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트런드 러셀, 일이란 무엇인가’-1

<게으름에 대한 찬양>(사회평론, 2005)

by readNwritwo

그렇다면 일이란 무엇인가? 일에는 두 가지가 있다. 먼저, 지표면 혹은 지표면 가까이 놓인 물질을 다른 물질과 자리를 바꿔 놓는 일이다. 또 하나는 타인들에게 그런 일을 하도록 시키는 일이다. 첫 번째 종류의 일은 즐겁지 못하고 보수도 박하다. 두 번째의 일은 즐겁고 보수도 높다. 또한 이 일은 무한히 확대될 수 있어서 지시를 내리는 사람들뿐 아니라 어떤 지시를 내려야 할지에 대해 조언해 주는 사람들도 있다. 흔히, 조직화된 두 개의 집단에서 정반대되는 두 가지 조언이 동시에 나오게 마련인데 이게 소위 정치역학이다. 이런 류의 일을 하는 데 요구되는 기능은 어떤 조언을 할 것이라는 주제에 관한 지식이 아니라 말과 글로써 설득하는 기술, 즉 선전에 관한 시작이다.

미국의 경우는 예외지만 유럽에는 이러한 일을 두 계층보다 존경받고 있는 제3의 계층이 존재한다. 바로 토지를 소유함으로써 남들에게 일할 수 있는 은전을 베푼 대가를 받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지주들은 게으르다. 그러니 잘못하면, 내가 지주들을 찬양하는 것으로 비춰질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들의 게으름은 불행하게도 타인들의 근면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사실, 안락하게 게으름을 피우고자 하는 그들의 욕망이야말로 역사적으로 볼 때 일해야 한다는 모든 신조가 생겨난 뿌리인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들의 본을 따르는 것이야말로 그들이 상상조차하기 싫은 일일 것이다.

문명이 시작된 이래로 산업혁명에 이르기까지 대체로, 인간은 열심히 일해도 자신과 가족의 생계에 이르기까지 대체로, 인간은 열심히 일해도 자신과 가족의 생계에 필요한 정도밖에 생산할 수 없었다. 비록 그의 아내도 남편 못지않게 열심히 일했고 아이들도 나이가 차는 대로 노동력을 보탰겠지만 말이다. 최소한 필요를 웃도는 작은 양의 잉여물이 생긴다 해도 전사나 사제 집단에게 돌아갔다.

기근이 닥칠 때는 전혀 잉여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일하는 사람들이 굶어 죽은 반면, 전사와 사제들은 평상시처럼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러시아에서는 1917년까지 이러한 체제가 존속했고(그 이후에는 공산당원이 전사와 사제들의 특권을 계승했다) 동양에는 아직까지 잔존해 있다. 영국의 경우 산업혁명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나폴레옹 전쟁 시절까지도 이 체제가 맹위를 떨쳤고 백 년 전, 자본가라는 신흥 계층이 권력을 획득할 때까지 이어졌다. 미국에서는 독립과 함께 이 체제가 종식되었는데, 단, 남부에서는 남북전쟁 때까지 존속했다.(p.1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