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에 대하여>(돌베개, 2013)
오늘의 토론 주제는 문학과 증언입니다. 문학이 인간 삶의 증언이라는 견해에는 대부분 반대하지 않으실 겁니다. 또한 진실성이 증언의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이라는 점에 대해서도 동의하시리라 믿고요. 진실 이외에는 그 무엇도 문학을 굴복시킬 수 없습니다. 문학이 자유정신의 터전이라면, 그 자리에서 작가가 받아들일 수 있는 유일한 명령 또한 진실추구입니다. 이익보다 중요한 가치를 위해 기꺼이 고통을 감수하며 글을 써 내려갈 때, 작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진실 자체입니다.
20세기에 문학에 행해진 정치적 억압은 인류 역사에서도 매우 드문 사건이었습니다. 과거에도 문학에 특정 정치의식을 강요한 예가 없지는 않지만, 그것이 꼭 문학을 정치의 선전물로 삼아 정치 투쟁에 복무하도록 하는 방식은 아니었어요. 문학 혁명도, 혁명의 문학도, 아름다운 세상을 가져오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문학의 본질을 해치면서까지 언어에 폭력을 가함으로써 자유정신의 터전을 전쟁터로 만들어버렸을 뿐입니다.
특히 정치가들이 문학에 관여하면서 한바탕 폭풍이 일었습니다. 동양도 서양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문학비평은 사실상 문학에 대한 정치적 판단이었고, 그 결과로 작가들에게는 이런저런 딱지가 붙었습니다. 좌파가 아닌 우파라고 해서 무조건 보수주의자는 아닌데도 권위적 통치가 행해지는 곳에서는 과도한 이분법이 기승을 부렸습니다. 애국이 아니면 무조건 매국이었고, 혁명이 아니면 무조건 반혁명이었죠. 중도의 자리는 없었습니다. 정치적 태도가 없는 것도 일종의 정치이고, 침묵으로 대항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그런데도 정치적 태도의 불분명을 용납하지 않았고, 어떤 식으로든 정치에서 벗어나는 것 자체를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패도(강압적 무력)였습니다.
문학은 정치적 간섭을 넘어서서 인간 삶의 곤경을 증언하는 역할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특징 정치의식에 매이지 않아야 합니다. 주의를 버리고 개인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인민의 대변자 노릇에서 벗어나 작가 개인의 눈을 세상을 바라보고, 작가 자신의 가장 절실한 감정을 담아낼 수 있어야 합니다. 통치자들은 대개 인민의 대변자라고 떠들면서 자기 말만 하기 좋아하는 법입니다.
정치적 지향이 있는 작가는 종종 사회정의의 화신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합니다만, 그들이 그토록 부르짖는 사회정의는 사실 추상적이기만 합니다. 그것이 정말 정의인지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요? 공허하고 추상적인 외침은 종국에 가서 하나의 허구가 되어버릴 뿐입니다.(p.44-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