결과와는 별 상관없이 인정과 비난이 할당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략)
이제 우리는 서두에서 언급했던 훌륭한 삶의 요지를 좀 더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다. 훌륭한 삶이란 지식의 안내를 받는 사랑으로 이루어진다고 말했을 때 나를 촉발시킨 욕망은, 가능한 한 나 자신이 그런 삶을 살고 싶고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사는 것을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말의 논리적 내용은 우리가 이런 방식으로 살고 있는 공동체에서, 사랑과 지식을 더 적게 가지고 있는 공동체에서보다 더 많은 욕망들이 충족되리라는 것이다. 나는 그러한 삶이 ‘고결하다’거나 그 반대의 삶이 ‘죄가 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말들은 내게 아무런 과학적 정당성을 갖고 있지 않은 개념들이기 때문이다.(p.71-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