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고민’
“타이난에서 출생. 전공이나 학력은 없다. 모든 신분 가운데 가장 익숙한 것은 정신병 환자라는 것. 두 가지 꿈이 있다. 하나는 소설을 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오에 겐자부로의 말처럼 책벌레가 독서 애호가가 되었다가 다시 지식인이 되는 것이다.” -소설가 린이한
일주일 전, 소설가 린이한의 장편소설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을 읽었다. 도입부가 인상적이었다. 나는 구석에 있는 표지를 가져와 누가 쓴 책인지 확인했다. 그녀는 대만 타이난 출생이고, 유복한 집안에서 성장했다. 2009년 대입자격고사에서 전국 수석을 차지한 금수저이자 엘리트였다. 화려한 이력이 눈길을 끌지만 그녀는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의과대학에 입학한지 2주 만에 휴학을 했다. 세 번의 자살 시도 후 2012년 중문과에 진학하지만 우울증 때문에 다시 휴학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2017년 2월 스물여섯이라는 나이에 이번 소설을 출간했다. 발표와 동시에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녀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내가 느낀 감정은 질투심이었다. 젊은 나이에 소설을 썼다는 점에서 말이다.
재능 있는 작가를 볼 때마다 나는 부러움의 대상으로 바라보곤 한다. 세계관, 안목, 문체를 쌓는 과정을 생각하면 이들에게 존경심마저 든다. 삶에서 자기 자신과 타협하지 않고 고독을 견뎠기 때문이다. 좋은 작품을 쓰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을 버텨온 걸까.
린이한의 소설에도 아픔과 시간을 이겨온 흔적이 있기에 나는 질투심에서 아쉬운 감정으로 바뀔 수밖에 없었다. 완독을 하고나서 그녀의 다음 책을 읽고 싶었다. 그녀는 어떤 세계관과 문체, 안목으로 작품을 계속 써내려갔을까. 그게 가장 궁금했다. 첫 장편소설이자 유작에는 그녀의 자전적 이야기가 담겨있다. 작가 부모는 “주인공 팡쓰치가 열세 살부터 유명 문학 강사에게 상습적인 성폭행을 당했다는 소설의 내용이 작가의 실제 이야기에 바탕했다.”고 밝혔다. 가해자로 지목된 강사는 내용을 전면 부인했다. 이런 상황을 보기도 전에 그녀는 2017년 4월 27일 집에서 목숨을 끊었다.
“고통스러운 경험은 말하기가 힘들다. 이 세상에 문학이 있어 다행이다.”라는 린이한의 문장은 여러 번 곱씹을 필요가 있었다. 나는 대만국가가 저지른 ‘사회적 살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녀의 아픔을 포용해주고 공감해줄만한 사회적 시선이 존재하지 않았다. 화려한 이력만이 삶의 전부인 것처럼. 좋은 소설가이자 지식인이 될 수 있던 한 작가의 삶을 끊어버린 것이다. 영화 비평 수업에서 정성일 선생님은 좋은 비평가가 되고 싶으면 “좋은 감독과 친구가 되어야한다.”라며 “중국 영화감독 왕가위 때문에 매번 도약했다는 느낌을 받았다.”라고 했다. 그는 수강생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여러분 마음속에 여러분의 친구는 누구입니까? 그와 함께 도약하게 될 겁니다.” 나는 그녀를 보며 처음으로 동시대의 친구를 만난 기분이 들었다. 나의 비평적 안목을 한 단계 끌어올려줄 동료를 떠나보내며.
“나의 하루 전부가 한 장정도 안 되는 종이 앞에서 지나간다.” -오르한 파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