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의 의지’

<꿈 같은 삶의 기록>(솔, 2017)

by readNwritwo

잠언과 미완성 작품집 <꿈 같은 삶의 기록>(솔, 2017)에서 한 가지 눈여겨 볼 부분은 “책 속에 얼마나 많은 말들이 들어 있는가! 그것들은 의당 기억을 불러일으키겠지.”(p.12)에 대한 ‘카프카의 언어’ 정의다. 그의 말에 따르면 말이란 서투른 등산가이며, 서투른 광부다. 전자와 후자를 ‘산의 정상’과 ‘산의 깊이’로 비유하고 있다. 둘의 공통점은 어떤 의미나 결과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디서 얻을 수 있는가. 그는 “회상할 만한 가치가 있는 모든 것들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어떤 생생한 기억에 있다.”(p.12)라며 “순결한 기억 속에 서툰 솜씨와 거친 연장으로 자기 자신을 써넣을 수는 없는 것이다.”(p.12)라고 이야기한다. 그가 강조한 부분은 ‘회상할 만한 가치’를 말로 표현하는 게 아니라 글로 써내려간다는 점이다. “겸허한 흰 종이에나 가능한 일이다.”(p.12)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기억이라는 문제가 그의 자전적 소설에 어느 정도 녹아있다. 이런 사유가 카프카 문학에서 발휘되는 핵심이지 않을까.

실존주의 철학자 장폴 사르트르가 쓴 <문학이란 무엇인가>(민음사, 1998)의 첫 장 ‘쓴다는 것은 무엇인가’에서 살펴보면 카프카 문학을 다른 접근방식으로 다가갈 수 있다. 사르트르는 화가와 작가의 창작에 대해 접근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림은 사물의 세계이고 글은 기호로 이루어져 있다. 묘사를 통해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글의 방식과 달리 그림은 오직 사물의 존재로만 있을 뿐이다. 그는 ‘졸렬한 화가’와 ‘훌륭한 화가’ 두 가지로 나눴다. 전자는 전형적인 사물의 대상만 그릴 수 있는 존재이며, 후자는 그 의미를 알기에 가장 보편타당한 고유한 대상을 그려낸다. 기교를 부리는 것과 그렇지 않다는 점에서 둘의 차이가 드러난다. 글쓰기의 행위는 무엇이고 무엇을 위해 써내려가며 어떤 대상을 놓고 쓰는지에 대한 그의 사유를 엿볼 수 있다. 카프카 문학 역시 기억이라는 회상할 만한 가치를 놓고 글쓰기의 스킬이 아닌 그 안에서 바라볼 수 있는 본질적인 핵심을 꿰뚫어보았다.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그의 세계관인 것이다.

<꿈 같은 삶의 기록>의 압권은 바로 ‘고유성’이다. 프란츠 카프카의 말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각자 고유하다. 그는 “내가 경험한 바로는 학교도 가정도 이 고유성을 말살하려는 데 급급하다.”(p.387)라며 “가스등의 불을 끔으로써 나의 고유성은 탄압되었다.”(p.387)라고 말한다. 카프카 성장과정에서 아버지와의 관계를 드러내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는 자수성가로 성공한 독선적인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못했다. 현실적이고 빈틈없는 아버지의 눈에 아들은 몽상가였다. 어린 카프카에게 아버지란, 지독한 일벌레에 가족은 신경쓰지 않는 인간이었다. 소설 <변신>이나 자전적 소설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에서 어김없이 감정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에게 고유성이란 중요한 내면적 자아인지 모른다.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책읽는수요일, 2016)에서 다룬 비평가 테리 이글턴의 비평적 견해는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누구나 책을 읽고 무언가 느끼는 게 있다면 비평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글턴은 “이 모든 비평전략의 공통점은 언어에 대한 고양된 감수성입니다.”라며 “심지어 느낌표로 몇 문장의 비평적 논평에 달하는 가치가 있을 수 있습니다.”라고 말한바 있다. 한 마디로 책을 읽고 글로 써낼 소재만 있다면 비평으로 논할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모든 비평전략의 공통점은 언어에 대한 고양된 감수성’이 바로 핵심이다. 카프카가 이야기한 “모든 인간은 각자 고유하다.”(p.12) <꿈 같은 삶의 기록> 라는 의미와 닿아있다. 이글턴의 비평적 입장은 자신의 언어적 감수성을 믿는다면 좋은 비평을 쓸 수 있다는 뜻이며, 카프카 문학적 의미는 고유성이야말로 사회나 가족이 침범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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