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에 대하여’
프랑스 파리에서 1년 살기를 계획하면서부터 글쓰기에 대해 그전에는 없던 다른 태도가 한 가지 생겼다. “글을 정교하게 쓰고 싶다.”라는 욕심에 사로잡혔다. 5월 초에 ‘예술 독학’이라는 블로그 게시판을 만들면서다. 요즘 나의 관심사는 ‘철학사’, ‘미술사’, ‘음악사’, ‘세계사’, ‘정신분석학’, ‘문학’, ‘영화’다. 프랑스로 떠나기 전, 2-3년 ‘몰입의 시간’이기도 하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책의 두께나 무게에 상관없이 4-5권을 가방에 짊어지고 다닌다. 포스트잇에 시작한 날짜와 하루에 읽을 페이지 수를 적어두고 8-12회로 완독할 수 있는 분량을 정해 놓은 채 책읽기를 하고 있다. 며칠 안 된 것 같은데, 보름이 지났다. 머릿속을 맴돌고 있는 가족에 대한 고민거리가 있으나 책읽기와 영화보기, 그리고 기록할 수 있는 나만의 시간이 존재한다는 것에 감사한다.
내가 생각하는 글쓰기는 세 단계로 변모하고 있다. 호기심과 해방감으로 처음 시작한 쓰기의 영역은 소설에서 비평으로 넘어갔다. ‘잘 쓰고 싶다’라는 막연한 생각은 ‘좀 더 자세하게’에서 ‘좀 더 정교하게’라는 단계로 바뀌었다. 시네필의 영원한 초상 프랑수아 트뤼포, 영화감독 코엔 형제,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 세 사람의 태도는 나를 자극시키기에 충분했다. 작년, 한 달 전, 최근에 읽고 흘려버린 생각이었다. “필요하다면 밤마다 일을 해서라도 저의 영역을 최대한으로 넓혀 영화계에서 가급적 빨리 ‘전문가’가 되는 것만이 저를 구원할 수 있을 겁니다.”라는 트뤼포의 말은 아직도 뭔가를 써내지 못하는 나의 태도를 자극시켰다. “그 정도 돈으로 최대한의 성과를 거두려면, 영화를 정교하게 준비해야 해요.”라는 코엔 형제의 태도는 자세하게 알고 싶다는 것에서 정교하게 쓰고 싶다는 마음으로 바뀌는 결정적 계기였다. “훌륭한 삶이란 사랑으로 힘을 얻고 지식으로 길잡이를 삼는 삶이다.”라는 러셀의 삶은 비전문가도 전문가 못지않은 식견을 가질 수 있다는 다치바나 다카시의 삶을 보는 듯 했다. 이들의 지식 탐구와 배움은 매혹적이다. 책, 영화, 글쓰기가 나를 든든하게 지탱해주는 버팀목이라는 사실을 오늘에서야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