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 윤리학’ vs ‘진실의 윤리학’

<몰락의 에티카>(문학동네, 2008)

by readNwritwo

가라타니가 전하는 바대로라면 한국의 비평가 김종철은 “문학이 정치적 문제에서 개인적 문제까지 온갖 것을 떠맡는다”고 믿었기 때문에 문학을 했고, “언제부터인가 문학이 협소한 범위로 한정되어”버렸기 때문에 문학을 그만두었다. 그가 ‘온갖 것’이라고 말할 때, 그 말은 거대한 두 팔을 벌려 모든 것을 끌어안는 어떤 거인을 연상하게 만든다. 아마도 그것은 ‘총체성’이라는 거인일 것이다.

그러나 거인으로서의 문학이 죽었다고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문학은 본래부터 그런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본래 난쟁이였고, 더 작게는 ‘짱돌’이었으며, 더욱더 작게는 바이러스일지도 모른다. 가장 ‘협소한’ 영역 안에서 가장 ‘깊게’ 침투해 들어가는 것이 문학이라 하면 어떨까. 이것은 체념도 합리화도 아니다.

총체성이라는 거인이 연상케 하는 ‘수평적 포괄’의 뉘앙스 대신 바이러스로서의 문학이 관여하는 ‘수직적 예리’가 또 다른 총체성에 가 닿을 수는 없는 것일까를 묻고 있는 것이다. 넓은 총체성이 아니라 깊은 총체성 말이다. 그러나 그 총체성은 이제 망원경이 아니라 내시경에 가까울 것이다. 전망이 아니라 심연을 보여줄 것이다.

가라타니는 또 이렇게 말한다. “문학적 지위가 높아지는 것과 문학이 도덕적 과제를 짊어지는 것은 같은 것”이다. 그래서 “그 과제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롭게 된다면, 문학은 그저 오락이 되는 것”이다. 가라타니는 마치 1950년대의 미국에서, 1980년대의 일본에서, 1990년대의 한국에서, 갑자기 모든 문학이 일제히 윤리와 무관해지기로 결심하기라도 한 듯 말한다. 윤리가 정치의 하위 범주라면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설상 그가 말하는 윤리(도덕)는 대문자 정치에 복속된 윤리에 가깝다. 이 경우 윤리는 국가론과 계급론과 혁명론이라는 거시 전장에서 작동할 것이고, (그것이 지배의 정치건 대항의 정치건 여하튼) 특정 정치를 보족하는 윤리가 될 것이다.

그 윤리적 과제를 감당하는 문학은 과연 ‘지위가 높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시대는 확실히 종언을 고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미시 층위에서 문학이 윤리와 무관했던 적이 있었던가. 적어도 그것이 진정한 문학이라면 “지푸라기 하나에서도 큰 싸움을 찾아내는”(<햄릿> 4막 4장) 일을 늘 해왔다. 문학이 본래 그런 것이 아닌가. 정치를 보족하는 윤리가 아니라 정치를 창안하는 윤리를 말해야 한다. 거시 전장에서 ‘대문자 정치’와 제휴하는 윤리는 더 이상 문학의 몫이 아닌지도 모르지만, 미시 전장에서 ‘마이너리티의 욕망’과 암약하는 문학은 여전히 윤리적일 수 있지 않을까.

다른 총체성이 있고 다른 윤리가 있다고 말하려는 것이다. 근대문학이 종언을 고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근대문학의 ‘전부’라 믿었던 어떤 ‘부분’이 괴사한 것이다. 괴사한 부분을 절제하면서 한 유기체의 종언을 고하는 일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그 유기체는 기형의 형태로 더러 살아남는다. 실로 오늘날의 문학이 그렇다. 엽기적이고 그로테스크한 내용이 그러하고, 분열증적이고 무정부적인 형식이 또한 그러하다. “초대받은 적도 없고 초대할 생각도 없는 나의 창, 사람들아, 이것은 기형에 관한 얘기다.”(김경주, <시인의 말> 앞의 책)

그러나 이 기형은 총체성의 파편이 아니라 파편으로서의 총체성일 것이다. 혹은 ‘억압된 총체성’이라 해도 좋다. 문학은 구축하는 초자아의 총체성이 아니라 배제되는 무의식의 총체성이기 때문이다. 그곳에 치명적인 진실이 있으니, 이 기형을 대면하고 돌파하는 일은 윤리적이다. 정신분석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윤리가 문제되는 자리는 ‘선’이 아니라 ‘진실’이라는 것이다. 선의 윤리학과 진실의 윤리학이 있다. 선의 윤리는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방호벽이다. 그것은 치명적인 진실의 바이러스를 선의 이름으로 퇴치한다. 반면 진실의 윤리는 시스템을 다시 부팅하는 리셋 버튼이다. 그것은 때로 선이라는 이름의 하드디스크가 말소될 것을 각오한 채 감행되는 벼랑 끝에서의 한 걸음이다. 억압된 총체성이 이 진실의 윤리학과 더불어 작동할 때 어쩌면 종언의 종언은 선언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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