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에 대하여>(돌베개, 2013)
문학의 증언은 당사자들의 한정된 진술을 통해서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진술 자체가 충분하지도 않을뿐더러 그들 자신의 입장이나 나약함 때문에 부지불식간에 포장이 더해지기도 하니까요. 때로는 모든 걸 토로하고 싶어도 심리적 장애 때문에 제대로 토로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증언자의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다른 사건이 더 있거나,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동기가 작용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문학은 이런 모든 정황에 대해 거리낌이 없어야 이런 한계를 넘어설 수 있습니다.
증언의 문학을 택한 작가라면, 실제 존재하는 사람이나 사건에 대해 혹은 자기 자신의 체험을 글로 쓸 때조차 스스로 설정한 한계가 작용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런 한계를 수용하는 것도 진실에 대한 추구 때문입니다. 작가에게는 진실만이 모든 것을 뛰어넘는 가치판단의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진지한 문학은 본래 이익이나 효용을 바라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런 문학을 하는 작가들 역시 작품활동을 지속하기 위해 상을 바라지 않고요. 천고에 길이 남을 작품을 쓰겠다며 차가운 책상 앞을 지키지도 않습니다. 작가는 글 쓰는 일 자체에서 만족을 얻지 못하면 글쓰기를 지속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나면서부터 진실을 갈망합니다. 진실에 대한 추구는 누구도 억압할 수 없는 격정이기 때문입니다. 헛소리하는 법은 살면서 이익을 도모하려다 보니 배우게 되는 것이지요. 진지한 글쓰기를 계속하고 있는 작가는 진실추구 자체에 애착을 갖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는 진실추구 자체가 민족의 이유이고 자신의 욕망이니까요.
진실에는 여러 겹의 차원이 있습니다. 사실에 대한 단편적인 서술은 작가에게 만족을 주지 못합니다. 인간 삶의 진실을 증언하는 일은 정치적 사회적 금기보다는 대개 사람들 사이의 이해관계와 사회습속에 제약을 받습니다. 진실을 향한 접근은 늘 어느 정도의 한계 내에서 이루어지지요. 서술태도 자체에도 일종의 판단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사건 자체만을 서술하기로 하는 순간, 그 이면의 원인이나 사후에 빚어질 결과는 제외하는 것이 됩니다. 이렇듯 사건에 대한 객관적이기만 한 증언은 언론매체의 요구를 만족시킬 순 있어도 깊은 차원의 진실은 드러내지 못합니다.(p.48-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