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문학에 빠진 이유>

‘오늘의 고민’

by readNwritwo

“누가 풋사과의 빛과 그 새콤한 기쁨을 구별할 수 있겠는가? <풋사과 빛의 새콤한 기쁨>이라고 이름 붙인다면, 그것이 벌써 지나친 표현이 아니겠는가? 오직 초록색이 있고, 붉은색이 있을 뿐이며, 그것이 전부이다. 그것들은 사물이며, 그 자체로서 존재한다.”(p.12)

“작가라면 독자를 인도할 수 있다. 작가는 오막살이 한 채를 묘사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거기에서 사회적 부정의 상징을 보게 하고 독자의 분노를 자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화가는 말이 없다. 화가는 다만 <하나의> 오막살이를 보여줄 따름이다. 그것이 전부이다.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것은 보는 사람의 자유이다. 다만 그 고미다락은 결코 가난의 상징이 아니다. 그러려면 그것은 기호라야 할 텐데, 사실은 사물인 것이다. 졸렬한 화가는 전형을 추구하고, 전형적인 아랍 사람을, 어린아이를, 또는 여자를 그린다. 한편 훌륭한 화가는 전형적인 아랍 사람이나 전형적인 프롤레타리아는 현실계에도 또 캔버스상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는 오직 한 노동자를, 어떤 한 노동자를 제시할 따름이다. 그렇다면 <한> 노동자에 대해서 무슨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인가? 서로 모순되는 수없이 많은 생각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그 모든 생각과 모든 느낌이 캔버스상에 엉겨 붙어서 깊은 미분화 상태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중의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는 각자의 자유이다. 마음씨 착한 화가들은 가끔 우리를 감동시키려고 시도했다. 그들은 눈 속에서 일자리를 기다리는 노동자들의 긴 행렬이나 실업자들의 초췌한 얼굴이나 전쟁터를 그리곤 했다.”(p.15-16)

“이와 반대로 작가가 다루는 것은 의미다. 그러나 구별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기호의 왕국은 산문이며, 시는 회화, 조각, 음악과 같은 편이기 때문이다.”(p.17)

실존주의 철학자 장폴 사르트르가 쓴 <문학이란 무엇인가>(민음사, 1998)의 첫 장은 ‘쓴다는 것은 무엇인가’이다. 책 제목이 무색하게 목차 어디에도 문학이라는 단어를 찾아볼 수 없다. 다만, 글쓰기의 행위는 무엇이고 무엇을 위해 써내려가며 어떤 대상을 놓고 쓰는지 과정만 있을 뿐이다. 도입부에서 다루는 내용을 살펴보면 왜 사르트르가 문학을 전면으로 내세우지 않고 글쓰기에 관해 ‘행위’, ‘과정’, ‘이유’로 나누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먼저, 그는 화가와 작가의 창작에 대해 접근했다. 문학이란 무엇인지 각기 다른 두 예술로 설명해 내고 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림은 사물의 세계이고 글은 기호로 이루어져 있다. 묘사를 통해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글의 방식과 달리 그림은 오직 사물의 존재만 있을 뿐이다. ‘졸렬한 화가’는 전형적인 사물의 대상만 그릴 수 있고 그것을 담아낼 수 없다는 사실을 안 ‘훌륭한 화가’는 가장 보편타당한 본질적인 존재만 그려낸다. 전자는 기교를 부리지만 후자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사르트르의 위대한 점은 보는 쪽과 만드는 쪽 구분 없이 서로의 자유를 존중하는 태도에 있었다. “오직 느낄 뿐이다.”라는 의미를 발견했기에 나는 그의 글을 기대하며 계속해서 읽을 참이다. 책을 읽고 글로 써낼 소재가 있다면 비평으로 논할 가치가 있다는 테리 이글턴의 태도가 나에게로 스며든 것처럼 사르트르 역시 그런 존재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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