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고민’
비평가는 생계가 어려운 족속이다. 그의 아내는 그를 제대로 존중해 주지 않고 자식들은 아비의 은혜를 모르고 월말이 되면 돈이 떨어진다. 그러나 그는 늘 서재에 들어가서, 책장에서 한 권의 책을 꺼내 펼쳐볼 수가 있다. 그 책에는 약간 쾌쾌한 냄새가 나는데, 그가 ‘읽기’라고 부르기로 결정한 야릇한 작업이 이제 시작된다. 그것은 어떤 면에서 보면 통령이다. 사자들이 다시 살아날 수 있도록 제 육체를 빌려주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면에서 보면, 그것은 저승과의 접촉이다. 책은 이미 대상도 행위도 또 심지어 사상조차도 아니다. 그것은 죽은 자가 죽은 자들에 대해서 쓴 것이니까 지상에서는 이미 제자리를 갖지 못하고, 우리와 직접 상관있는 이야기는 할 수가 없다. (중략) 만일 동시대의 작가들이 죽어준다면 그것은 비평가에게는 큰 경사이다. 너무나 자극적이고 생생하고 절실하던 그들의 책은 이제 피안으로 옮아가서, 점점 덜 감동적인 것으로, 점점 더 아름다운 것으로 변모하기 때문이다. 그 책들은 잠시 연옥에 머무른 후에 예지의 하늘로 올라가서 새로운 가치들을 보태줄 것이다.(p.39-40) 장 폴 사르트르의 <문학이란 무엇인가>(민음사, 1998)
비평가로 산다는 것, 금전적인 여유로운 삶을 살아가기에 어려운 직업인지 모른다. 사르트르의 말에 따르면 그렇다. 충분히 고민스러운 일이다. 그가 산 시대의 비평가나 나의 시대 역시 별만 차이가 없다. 그런 삶에서 오는 비애감은 비평가로 사는 선택했다면 스스로가 짊어가야할 몫이다. “늘 서재에 들어가서, 책장에서 한 권의 책을 꺼내 펼쳐볼 수가 있다.”라며 “그 책에는 약간 쾌쾌한 냄새가 나는데, 그가 ‘읽기’라고 부르기로 결정한 야릇한 작업이 이제 시작된다.”라는 사르트르의 문장이 나를 비평의 세계로 안내했다. “나의 하루 전부가 한 장정도 안 되는 종이 앞에서 지나간다.”라는 글로 쓰기의 행위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안겨 준 오르한 파묵처럼 말이다. 비평가나 작가의 일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면 자기가 할 일을 묵묵히 인내하라는 이들의 이야기에 이런 행간이 숨겨져 있었다. 나는 좋은 문장과 사유의 깊이를 보여준 두 사람 태도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내가 비평과 글쓰기를 하는 것 역시 이런 이유에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