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석의 문장 1>(알마, 2013)
에릭 시걸이라는 작가입니다. 대중소설가이면서 고전 묵한자인데 <러브 스토리>라는 소설이 가장 유명할 겁니다. 에릭 시걸은 원래 예일대학교에서 고전문학을 가르친 분이었습니다. 옛날 로마문학, 라틴어로 쓰인 중세문학 등 고전문학을 가르쳤는데, 소설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돼서 학자로서보다는 대중소설가로 훨씬 더 유명해졌습니다. <러브 스토리>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라이언 오닐과 알리 맥그로가 주연을 맡았습니다.
“What can you say about a twenty-five-year-old girl who died? That she was beautiful. And brilliant. That she loved Mozart and Bach. And the Beatles. And me.”
대중소설이긴 하지만 도입부가 아주 세련됐다고 생각합니다. “스물 다섯 살에 왜 여자가 죽었을까?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을까?” 첫 문장에서부터 벌써 뭔가가 오지 않습니까. “내가 가르쳐줄게. 아름답기만 한 게 아니라 똑똑하기까지 했다니까. 그녀는 바흐랑 모차르트를 사랑했어. 그리고 비틀즈를 사랑했지” 바흐랑 모차르트는 클래식 음악의 상징 같은 사람입니다. 여기다 비틀즈를 병치시키는 겁니다.
피에르 부르디외라는 사회학자가 있습니다. 어ᄄᅠᆫ 사람의 계급을 결정적으로 드러내는 취향은 문학도 아니고 뭣도 아니고 음악이라고 했습니다. 저 사람이 어ᄄᅠᆫ 장르의 음악을 좋아하는지 알면 그 사람 계급을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러브 스토리>의 여자 주인공 제니퍼 카발레리는 바흐와 모차르트를 좋아했습니다. “이태리 이민자인 빵가게 주인의 딸이었다 하더라도 이 사람은 그게 아니야. 바흐랑 모차르트를 좋아했어, 대중음악도 비틀즈처럼 세련된 음악을 좋아했다고. 정말 대단하지 않아? 그 사람들의 작품만 사랑한 게 아니라 나도 사랑했어.”
이렇게 하고는 “언젠가 좋아하는 순서를 그녀에게 물어봤어. 그녀는 알파벳순이라고 대답했어. 나는 알파벳순이라는 게 퍼스트 네임이 기준인지 라스트 네임이 기준인지 궁금해졌어” 이러면서 자신이 그 여자에게 몇 번째인지 따져보는 겁니다.(p.58-60)
“Love means not ever having to say you’re sorry.”
<러브 스토리>에 이 문장이 두 번 나옵니다. 한 번은 중간에 나옵니다. 저게 중간에만 나왔으면 그리 기억이 안 됐을 겁니다. 이 문장 자체는 폼 나느 말이지만요. “사랑하는 사람들끼리는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아도 돼.” 남자 주인공 올리버 베릿은 아버지랑 사이가 굉장히 나쁩니다. 아버지도 자식이 가난한 집 딸과 결혼하는 데 반대합니다. 그래서 결혼식에 아버지를 부르지도 않습니다. 여자 주인공 제니퍼 카발레리는 부자를 화해시키려고 시아버지에게 계속 전화를 합니다. 그 광격을 목격한 올리버 배릿이 전화기를 내던지면서 화를 냅니다. 그러니까 제니퍼가 울면서 집을 나가버립니다. 겁이 덜컥 난 올리버가 제니퍼를 찾아 보스턴의 밤거리를 해맵니다. 그러다가 어느 건물 계단 위에 앉아 있는 제니퍼를 몇 시간 뒤에 찾습니다.
그때 올리버가 제니퍼한테 “I’m sorry.”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제니퍼가 “Love means not ever having to say you’re sorry”라고 합니다.
그런데 제니퍼가 죽은 다음, 올리버의 아버지가 그 소식을 듣고 올리버를 찾아옵니다. 부자끼리 절연하고 살다가 자식이 상처를 하자 자식을 찾아온 것이지요. 찾아서 자기 아들한테 “I’m sorry.”라고 말합니다. 아들이 언젠가 자기 아내한테 했던 말을 그대로 하는 겁니다. 아들은 내에게 들었던 말을 아버지에게 그대로 들려줍니다. “Love means not ever having to say you’re sorry.” 이게 마지막 문장은 아니지만, 거의 마지막 문장입니다. 그 뒤에 서너 문장이 더 나옵니다. “나는 아버지 앞에서라면 결코 하지 않을 일을 저질렀다.” 그다음에 마지막 문장 “나는 울었다”가 나옵니다.(p.62-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