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석에 반대한다>(이후, 2002)
근자의 사례들을 보고 있노라면, 해석은 예술작품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겠다는 잔인한 호전 행위로 보인다. 진짜 예술에는 우리를 안절부절못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해석자는 예술작품을 그 내용으로 환원시키고, 그 다음에 그것을 해석함으로써 길들인다. 해석은 예술을 다루기 쉽고 안락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해석의 이 호전성은 다른 예술 장르보다 문학에서 한층 더 극성이다.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 문학 평론들은 시나 희곡, 또는 장편이나 단편소설의 요소를 다른 무엇으로 번역하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여겨 왔다. 때로는 자신의 작품이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힘에 너무나 불안해진 나머지, 작가가 친히 작품 안에다 그 힘에 대한 명백하고 숨김없는 해석을 집어넣기도 한다―어느 정도 조심스럽게, 반어법을 솜씨 좋게 섞어 넣기는 하지만, 토마스 만이 그처럼 지나치게 법을 솜씨 좋게 섞어 넣기는 하지만, 토마스 만이 그처럼 지나치게 협조적인 작가의 한 예다. 비협조적인 작가들을 만날 경우, 비평가는 그저 자기 직업이 너무나 행복할 따름이다.(p.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