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트런드 러셀, 일이란 무엇인가’-2

<게으름에 대한 찬양>(사회평론, 2005)

by readNwritwo

현대의 기술은 여가를 소수 특권 계층만의 전유물에서 벗어나 공동체 전체가 고르게 향유할 수 있는 권리로 만들어 주었다. 근로의 도덕은 노예의 도덕이며 현대 세계는 노예 제도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원시 공동체의 경우, 농부들을 가만히 내버려 두었더라면 얼마 안 되는 잉여를 전사와 사제들에게 나눠 주기보단 차라리 잉여가 생기지 않도록 생산을 줄이거나 소비를 늘렸을 것이다. 처음에, 전사와 사제들은 힘으로 강제하여 농부들을 생산케 하고 잉여를 내놓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일한 대가의 일부가 놀고 있는 사람들을 부양하는 데로 빠져 나간다 하더라도 열심히 일하는 것이 농부들의 본분이라는 윤리를 받아들이도록 유도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이 방법을 쓰게 되자 강제력을 쓸 일이 적어지고 따라서 지배에 드는 비용도 줄어들었다.

(중략)

물론 권력을 가진 자들은 자신들의 이익과 인류 전체의 이익은 일하다고 어거지로 믿음으로써 스스로에게도 이 사실을 은폐한다. 그러한 믿음이 진실인 경우도 있긴 하다. 예를 들어 노예를 거느렸던 아테네인들은 여가의 일부를 바쳐 영원히 문명에 남을 공헌을 했다. 공정한 경제 체제하에서였다면 그 같은 공헌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여가란, 문명에 필수적인 것이다. 예전에는 다수의 노동이 있어야만 소수의 여가가 가능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다수의 노동이 가치 있는 이유는 일이 좋을 것이어서가 아니라 여가가 좋은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제 현대 사회는 기술의 발전으로 문명에 피해를 주지 않고도 얼마든지 공정하게 여가를 분배할 수 있게 되었다. 현대의 기술은 만인을 위한 생활필수품을 확보하는 데 필요한 노동의 양을 엄청나게 줄였다.(p.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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